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때, 이런 말 하면 분위기 깬다?

['고기 킬러' 채식 전도사 되다⑬] 채식주의자들의 커밍아웃에 대해

등록 2014.05.07 18:40수정 2014.05.0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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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기를 아주 좋아했고, 먹는 것에 대해 어떤 '관점'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밥상 위의 동물을 한낱 '고기 조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동물은 물론 인간, 지구를 심각하게 해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연재기사에서 저는 채식주의만이 옳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고기를 먹기 전 꼭 생각해봐야 할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고민하면서 자기만의 관점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 기자말

채식주의자에 술도 못 마시는 신입사원 주훈의 만만치 않은 회사생활을 담은 영화 <날아라 펭귄>. ⓒ 국가인권위원회


"주위 사람들에게 채식한다는 사실 밝히시나요? 채식주의자라고 말하지 않고 어떤 핑계를 대면 고기를 피할 수 있을까요?"


인터넷의 채식커뮤니티에는 이런 질문이 종종 올라온다. 이른바 '채식주의 커밍아웃'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 원인으로는 개인의 성격, 인간관계의 친밀도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원인은 '다름'과 '다양성'에 익숙지 않은 사회 분위기에 있는 것 같다. 개인의 특성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문화가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그렇다. 채식주의자라고 말했다가 '유별난 사람'이나 '까다로운 사람' 취급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물론 모든 채식주의자가 그런 걱정을 하는 건 아니다. 요즘에는 각종 성인병 때문에 채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건강에 문제가 생겨 채식하는 사람에게 굳이 고기를 권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위 '이념적 채식주의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전혀 다르다.

이념적 채식주의자란 동물에 대한 비인도적인 처우, 환경오염을 비롯하여 오늘날 육식이 야기하는 문제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게 된 후 채식을 결심한 사람들이다. 이들에 대한 주위의 태도는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상대방의 신념을 존중해 주는 유형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함께 고깃집에 갔을 때 상대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이해해 준다. 또한 (너무나 고맙게도!) 함께 식사하는 장소를 고를 때 상대가 메뉴 선택에 불편을 겪지 않도록 배려해 주기도 한다.


두 번째는 상대방이 무엇을 먹든 상관하지 않는 유형이다. 이들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그저 신기하게 여기는 정도로 반응한다. 다시 함께 식사할 때 즈음에는 상대가 채식주의자라는 사실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무관심한 만큼 불필요한 간섭도 하지 않기에 마찰이 생기는 일은 없다.

세 번째가 바로 커밍아웃을 주저하게 만드는 유형이다. 이들은 상대방이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일종의 '돌격 태세'에 돌입한다. 그리고는 "건강해지려면 가리지 말고 먹어야 한다"는 설교로부터 "식물도 생명인데 왜 먹느냐"는 빈정거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태클을 걸어온다.

많은 채식주의자가 이런 갈등을 미리 방지하려고 "한약을 복용하는 중이라서" 또는 "알레르기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핑계를 댄다.

고기 먹는 사람은 '야만인'?

"본인이 채식한다고 육식을 즐기는 사람을 죄인이나 야만인 취급하면 안 되잖아요!"

채식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바탕에는 이런 호소가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이른바 '채식주의자의 우월감'에 대한 지적이 있다. 이런 지적이 생겨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고기 먹는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죄인'이나 '야만인' 취급한 일부 채식주의자의 잘못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태도는 본인의 우월감을 충족시켜 줄지는 몰라도, 상대는 채식주의에 반감을 느껴 등을 돌리게 된다. 결국, 손해를 보는 쪽은 동물들이다. 

나의 신념과 행동을 존중 받으려면 상대방도 똑같이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고기 먹는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것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또 다른 폭력이다. 잡식이 주류로 간주하는 사회에서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이런 태도는 동물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인간 혐오자'로 희화화하는 일반의 편견만 가중 시킨다.

채식주의자는 까칠하다? MBN 예능프로그램 <황금알>의 한 장면 ⓒ MBN


그런데 한편으로 이념적 채식주의자들은 '남들을 가르치려 든다'는 오해를 받기 쉽다. 사회심리학자 멜라니 조이 박사는 <동물을 위한 전략적 행동(Strategic Action for Animals)>에서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운동이 여타 운동과 구별되는 특징을 들어 그 이유를 설명한다.

어떤 착취나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은 고통의 당사자인 희생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희생자는 그 누구보다 강력한 윤리적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 시키는 존재이다. 따라서 희생자가 고통을 증언하는 과정에서 다소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대중은 별문제 없이 받아들인다.

반면 채식주의를 비롯하여 동물 착취에 반대하는 운동은 희생자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운동이다. 다시 말해서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목소리 없는 희생자'의 대변인이다. 따라서 동물을 착취하는 시스템에 대한 이들의 분노는 '도덕적 우월감'으로, 그리고 대중을 향한 설득은 '훈계'로 비치기 쉽다. 

이와 함께 조이 박사는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 동물을 소비함으로써 혜택을 얻는 오늘날의 현실을 지적한다. 사람들이 소비하는 제품의 상당수는 동물을 원료로 한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동물 착취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셈이다. 따라서 동물 착취에 대해 '순수하게 객관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이 박사는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적대시하지 말고 운동의 협력자로 견인하라고 강조한다. 공장식 축산은 농장동물을 '고기생산 기계'로 전락 시켜 학대하고 괴롭힌다. 게다가 이런 산업으로 가장 많은 이윤을 거두는 쪽은 가축을 사육하는 농민들이 아니라 식품 생산·유통·소비의 과정을 장악한 다국적 거대 농축산기업들이다. 뿐만 아니라 농장동물에게 투여하는 항생제와 호르몬제는 사람의 건강을 위협한다. 또한 농장동물의 트림·방귀·분뇨는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키며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다시 말해서 공장식 축산 시스템은 인간·동물·지구 전체를 희생 시킨다.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적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의 현실을 지탱하는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연대의 대상이다. 

'커밍아웃' 할까, 말까?

단순히 식성이 아닌 신념 때문에 채식을 하는 사람도 많으니 비하하지 말고 존중해줘야 한다고 말하는 문화평론가 김갑수. MBN 예능프로그램 <황금알>의 한 장면. ⓒ MBN


4년 전, 나 역시 고민했다. 채식을 시작하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1박 2일로 떠나는 직장 야유회가 다가왔다. 나는 평소 도시락을 싸서 다녔기 때문에 직장에서는 채식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커밍아웃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다가온 것이었다.

'저녁에 틀림없이 고기를 구울 텐데 왜 안 먹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지? 채식한다고 솔직하게 말할까? 아냐, 그건 너무 튀는 행동 같아서 부담스러워. 어떻게 하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고기를 안 먹을 수 있을까? 그런데 나는 왜 이런 고민을 하지? 채식하는 것이 죄도 아닌데…'

미국의 동물보호 활동가 브루스 프리드리히는 채식하는 이유를 취향이나 건강으로 둘러대지 말라고 한다. 그는 "동물의 고통을 늘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솔직히 밝히라고 한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에게 끔찍한 조건에서 사육되는 농장동물의 고통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주라고 한다.

다만 그는 이런 이야기를 '지혜롭게' 전달하라고 강조한다. 고기를 먹는 사람들 앞에서 동물의 고통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으면 분위기를 망치고 반감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이런 주제로 대화를 독점하는 것을 피하라고 권고한다.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를 짤막하게 밝히되,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를 봐서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야유회에서 커밍아웃했을까? 고민이 무색하게 결론은 무척이나 시시했다. 그날 내게 고기를 왜 안 먹느냐고 묻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내가 불판 위의 고기에 젓가락을 대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눈치 채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다들 자기 몫을 챙겨 먹기에 바빴기 때문이었다.

그 후 이런저런 기회를 통해 커밍아웃했는데, 이에 대한 주위의 반응은 거의 두 부류였다. 나의 신념을 존중해 주거나 상관하지 않거나. 소심한 채식주의자들의 걱정과 달리 사람들은 남들이 무엇을 먹는가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술을 강요하는 사람이 있듯이, 고기를 강권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신념에 대해 비아냥대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이해 받을 수는 없다. 나의 신념을 조롱하는 사람의 관계는 그에 맞춰 조정할 일이다. 

채식주의 선언 후 광고에 많은 제약을 받게 되었다고 말하는 가수 이효리. SBS <힐링캠프>의 한 장면. ⓒ SBS


몇 년 전, 채식주의자로 알려진 어느 여성 탤런트가 방송에서 고기를 먹는 장면으로 논란에 휩싸인 일이 있었다. 거센 비난 여론에 "고기를 삼키지 않고 바로 뱉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당시 내 주변에도 배신감을 느꼈다며 그녀를 비난하는 채식주의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채식주의자로서 고기를 입에 넣는 행동이 물론 바람직한 건 아니다. 그러나 직업 때문에 고기를 먹는 장면을 연출하고, 그것을 뱉었다고 해명하는 과정에서 한 생활인의 고단함이 느껴져 안쓰러웠다.

연예인의 채식 선언은 많은 제약을 감수하는 일이다. 한 예로 가수 이효리는 채식주의를 선언한 후 동물을 원료로 하는 제품 광고를 못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고충을 감수하면서도 신념을 밝힌 연예인들에 대한 시선이 좀 더 따뜻해졌으면 한다. 우리는 그들이 신념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지 감시(?)하기보다는 그들의 진정성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나라면 직장에서 어떤 불이익이 있더라도 상사가 권하는 고기 한 점을 거절할 수 있을까? 어떤 상황에서도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게다가 불이익을 감수하는 내 모습을 보며 채식하기로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불가피한 일탈을 '신념의 포기'가 아니라 '보다 완성된 단계로 나아가는 실천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아쉽다.

우리사회가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는 분위기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채식주의를 실천한다고 당당하게 밝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런 사회에 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본문에 언급된 브루스 프리드리히의 조언은 <동물과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들>(피터 싱어 저·시대의창)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채식주의 #커밍아웃 #문화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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