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운 '369증후군', 고양이 한 마리가 해결했다

['고기 킬러' 채식 전도사 되다⑮] 채식, 나 자신을 바꾸는 과정

등록 2014.05.12 19:50수정 2014.05.1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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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기를 아주 좋아했고, 먹는 것에 대해 어떤 '관점'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밥상 위의 동물을 한낱 '고기 조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동물은 물론 인간, 지구를 심각하게 해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연재기사에서 저는 채식주의만이 옳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고기를 먹기 전 꼭 생각해봐야 할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고민하면서 자기만의 관점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 기자말

채식 후 순대, 만두, 치맥이 생각난다고 말하는 가수 이효리. SBS <힐링캠프>의 한 장면. ⓒ SBS


리어 키스라는 미국인 여성이 있다. 20년 동안 엄격한 비건(Vegan), 즉 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로 살던 그녀는 몸과 마음의 병을 얻는다. 자신이 병든 이유가 채식주의 때문이라고 결론짓고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한다.


리어가 잡식으로 돌아서게 된 여정은 <채식의 배신>(김희정 역·부키)이라는 책으로 국내에 소개됐다. 리어가 건강 회복을 위해 20년 만에 찾은 고기는 참치 통조림이었다. 그녀는 참치를 먹자마자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고동치는 것을 느꼈다"라고 회고한다. 마침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됐고, 그 후 날마다 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이 '참치 에피소드'는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면 과장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참치 한 입에 온몸의 세포가 고동치다니…. 리어는 음식을 먹자마자 영양분이 온몸의 세포로 직행하는 신체구조라도 지닌 걸까? 그녀의 요란스러운 반응은 그동안 억눌려있던 고기에 대한 갈망이 폭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기를 끊은 후 감각이 예민해지면서 고기의 맛과 냄새를 자연히 멀리하게 됐다는 채식주의자들이 많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리어는 20년 동안이나 채식을 하고도 무리 없이 고기를 먹었다. 과거에 즐겨먹던 음식을 그리워하는 채식주의자들도 있다.

채식주의자로 유명한 가수 이효리가 이런 말을 했었다. 만두, 순대, 치맥이 먹고 싶은데, 한 번 먹으면 통제할 수 없을까봐 먹지 않는다고…. 나 역시 그랬던 적이 있었다.

다르게 산다는 것

일상에서 동물의 고통을 줄여보겠다는 마음으로 채식을 시작했다. 그런데 채식이 습관이 된 후 알게 됐다. 기대하지 않은 수확을 얻었다는 사실을. ⓒ free image

채식이 단순히 먹고 싶은 것을 참는 것이라면, 차라리 극기 훈련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채식은 극기 훈련이 아니다.


김우열은 <채식의 유혹>(퍼플카우)에서 채식을 '다르게 사는 것'으로 정의한다.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 자신'과 다르게 사는 것이다. 채식은 먹는 것만 바꾸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을 바꾸는 과정'이다. 

채식을 하기 전, 나는 우울했다. 직장생활 10년째, 내 몸은 너무나 피로했다. 뱃살은 두꺼워졌고, 속은 더부룩했으며, 머리는 항상 흐리멍덩했다. 변비와 두통은 일상이 됐다. 

하지만 나를 무엇보다 괴롭힌 것은 정신적 피로였다. 무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 때문이 아니라 매너리즘 때문에 피로했다. '369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반복되는 업무와 똑같은 대인관계 등으로 직장인들이 3개월 단위로 이직이나 전직을 고려하는 증상이다. 이런 증상은 내게 이미 만성이 돼 있었다.

그나마 한 달에 한 번 '투여'받는 월급이라는 마약이 나를 버티게 해줬지만, 문제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책을 읽어도, 새로운 공부를 해도 '무엇을 위해서' 하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남들이 하니까'라는 대답이 전부였다. 삶에 방향성이 없으니 무엇을 하든 열의가 생길 리 없었다.

그러던 중, 반려고양이를 만났다. 말로는 "소·돼지·닭도 내 고양이와 다르지 않다"라고 하면서 그들을 먹는 모순이 싫어서 채식을 시작했다. 일상에서 동물의 고통을 줄여보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채식이 습관이 된 후 알게 됐다. 기대하지 않은 수확을 얻었다는 사실을.

수확이란 바로 생각과 행동이 더 이상 모순되지 않는 '내 안의 통합'이었다. 지금의 삶이 훨씬 '나다운 삶'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툭하면 우울해지던 성격은 긍정적으로 변했다. 동물에서 시작된 약자에 대한 감수성은 다른 사회문제로 확대됐다.

그러자 나 혼자의 실천에 머무르지 않고 동물의 고통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전업 활동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게 됐다.

내게 일상은 더 이상 지루하지 않다. 이제는 매 순간이 미래를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얽매이지 않는 자유

채식과 동물보호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달라진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효리. SBS <힐링캠프>의 한 장면. ⓒ SBS


줄어든 식탐은 채식의 또 다른 수확이었다. 채식을 하고 싶지만 "먹는 낙을 포기할 수 없다"라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자. 

먹는 낙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를 구속한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산해진미가 넘치는 요즘 같은 세상에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담당의사가 먹지 말라고 해서, 살이 찔까봐 못 먹는 괴로움도 무시할 수 없다. 차라리 그런 즐거움을 놓아버리면 어떨까? 얽매이지 않는 자유가 먹는 즐거움보다 훨씬 클 수도 있다.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모든 동물을 먹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지구상의 동물 가운데 극히 소수의 종을 먹는다. 게다가 식용으로 간주되는 동물은 문화마다 다르다. 쥐를 먹는 상상을 하면 혐오를 느낄지도 모르지만, 어떤 나라에서 쥐는 엄연한 식용동물이다. 많은 나라에서 개는 식용동물이 아니다.

개나 쥐를 먹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먹지 못해서 딱히 아쉬워하지 않는다. '먹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니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이다. 채식주의를 '먹지 않는 것들의 목록을 하나씩 정리하는 과정'으로 생각해보자.

법륜 스님은 "어떻게 하면 담배를 끊을 수 있냐?"라는 물음에 "아무리 피우고 싶어도 안 피우면 된다"라고 답했다. 담배가 생각나서 죽을 것 같아도 피우지 말라고 한다.

"어떻게 하면 담배를 끊을 수 있냐?"라는 물음은 뜨거운 컵을 손에 쥔 채 "어떻게 하면 이 컵을 놓을 수 있냐?"라고 묻는 것과 같다고 한다. 결국 "놓기 싫다"라는 말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담배도 피우고 싶으니까 끊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그 생각을 놓아버리라고 한다. 

놓아 버린다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른바 '템플 스테이'라고 하는 산사체험을 하고 나서도 일상으로 돌아오면 아집을 버리지 못하는 게 사람이다. 이런 글을 쓰는 나조차 버리지 못한 욕심이 너무나 많다. 

삶은 단번에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변화를 위한 실천은 헛되지 않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작은 변화들이 모이면, 당신의 삶은 몇 년 후 크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채식이 당신을 변화시키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채식의 배신 #리어 키스 #채식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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