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이가' 청와대가 인사 참사 불렀다

[取중眞담] 재림한 '선거의 여왕', 최악의 수 던진 이유

등록 2014.05.30 11:30수정 2014.05.3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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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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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흘리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도중 의로운 희생자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전례 없는 지방선거전이 이어지고 있다. 투표일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건 각 지역의 후보가 아니라 청와대,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다.

이건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위기에 빠진 청와대가 잘 짜인 각본대로 움직인 탓이다. 지난 19일 박 대통령은 눈물의 대국민담화에 이어 공식선거운동 시작 일이었던 22일에는 안대희 국무총리를 지명했다. 수족과 같았던 남재준 국정원장과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내쳤다.

눈앞에 닥친 지방선거전에서 위기에 빠진 정부여당에 대한 여론을 반전시키고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그렇게 '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통령은 지방선거의 가장 큰 변수로 등장했다. 당연히 언론의 관심도 박 대통령의 승부수에 쏠렸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존립의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을 구하기 위해 천막당사를 차렸던 것처럼,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비상대책위를 꾸려 당의 색깔을 빨간색으로 바꾼 것처럼, '선거의 여왕'은 대통령이 돼서도 선거의 전면에 등장했다. 

최악의 수로 드러난 '선거 여왕'의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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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를 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대통령이 나서자 새누리당은 반색했다.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다가 기세 좋게 반격 채비를 했다. 반면 "선거의 여왕 재림"에 야권은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회심의 승부수는 일주일 만에 최악의 수로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고비 때마다 발목을 잡았던 인사가 결정적인 국면에서 또다시 정권에 큰 타격을 안겼다.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되는 인사 참사를 거치면서 청와대는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사위원회를 만들었다. 고위 공직 후보자들에 대한 추천, 검증은 인사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진다. 기본적인 검증 항목만 해도 병역, 전과 전력, 부동산 투기 및 편법 증여, 세금 납부, 재산 등이 모두 포함된다.

안대희 후보자를 낙마시킨 결정적인 이유였던 거액의 수임료와 전관예우는 인사위원회가 들여다봐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검증 대상 중 하나다. 청와대가 16억여 원에 이르는 안 후보자의 수임료를 몰랐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셈이다.

전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미 이명박 정부시절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대검차장에서 물러난 뒤 법무법인에서 일하며 7개월간 7억7000만 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드러나 결국 전관예우 논란에 발목이 잡혔다. 

당시 여론이 들끓었고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서도 자진사퇴 요구가 나왔다. 정 후보자는 결국 내정 12일 만에 물러났다. 이후 퇴직한 판검사가 마지막 근무지였던 법원·검찰청의 사건을 1년간 수임할 수 없도록 하는 '전관예우 금지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후퇴한 고위 공직자 검증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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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합니다" 안대희 총리 후보자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2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사퇴 발표를 한 뒤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법조인 출신 고위 공직자의 전관예우를 대하는 기준은 후퇴했다. 이미 사의를 밝힌 정홍원 국무총리도 24개월간 법무법인에서 일하면서 10억 원가량을 벌었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도 부산고검장 퇴임 이후 대형 법무법인으로 옮겨 17개월간 16억 원을 벌어들여 또다시 전관예우 논란이 일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여당의 비호 속에 인사청문회를 통과했다.

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자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인사위원회가 검증 과정에서 정동기 전 후보자의 3배가 넘는 과도한 수임료를 몰랐을 리 없지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과거 전례와 국민 정서는 고려하지 않고 허점투성이인 전관예우금지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면죄부를 줬다. 심각한 정무적 판단 착오는 박근혜 정부 들어 벌써 두 번째 총리 후보자 낙마 사태를 불렀다. 

인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한 책임론이 커지고 있지만, 사실 김 실장이 몸통은 아니다. 이번 인사 참사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역시 박근혜 대통령이 자초했다. 안대희 후보자의 낙마는 불통 인사로 불리던 '수첩 인사'가 누적되면서 예고된 참사였다.

좁은 수첩에서만 인재를 구하다 보니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해 홍경식 민정수석, 우병우 민정비서관, 권오창 공직기강비서관 등 검증 라인은 법조계, 특히 검찰 출신이 대부분 장악했다. 5·6공 시절 육법당(육군사관학교와 서울대 법대 출신 법조인)이 부활했다는 비판에도 박 대통령의 법조인 의존도는 시간이 갈수록 더 높아졌다.

법조인이 장악한 청와대... 견제와 균형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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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무역투자진흥회의 및 지역발전위원회 연석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함께 입장하는 모습. ⓒ 연합뉴스


'동종교배 인사'의 결과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 붕괴였다. 인사 추천과 검증을 모두 법조인 출신, 그것도 선후배 관계로 얽혀 있는 영남 출신 인사들이 모두 주도하면서 '집단 사고'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집단사고라는 말을 처음 만든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어빙 제니스에 따르면, 아무리 우수한 집단이라도 구성원들의 사회적 배경이 같고 이념적 동질성이 같을수록 밖에서 보기에 엉뚱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커진다. 또 조직을 이끄는 강력한 리더가 있을 경우 그 가능성은 더 커진다. 폐쇄적인 불통 구조 때문에 외부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고 내부에서도 문제 제기를 포기하는 경향이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유행어를 만든 김기춘 실장이 주도하고 있는 청와대에 딱 들어맞는 설명이다.

청와대가 척결하겠다고 밝힌 '관피아'도 사실 관료조직의 폐쇄적 운영으로 인한 동종교배 인사가 낳은 괴물이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에서 여권을 구할 구원투수로, 관피아를 척결할 임무를 수행해야 할 안 후보자를 고르고 추천한 것도 동종교배로 이뤄진 청와대였다.

게다가 법원과 검찰을 떠난 후 전관의 이력을 바탕으로 대형 법무법인에서 근무하다 다시 공직으로 돌아온 '법피아'들이 안 후보자의 전관예우에 대한 검증을 맡은 것도 아이러니다. 

박 대통령의 법조인 사랑과 동종교배 인사를 바꾸지 않는 한 인사 참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장관을 바꾸고 공직사회에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기 전에 김기춘 실장을 정점으로 하는 청와대의 인적 쇄신,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변화가 우선이라는 지적은 이제 입이 아플 정도다.
#안대희 #박근혜 #김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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