연재e사람50화

"지엄하신 각하의 인사인데
야당 재 뿌리는 걸 방기했냐?"

[e사람①] '야당 차관 3년' 김충식 방통위 부위원장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록 2014.03.24 14:09수정 2014.03.2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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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김충식 방통위 부위원장이 지난 2월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 임명이 KBS 윤리준칙에 어긋난다는 이경재 위원장 발언 직후 청와대에서 전화가 걸려왔고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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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엔 적어도 종편이 지금처럼 프로그램도 엉망이고 콘텐츠 투자도 하지 않고 재방송 비율도 높고 보수 일변도에 양로원층에 집중적으로 프로파간다하는 낮은 수준으로 타락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어요." ⓒ 권우성


"수미일관이네. 취임할 때 종편 때문에 퇴장하고 퇴임 앞두고도..."

지난 19일 방송통신위원회(아래 방통위)가 종합편성채널(아래 종편)을 재승인하는 순간 '야당'은 없었다. 김충식 부위원장과 양문석 상임위원 모두 '불량 방송'을 인정할 수 없다며 회의 도중 퇴장한 것이다. 공교롭게 3년 전 2기 상임위원 취임 직후 종편 승인에 맞서 퇴장했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두 차례 퇴장 부른 종편과의 악연 "80점은 기대했는데..."

"3년 주기로 종편 재심사를 하게 돼 있어 이렇게 되리란 예감은 했어요."

마지막 회의를 마친 다음날(20일) 집무실에서 만난 김 부위원장은 지난 3년을 되돌아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주어진 짐과 가지고 있던 꿈, 행사할 수 있는 힘. 짐과 꿈, 힘 사이에서 3년 동안 고심하고 성찰하고 투쟁해 오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야 3대 2 구도에서 '퇴장'은 소수파에겐 마지막 카드다. 김 부위원장은 전날 '범죄적인 행위'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무리하게 종편 4개를 만든 방통위를 강하게 비판했다.


"3년 전엔 적어도 종편이 지금처럼 프로그램도 엉망이고 콘텐츠 투자도 하지 않고 재방송 비율도 높고 보수 일변도의 낮은 수준으로 타락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어요. 최소한 지상파 80점 수준은 되리라 기대했는데 지금은 50점도 안 되는 시청률과 재정 형편, 국민 서비스에, 방송으로서 품격까지 대부분 무너뜨렸어요."

과천정부청사 한 동을 차지한 방통위 청사에는 '섬'이 두 곳 있다. 바로 두 야당 추천 상임위원 집무실이다. 엄연히 합의제 중앙행정기관 차관급 자리지만, 야당에서 보냈다는 이유로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벽에 갇혀 보내야 했다. 심지어 방통위 사무국은 종편 재승인 심사 결과를 회의 10분 전에야 상임위원에게 통보하고 채점표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그렇게(야당 추천 위원이라) 추측해요. 잘못된 거죠. (종편) 사업계획서를 보여줄 때도 (비밀유지 각서에) 서명해 달라고 해요. 그런 식으로 내부를 불신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고 적절한 사무국 태도는 아니죠."

소수파 차관, 설득과 투쟁도 안되면 구걸해야 하는 자리

'야당 차관'이 겪는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방통위는 합의제 기구지만 여야 3대 2 구도여서, 다수결로 하면 늘 야당쪽이 밀릴 수밖에 없다.

"3년 내내 쟁점에 부딪힐 때마다 소수파로서 괴로움을 많이 느꼈어요. 때론 투지를 불러일으킬 때도 있었지만. 3대 2 구도에선 영원히 다수결에 질 수밖에 없지만 두 사람 분 안에 담을 국민의 뜻이 있고 공정방송 지향하는 많은 성원이 담겨 있어 투쟁도 해야 하고 한편으로 설득하고 구걸에 가까운 행동도 해야 할 때가 있었어요."

김 부위원장은 지난해 3월 김재철 MBC 사장 해임 당시를 떠올렸다. 사장 해임 권한을 갖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은 정부여당쪽 6명, 야당쪽 3명으로 갈려 야당만으로 해임안 처리가 불가능했다. 결국, 네 차례 시도 끝에 여당쪽 이사 2명이 극적으로 돌아서면서 5대 4로 해임안이 통과됐다. 김 부위원장은 당시 숨은 공신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여당 이사 두 사람을 밤낮 가리지 않고 짧게는 20여 일, 길게 보면 6개월 이상 설득했어요. 설득과 조정을 넘어서 당위성을 설명하다 지쳐서 애걸하고 구걸했어요.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언론 역사가 한걸음이라도 가려면 많은 언론 보도와 경찰 수사, 감사원 고발 등으로 상처투성이가 된 사람을 사장으로 계속 두는 것은 언론과 방송 산업, MBC 장래를 위해서 더는 안 되지 않겠나, 거의 구걸에 가까운 설득을 했죠."

이런 숨은 노력에도 MBC 파업 등 굵직한 현안을 놓고 언론운동진영과 소통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때 유임까지 거론되던 김 부위원장에겐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하지만 김 부위원장은 자신과 격의 없이 지낸 언론시민단체 인사들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소통'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일축했다. 오히려 현재 언론 운동 방식에 적극적인 변화를 주문했다.

"MBC 파업이 길어질 때 노조에서 세 사람이 찾아와 방통위원 사퇴를 요청했어요. 직에 연연해서가 아니고 언론 운동을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인지 걱정이 됐어요. 사퇴하려면 나도 이유와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파업 힘겨루기 일환으로 사퇴 선언을 해달라는 데 복잡한 생각이 들었어요.

언론 운동이 현장의 변화를 꿰뚫어보지 못하고 구시대 운동 방식이 답습되며 점점 힘은 시민사회에서 보수정권으로 넘어간다는 의구심이 있어요. 과거 독재 정권에 항거하던 시절 투쟁 방식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아쉬워요. 어떤 형태로든 바뀌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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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쟁점들은 민주당 집권 때 새누리당이, 새누리당 집권 때 민주당이 주장했던 거죠. 국회가 지난 20년간 같은 논점으로 공수를 바꿔가며 해왔기 때문에 어떤 게 국민에게 이익인지 이미 결론이 났어요." ⓒ 권우성


"방통위 정쟁은 여야 정치권 탓... 정답은 나와 있어"

그간 방통위가 정쟁의 장으로만 비쳐진 것 역시 여야 정치권에 책임을 돌렸다. 종편, 수신료 등 방송계 현안을 놓고 여야가 날카롭게 대립하면서 방통위가 여야 대리전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회 공정방송실현특위 때문에 국회에 자주 불려갔어요. 야당은 KBS 사장 선출 특별 다수제를 요구했는데 여당은 절대 못 받겠다는 거예요. 현재 KBS 이사가 여야 7대 4 구도인데 사장만은 2/3(8명)로 선출하자는 건데, 여야 이사가 합의해서 선출하면 외부에서 공격 거리가 적은 사람이 추천돼 구성원들이 안정감을 갖고 정치적인 외풍도 막아주는 역할을 할 거라도 설득했는데 결국 무산됐죠."

방통위원은 정부와 여야 정치권에서 추천하지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방통위의 지나친 정파성과 당파성 탓에 통신 정책까지 소외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박근혜 정부 들어 미래창조과학부로 분리되는 결정적 빌미가 됐다. 

"통신은 쟁점이 거의 없고 선택의 문제예요. 지금까지 여야간에 통신 문제로는 싸운 적은  거의 없어요. 여야가 나눠서 주파수 배정하니 뒷말이 없고 특혜 시비도 없었어요. 그런데 왜 전문성 시비냐. 신문에 보도되는 방통위 기사 가운데 80%가 방송 쪽이에요.

통신사업자나 정통부 출신들은 통신 비중이 더 큰데 왜 방송만 언론에 나오느냐, 그것도 싸우는 것만 나오니까 방송 드잡이로 통신 발전만 저해한다는 얘기가 나와요. 그게 방통위가 안고 있는 숙제죠."

김 부위원장이 생각하는 해법은 간단하지만 쉽지 않았다. 국회에서 먼저 방송 쟁점들을 해소하면 된다는 것이다.

"지금 쟁점들은 민주당 집권 때 새누리당이, 새누리당 집권 때 민주당이 주장했던 거죠. 국회가 지난 20년간 같은 논점으로 공수를 바꿔가며 해왔기 때문에 어떤 게 국민에게 이익인지 이미 결론이 났어요. 답이 나온 쟁점들을 정직하게 해소하면 방통위 대결 구도도 많이 해소될 거예요."

"민경욱 발언 이후 청와대 전화... 최성준은 어깃장 인사"

하지만 청와대식 해법은 달랐다. 이경재 위원장 대신 방송통신 분야 '문외한'인 최성준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차기 방통위원장에 내정한 것이다.

"약간 어깃장 부리는 인사 같은 느낌이랄까. '흠잡기 어려운 모범생 윤창중' 같아요. 허원제, 김재홍 위원보다 나이가 어리고 무색투명하고 법조 전문가지만 이쪽엔 거의 문외한이에요. 국회의원들에게 답답한 사람하고 잘 놀아봐라, 골탕 먹이는 느낌이랄까. 소통이 되고 듣고 귀 기울이고 진심을 이야기하면서 설득하는 건 기대하지 않는다, 그냥 가서 방심위(방송통신심의위원회) 검사장 출신 박만 위원장처럼 앞만 쳐다보고 무슨 소리하든 했던 말만 되풀이하면서 싸워라, 그런 느낌 받았어요. 내 느낌이 오해이길 바랍니다." 

적어도 김 부위원장 '느낌'대로라면 거물 정치인 출신 이경재 위원장은 여야 국회의원들과 잘 통하는 게 오히려 발목을 잡은 셈이다. 지난달 국회 답변에서 KBS 메인뉴스 앵커 출신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 임명에 '딴지'를 건 것도 영향을 미쳤다.

"청와대에서 방통위로 전화가 왔다는 소리는 직원들 사이에 들렸어요. 청와대에서 불쾌하게 반응했다고 하니 크든 작든 영향은 있었을 거예요. 지엄하신 각하께서 사람 하나 썼는데 거기다 대놓고 야당이 재를 뿌리는데 방기했느냐, KBS 윤리준칙 아직 안 읽어봐서 모른다든지, 난 그렇게 생각 않는다, 싸워야지 단호하게 사규 위반이라고 해 기사 나게 하느냐, 박정희 정권 때처럼 왜 일사분란하게 청와대를 보좌 못하느냐는 식 아니겠어요."

동변상련일까. 그 자신도 한때 유임이 유력하게 점쳐지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김 부위원장은 "다 지나간 일에 대해 코멘트 하고 싶지 않다"고 웃음으로 넘겼다.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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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식 #방통위 #이경재 #최시중 #최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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