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에 침묵하라는 박근혜 정부...거부한다

[게릴라칼럼] 다시 선언한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교사가 진짜 교사다

등록 2014.05.20 20:18수정 2014.05.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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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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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고 행동하겠습니다" 세월호침몰사고 32일 째인 지난 17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독립공원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및 참교육 사수 전국교사대회'가 열렸다. ⓒ 이희훈


죄 없는 국민 300여명이 차가운 바다에 수장되는 참사가 발생한 지도 한 달이 넘었다. 특히, 그 중 다수가 학생들이라서 더욱 마음이 무겁다.

지난 8일은 어버이날이었다. 아마 어버이날이라는 기념일이 생긴 이래로 가장 슬픈 어버이날이었을 것이다. 카네이션 대신 스스로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단 부모의 마음, 그걸 달아줄 자식을 잃은 어버이의 마음이 어땠을까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먼저 간 부모는 산에 묻고, 먼저 간 자식은 부모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가슴에 박힌다. 생때같은 자식들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부모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어버이날은 이렇게 지나갔다.

곧이어 스승의 날이 지나갔다. 이번 스승의 날 역시 단원고 교사들에게, 어쩌면 전국의 모든 교사들에게 역사상 가장 슬픈 스승의 날이었을 것이다. 어느 언론도 스승의 날 기념식이 어땠다는 보도를 하지 못했다. 학생회 차원에서 진행해 왔던 카네이션 달아주기 행사도 없어졌고, 찾아오는 제자들의 발길 역시 눈에 띄게 줄었다.

아이들이, 자식 같은 제자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방송을 그대로 따르다가, 그 방송을 들은 선생님들의 '가만히 있어라'라는 지시를 따르다가 참변을 당했다는 사실에 대다수 교사들의 마음이 무거워졌을 테니 당연해 보인다.

15명의 인솔 교사 중 3명만 살아서 세월호를 탈출했고, 그 중 한 분인 교감은 '혼자 살기 벅차다'면서 제자들 곁으로 가버린 안타까운 일이 생겨 우리 교사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자기들만 살겠다며 승객을 버리고 탈출해서 전원이 살아남은 선박직 승무원들과 대비해보면 더욱 슬픈 상황이다.

역사상 가장 침울한 스승의 날은 이렇게 다가왔다. 전국의 교사들이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제자들의 명복을 빌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려고,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참회의 행동에 나섰다.

'구조는 늑장, 징계는 번개'라는 비아냥거림을 어쩔 건가


스승의 날 하루 전인 14일에는 서울 한복판에서 수백 명의 교사들이 삼보일배와 촛불행진을 한 후 시청 분향소를 찾아 합동조문을 했다. 이후 현직 교사 1만5852명은 실명으로 '세월호 참사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교사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많은 현직 교사들이, 그것도 서명을 시작한 지 불과 3일 만에 실명 선언에 참가한 것은 엄청난 일이다.

교사들이 제자와 동료의 안타까운 죽음에 슬픔을 나누는 것도 당연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행동하겠다는 결의를 표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그와 동시에 이 참사의 최고 책임자에게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 역시 지극히 상식적인 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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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교사 1만5000여명이 실명으로 세월호 참사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교사 선언에 나서자 정부를 이를 불법으로 규정한 공문을 각 학교로 내려보냈다. 지난 5월 16일 교육부의 공문을 각 학교로 이첩한 서울육청 공문 일부. ⓒ 서울시교육청


그런데 이런 교사들에게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것은 반성과 책임이 아니라 '징계'의 칼날이다. 현재 징계의 위기에 놓인 직접적인 대상은 실명으로 청와대 게시판에 정권퇴진 요구 글을 올린 43명의 교사들이지만, 교육부는 실명으로 교사 선언에 참여한 이들에 대한 징계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자유게시판에 '아이들, 그리고 국민을 버린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서는 교사 선언'이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간 것이 13일인데 정부는 하루 만인 14일 징계 절차에 돌입했다.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참여 교사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징계 처분과 형사 고발 등 엄정하게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죄 없이 수장된 아이들을 구하는 데는 그렇게 늑장이고 무능하더니 세월호 참사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고 정권의 책임을 추궁하는 교사들의 징계는 번개처럼 신속하다'는 비아냥거림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단 하루 만에 내려진 징계요구에 강원 민병희, 광주 장휘국, 전북 김승환 교육감 등은 협조할 수 없다고 밝혔고, 현재 6.4 지방성건거에 교육감으로 나선 일부 후보들도 '적반하장'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교사들은 공무원이니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집회에 '절대로' 참여하지 말라는 공문을 내리는 정권이다. 현재 휴직하고 있는 교사가 개인적인 공간인 SNS에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것을 두고 징계 운운하는 정권이니, 할 말 다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말하는 교사들을 징계하는 것은 교사들의 입을 막고, 비판세력을 주눅 들게 하겠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 박근혜 정부

나는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지지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업무와 관련된, 직위를 이용한 정치적 중립에 한정되는 것이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으로 악용되는 것에는 반대한다.

지금까지 교사들은 교육부 장관과 교육감의 퇴진 수없이 요구해 왔지만 이를 이유로 교사를 징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통령을 비판하고 정권 퇴진을 요구한다고 비국민이 되는 것이 아닌 것과 똑같은 이치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이명박 정권에 이어 교사들에게 침묵할 것을 요구하고 정치적 금치산자가 될 것을 요구한다. 입을 닫으라 하고, 행동을 멈추라 한다.

세월호사건의 가장 큰 교훈은 "가만히 있지 말라"는 것이다. "이견(異見)이 있으면 말하고, 부당한 지시면 거부하라"고 가르치지 못한 것을, 아이들이 죽음으로 질타하고 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아이들이 죽음으로 외치는 교훈을 가장 잘 실천하는 길이라고 본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정치적 중립'이라는 거창한 말로 교사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 정권이 바라는 교사는 히틀러 정권의 '국가안보경찰본부 유대인담당 과장'이자 '유대인 이주국 책임자'로서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자기 업무로 알고 충실"하게 수행한 아돌프 아이히만 같은 관료들인 것 같다. 아이히만은 아돌프 히틀러의 광신자도 아니었고, 나치 정권에 대한 맹목적 지지자도 아니었다. 그는 착한 아들이었고, 따뜻한 이웃이었으며 '충실한 공무원'이었다. 그는 수백만의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일을 하면서도 죄의식이 없었다. 공무원으로서 자기 업무가 그것이었기 때문에 충실하게 상부의 명령을 따르며 자기 일을 처리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재판정에서 아이히만은 "나는 죄가 없다,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라며 무죄를 강변했다. 그렇다. 사형이 선고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까지 그는 그의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죄는 자신의 판단 없이 상부의 명령만 따른 것이다. 공무원이기 이전에 인간의 도리를 생각하지 않은 것, 그것이 그의 죄이다. 독일 국민이 아니라 나치 정권에 충성한 것이 그의 죄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교사들에게 세월호 관련 집회에 참가하지 못하게 하는 공문을 내리는 것은 교사들로 하여금 아이히만이 되게 하는 것이고,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과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교사 선언을 못하게 하는 것 역시 또 다른 아이히만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런 공문을 근거로 교사들을 압박하는 이들은 자신이 아이히만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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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국화 '미안한 교사의 마음' 세월호침몰사고 32일 째인 지난 17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독립공원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및 참교육 사수 전국교사대회'에 참여한 교사가 국화를 들고 있다. ⓒ 이희훈


평범한 아이히만을 극악한 살인마로 만든 것은 나치라는 사회적, 제도적 구조이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 정치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이런 참사를 반복하지 않을 제도적 장치를 만들 것을 주장하며, 최고 책임자의 무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아이히만이 되지 않겠다는 교사들의 당연한 다짐이다.

교사는 '아이히만'도, '어떤 관료'도 될 수 없다. 교사들에 침묵을 강요하는 정권의 징계 협박에서 떠오르는 사람이 아이히만 외에 또 한 명 있다. 고(故) 김남주 시인의 '어떤 관료'이다.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김남주 작 - '어떤 관료' 일부)

이 시의 제목이기도 한 '어떤 관료'에서 김남주 시인은 '봉급을 주는 사람을 주인으로 섬기는 관료(공무원)'을 "개밥을 주는 사람을 주인으로 아는 개"라며 비난했다. '어떤 관료'는 한국판 아이히만이다. 일제, 미군정, 자유당, 공화당, 민정당을 거치면서 '묵묵히' 정권이 시키는 대로 자기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을 국가에 대한 충성이자 국민에 대한 봉사로 알고 살았던 '어떤 관료'가 지금 정권이 바라는 '침묵하는 교사'의 이미지와 정확히 겹쳐진다.

생각하기를 거부하면 자신도 모르게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는 '아이히만'의 경고,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공무원은 독재 정권의 하수인이 된다는 '어떤 관료'의 교훈을 박근혜 정부와 교육부는 되새겨야 한다.

생각하는 교사라야 진짜 교사가 될 수 있다. 저항을 포기하면 스스로 노예가 된다고 했다. 인류 역사에서 진짜 큰 불행은 저항했기 때문이 아니라 불의에 복종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제자들과 동료 교사들의 죽음을 눈앞에 묵도하면서 교사들은 '아이히만'이, '어떤 관료'가 될 수 없다. 이는 아이들에 대한 도리도 아니고, 교육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선언한다.

"아이히만이 되지 않겠다. '어떤 관료'도 되지 않겠다. 결단코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세월호 #박근혜 #교사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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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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