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티켓, 이건 대체 무슨 뜻일까?

[송준호 교수의 길거리 사회학] 愛·愛·愛... 이건 좀 심했네요

등록 2014.04.06 14:00수정 2014.04.1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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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씨앗,
애가 타도록 괴로운 것,
바보들의 이야기,
쓸쓸하고 달콤하고 슬프고 행복한 것 ,
머물지 않는 바람,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어둠의 분신,
꽃보다 진한 향기….

어디서 한두 번쯤은 들어본 말들 아닌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대중가요 가사의 일부다. 이중 '눈물의 씨앗'은 가수 나훈아가 부른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라고 하면서….


대중가요 가사만큼 남녀의 사랑을 주로 다뤄온 영역도 없을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정서면에서 '대중'의 공통된 관심사가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가져다주는 기쁨, 환희, 상처, 눈물, 절망 등을 망라한 게 대중가요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다. 부처는 일찍이 자비를 설파한 바 있다. 그 근간은 '사랑'이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신자와 불교도를 합치면 전체 인구수에 육박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그리스도와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대단히 '사랑愛的'(사랑애적)으로 살아왔음이 틀림없다.

사라진 듯한 '애'... 다시 활발히 쓰이는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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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애(愛) ⓒ 김지현

이름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김애자, 이애숙, 정미애, 권애숙, 강애란, 박애경, 유정애, 한영애…. 최근에는 영화배우 수애까지….


주로 여성 이름 가운데나 끝에 쓰였던 '애'는 두말할 것 없이 모두 '사랑 愛(애)'다. 어디 여성의 이름뿐이었으랴. 한자어 문화권에 속하는 우리는 이 '愛'를 여러 분야에 골고루 즐겨 썼다. 애장품, 애용품, 애교심, 애향심, 애국가, 부부애, 형제애와 같은 말 또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영화제목 '애마부인'과, 북쪽 사람들이 거의 독점적으로 쓰는 '경애하는'까지. '愛'는 어디든 갖다 붙이면 좋은 말이었다. 장안의 화제였던 '애마부인(愛馬婦人)'은 개봉을 앞두고 영상윤리심의위원회의 심의과정에서 '애마부인(愛麻婦人)'으로 강제 개명됐다고 한다. 말을 사랑(愛馬)한다는 게 지나치게 선정적이어서 그랬다는 후문이다.

요즘에는 적어도 여성들 이름에는 '愛'를 잘 안 쓰는 듯하다. 어딘지 촌스럽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예로부터 '경천애인(敬天愛人)' 사상에 뿌리를 튼실히 내린 가운데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는 게 최고의 미덕임을 철석같이 믿어 왔던 우리가 그 좋은 말을 함부로 내칠 리는 없을 터….

그런데, 작명계에서 속절없이 밀려나 잠시 방황하던 '愛'가 최근 들어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바로 광고 카피나 제목 등 영역에서다.

'음악愛 빠진愛', '가을은 독서愛 계절', '나愛 사랑' 같은 식으로 愛가 마구 쓰이고 있다. 그림을 보면 '디자인이 (요즘 애들 말로) 제법 간지가 난다'. 구체적인 예를 더 살펴보자.

여기저기 愛·愛·愛.... 좀 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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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흡연실에서 발견한 그림 ⓒ 송준호


흡연 愛티켓
차茶에도 예절이 있듯이
흡연에도 예절이 있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건강 문제까지는 왈가왈부하지 않을 테니 제발 남들 눈살까지 찌푸리게 만드는 일은 삼가 달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 카피에 갖다 쓴 '愛'는 또 뭐란 말인가.

'愛티켓'에 쓴 한자 '愛'의 뜻은 '사랑'이다. 우리말로 바꿔 읽으면 분명히 '에'가 아니고 '애'다. 요즘 愛(애)들이 한자를 아무리 몰라도 그 정도는 누구나 안다. '예의'를 뜻하는 영어 'etiquette'의 우리말 표준 발음도 '애티켓'이 아니고 '에티켓'이다.

혹시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맞아 한자말 '愛'를 우리말 '애'와 '에'로 모두 쓰기로 정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고 '愛티켓'이 무슨 '사랑(愛)을 나누는 티켓(ticket)'이라는 뜻도 아니지 않은가. 기왕지사 愛를 갖다 쓸 바에는 품위를 크게 높여서….

흡연 愛티켓,
차茶愛도 愛절이 있듯이
흡연愛도 愛절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愛'를 원없이 쓰고 볼 일 아니었을까.
#사랑 #애 #우리말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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