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에서 달걀을 빼면, 이런 변화가 옵니다

['고기 킬러' 채식 전도사 되다⑫] '욕심 한 뼘 덜어내기' 채식의 첫걸음

등록 2014.04.12 19:47수정 2014.04.12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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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기를 아주 좋아했고, 먹는 것에 대해 어떤 '관점'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밥상 위의 동물을 한낱 '고기 조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동물은 물론 인간, 지구를 심각하게 해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연재기사에서 저는 채식주의만이 옳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고기를 먹기 전 꼭 생각해봐야 할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고민하면서 '자기만의 관점'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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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봉지보다는 크고 A4 용지보다는 작은 넓이 '0.05제곱미터' EBS 지식채널e <닭장>의 한 장면 ⓒ EBS


신문을 세 번 접으면 만들어지는 넓이
'0.05제곱미터'의 또 다른 이름 '닭장'
라면 봉지보다는 크고, A4 용지보다는 작은 넓이 '0.05제곱미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간 획기적으로 효율적인 한 뼘의 공간
자동으로 공급되는 사료
3분의 1의 사료로도 3배나 빨리 자라는 닭
인공조명으로 조절하는 알 낳는 시간
사람 손길을 최소화한 '배터리식' 닭장

전 세계 500억 마리의 닭이 키워지는 한 뼘의 공간 '0.05제곱미터'
평생 날개를 펼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75센티미터도
부리로 쪼아댈 한 뼘의 땅도
품어야 할 새끼도 없는 '0.05제곱미터'

'0.05제곱미터'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순간… '죽음'
자연 상태에서의 수명 15~20년
그러나 잘 팔리는 무게 1.5~2킬로그램이 되는 40일경
달걀의 품질이 저하되기 시작하는 20개월경
사료의 낭비를 막기 위해 '0.05제곱미터'에서 꺼내진다

그리고 닭들이 맞는 또 다른 죽음… '살처분'
"고밀도로 닭을 기르는 방식은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폭발적으로 발생하기 위한 이상적인 조건이다." - 얼 브라운, 바이러스학자 (EBS 지식채널e <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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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 용지 한 장보다도 작은 공간에서 일생을 보내는 산란계들 우리는 이들이 '알 낳는 기계'가 아닌 '생명'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EBS 지식채널e <닭장>의 한 장면. ⓒ EBS


나 : "비빔냉면에 고기 고명은 빼주세요."
식당 주인 :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손님, 저희 식당은 한우만 써요."
나 : "그게 아니라, 제가 고기를 안 먹어서요…"


김밥의 햄, 비빔밥의 고기·달걀 고명…. 소심한 채식주의자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주문할 때 햄은 빼달라고 미리 말할까?' 바쁜 식당에서 이런 주문을 보태자니 눈치가 보인다. '그냥 알아서 먹지 말고 남길까?'

"비빔밥에서 달걀을 빼면 무슨 맛으로 먹어요? 달걀을 넣어야 맛있지…."

단골식당 사장님이 내게 항상 하는 말이다. 내가 비빔밥을 주문할 때마다 "계란은 빼면 되죠?"라고 먼저 확인해 주면서도 맛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그런 사장님에게 A4 용지보다 작은 공간에서 평생 알 낳는 기계로 살아가는 닭에 대해 이야기할 주변머리가 내게는 아직 없다.

버려진 고기 역시 '동물'이다. 게다가 오로지 도살을 위해 비참한 환경에서 살찌워진 동물이다. 그런 동물을 '쓰레기'로 만드는 건 그들을 한 번 더 죽이는 행위가 아닐까? 음식을 주문할 때 미리 빼달라고 말하는 것이 맞다. 이미 만들어진 음식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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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빵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버터·우유·달걀을 넣지 않은 비건 빵을 갖춘 제과점이 늘어나고 있다. ⓒ 조세형


채식주의라고 해서 고기를 전혀 안 먹는 건 아니다. 채식주의의 종류는 다양하다. ▲ 평소 채식을 하되 어쩔 수 없을 때 육식하는 '플렉시테리언' ▲ 눈에 보이는 고깃덩어리만 먹지 않는 '비덩'주의 ▲ 새·물고기만 먹는 '세미' 채식주의 ▲ 물고기만 먹는 '페스코' 채식주의 ▲ 우유·달걀만 먹는 '락토-오보' 채식주의 ▲ 우유만 먹는 '락토' 채식주의 ▲ 일체의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비건' 채식주의 등이 있다. 

원칙은 필요하다. 명확한 기준이 없다면 일관성도 없을 테고, 굳이 채식주의라고 부를 이유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다고 해서 위의 종류 중 어느 하나에 꼭 맞는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현대의 삶은 "내가 정확히 어떤 채식주의자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위의 분류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보다는 각자의 기준과 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채식주의란 '주어진 상황에서 동물의 고통과 희생을 최소화하는 마음가짐과 실천'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다시 말해서 고기·우유·달걀 중 무엇이든 가능한 것부터 줄이기 시작해서 범위를 넓혀나가는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기사에도 언급했지만, 채식주의는 '아무것도 죽이지 않는 완벽의 경지'가 아니다. 채식주의는 '고통과 죽음을 최소화하는 실천'이다. 또한 무분별한 살생과 최소한의 살생은 다르다는 걸 인식하는 것이다. '줄일 수 있는 고통'을 보자. 완벽에 대한 집착은 '하지 않을 핑계'만 늘리는 셈이다. (관련기사: 이런 채식, 불편하지 않으십니까? )

한국에서 채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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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의 채식주의 버전인 콩가스 콩, 밀, 쌀 등으로 만든 채식용 고기는 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고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 조세형


'채식주의'라는 말에서 녹황색 야채샐러드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채식주의자는 풀만 먹지 않는다. 알고 보면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서 반드시 고기가 들어가야 하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한국은 채식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곡식과 채소가 주재료인 한국의 전통 밥상이 바로 채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식단을 구성하는 곡식·콩·채소·해조류·견과류·과일이야말로 채식에 이상적인 식재료다.

우리나라에서 지금처럼 고기를 일상적으로 먹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고기는 일 년에 몇 번 구경하기 힘들 정도로 귀했다(물론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비만·성인병 등 이른바 '풍요의 질병'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식에서 불필요한 고기를 제외하거나 식물성 재료로 대체하면 채식이 된다.   

외식문화가 고기를 중심으로 발달한 오늘날, 채식주의자에게 외식은 다소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채식주의가 대중화된 서구에서는 많은 식당들이 채식주의 메뉴를 따로 갖추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런 곳이 흔치 않다. 그렇다고 외식을 아예 안할 수는 없으니 융통성을 조금만 발휘해보자. 

채식주의자를 위한 한식 메뉴로는 비빔밥·쌈밥·보리밥·사찰음식 등이 있다. 인도는 채식주의자가 많기로 유명한 나라이다. 인도음식 전문점에 가면 다양한 채식 메뉴가 있다. 기본 재료가 야채이면서도 재료 선택이 가능한 서브샌드위치 전문점에서도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다. 샤브샤브나 월남 쌈을 먹을 때는 고기를 야채로 바꿔달라고 하면 된다. 회식장소로 가장 많이 찾는 고깃집에서는 일행이 고기를 구워 먹는 동안 쌈 채소에 밥을 싸먹으면 된다. 

평소 도시락을 싸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비용은 물론 시간도 상당히 절약할 수 있다. 직장인은 동료들과 어울리면서 어영부영 흘려보내기 쉬운 점심시간을 나만의 시간으로 알차게 활용할 수 있다. 

채식 전문점은 그야말로 채식주의자의 천국이다. 아쉽게도 국내에는 채식전문 식당이나 쇼핑몰이 많지 않다. 또한 콩고기를 비롯한 채식 제품은 맛과 다양성에서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다. 맛이 없다고,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고, 성분이 마음에 안 든다고 이런 제품을 야박하게 평가하는 채식주의자들을 종종 본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육식이 범람하는 오늘날 채식 제품은 물론 채식을 지향하는 제품이 판매되는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채식주의자들부터 적극적으로 그런 제품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우리나라에도 채식을 위한 인프라가 늘어날 것이다. 동네마다 채식전문점이 하나씩은 있다고 가정해보자. 채식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다. 제품을 시장에 정착시키고 다양한 제품이 판매될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다.

욕심 한 뼘 덜어내기, 채식주의의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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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가 잘려나가는 병아리 사회적인 동물인 닭은 비좁은 닭장에 갇히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결과 공격성을 띠게 되어 다른 닭의 머리나 항문을 피가 날 때까지 부리로 쪼는 행동을 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병아리의 부리를 강제로 자른다. 병아리의 부리를 자르는 것은 사람에 비유하면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것과 같은 고통을 초래할 수 있다.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박상표·개마고원)의 본문을 촬영한 사진. ⓒ 조세형


공장식 축산이 동물은 물론 인간과 지구를 위해서도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08년 많은 국민들에게 광우병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준 고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개마고원)에서 과도한 육류섭취는 필연적으로 공장식 축산을 부른다고 지적했다.

또한 동물을 잔인하게 사육·도살하는 공장식 관행은 각종 질병과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인류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고발하면서, '동물복지가 결국 인간복지'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소비자들이 고기에 대한 탐욕을 줄이지 않은 채 농민들에게 유기농 축산이나 동물복지를 요구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가축 사육과 육류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소비자의 실천 없이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나 하나의 몫이라도' 줄이면 사육장의 비참한 삶도 그만큼 줄어든다. 한 달에 닭 2~3마리를 먹는 사람이 닭고기만 끊어도 일 년에 수십 마리의 닭들을 비참한 삶에 내던지지 않게 된다. 욕심을 한 뼘 덜어낼수록 한 뼘의 감옥에서 고통 받는 닭들도 줄어든다.

채식주의는 '채식천국·육식지옥' 따위를 외치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다.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려면 육식을 줄여야 한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현세대는 물론 후세대를 위한 책임있는 실천이다. 오늘부터 고기섭취를 한 번이라도 줄여보자. 이러한 작은 실천이 바로 채식주의의 첫걸음이다. 

(*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위 기사에 언급된 EBS 지식채널e <닭장>은 유튜브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http://youtu.be/nRr5kNfa4a4
#닭장 #공장식 축산 #채식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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