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자장면? '짜장면'으로 쓰는 건 어떨까요

[송준호 교수의 길거리 사회학] 입맛을 부르는 말 '짜장면'

등록 2014.06.10 11:24수정 2014.06.1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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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술은 막걸리와 소주, 국민 안주는 삼겹살, 국민 간식은 치킨, 그럼 국민 식사는? 밥. 아닌데? 그럼 혹시…, 라면? 그것도 아닌데? 맞다, 짜장면! 바로 그거거든. 정말? 당연하지. 짜장면은 중국에서 온 거라던데? 누가 뭐래도 투철한 소신에 입각해서 짜장면에 한 표….

짜장면은 중국 산동반도 사람들이 프라이팬에 볶은 토속 면장에 국수를 비벼 먹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오늘날의 짜장면은 1900년대 초 인천에 거주한 화교들이 조리해서 먹기 시작했다는 게 정설인 듯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중국음식점(청요리집)으로 알려진 '공화춘'도 그곳에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고 한다.

'국민 식사'라 불려도 손색없을 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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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반 짜장 ⓒ wiki commons


짜장면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음식도 없다. 이 땅에서 살아온 대부분의 우리에게는 가히 추억 그 자체라고 이를 만하다. 지금도 초·중·고등학교 졸업식날이면 전국 각지의 중국집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짜장면을 배달하는 철가방도 아파트 단지마다 줄을 잇는다. 과거에 비해 먹거리가 다양하고 풍부해졌는데도 그 기세가 조금도 꺾일 줄을 모른다.

지금 전국에는 대략 2만4000개의 크고 작은 중국음식점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만들어 파는 짜장면이 하루에 600만 그릇을 넘는단다. 국민 여덟 사람 중 한 명은 짜장면을 거의 매일 먹고 있는 셈이다. '국민 식사'로 손색이 없다.

짜장면은 또 배달음식을 대표한다. 철가방 하면 짜장면이다. 물론 수량만 놓고 따지면 치킨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다. 저녁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닭 튀김 냄새로 그득한 것만 봐도 한눈, 아니 '한코'에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야참'이거나 맥주 안주로다. 점심 식사로 배달시켜 먹기로는 짜장면이 지금도 수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짜장은 레시피에 따라 간짜장, 삼선짜장, 유니짜장, 사천짜장 등으로 나눠진다. 간짜장은 고기와 야채와 춘장을 볶아서 만든다. 삼선짜장은 고기 대신 각종 해물을 쓰고, 유니짜장은 고기와 야채를 갈아 넣는다. 사천짜장은 고추기름으로 맵게 조리한 것이다. 짜장과 면을 함께 볶아서 큰 쟁반에 담아 내오는 '쟁반짜장'도 중국집 정식 메뉴에 올라 있다.


'반점' 하면 떠오르는 중국집, 실제 중국어에서는...

중국음식점의 상호도 몇 가지로 분류된다. 'OO루'나 'OO원' 'OO향' 같은 상호는 비교적 고급 중화요리집에서 쓴다. 중화루, 북경루, 아서원, 백리향 같은 이름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OO성'도 중국집 상호로 많이 쓰인다. 그럴 경우에는 자금성, 사천성, 만리장성처럼 중국의 유적지 명칭을 그대로 따다가 쓰는 게 보편화돼 있다.

서민들에게 친숙한 상호는 뭐니뭐니 해도 'OO반점'이다. 홍콩반점, 산동반점, 광동반점 등 주로 중국의 지명에 '반점'을 붙인다. 주택가 배달 전문 중국집 이름으로는 대명반점, 형제반점 같은 토속적인(?) 이름을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반점(飯店)'은 '식당'의 중국식 이름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중국 여러 도시를 가보면 그건 주로 고급 호텔 이름으로 쓰인다. 

문제는 상호가 아니라 '짜장면'이라는 이름이다. 짜장면의 본디 이름은 '작장면(炸醬麵)'이다. 중국식으로 발음하면 '자지앙미엔' 혹은 '짜지앙미엔'이다. 그걸 줄여서 부르다 보니 '자장면'이나 '짜장면'이 된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둘 다 우리말이 아니다. 하긴 그 넓은 중국 땅 어디를 가도 지금 우리가 먹는 것과 똑같은 짜장면은 찾기 어렵다. 

우리 식으로 개량해서 즐겨 먹어왔고, 또 범국민적 사랑까지 받고 있으니 짜장면도 이제는 우리 음식이라고 할만하다. 그 명칭도 마찬가지다. '자장면'이든 '짜장면'이든 한자로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 이미 우리말이 됐다. 그런데도 한동안 '자장면'만 표준어로 인정해 왔다. 된소리인 '짜'를 순화시키겠다는 취지에서였을 것이다.

표준어를 구사해야 하는 아나운서들은 꼬박꼬박 '자장면'이라고 발음해야 했다. TV방송 자막에도 '짜장면'은 쓸 수 없었다.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할 때도 '짜장면'이라고 쓰면 붉은 밑줄이 그어졌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짜장면'이라는 용어를 잘못 썼다가 '자장면'으로 정정하는 일까지 비일비재했다.

'짜장면'을 지켜온 사람들

물론 그 와중에도 '짜장면'을 굳건히 고수한 이들도 많았다. 안도현 시인 같은 이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자신이 펴낸 책 이름을 일부러 <짜장면>이라고 지은 바 있다. 그뿐이 아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짜장면을 먹자고 해야지, 자장면을 먹자고 하면 영 입맛이 당기지 않을 게 뻔하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짜장면' 지킴이를 자처한 중국음식점도 수두룩했다. 특히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동네 중국집 사장들은 '자장면'만 표준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메뉴판에 '짜장면'이라고 쓰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그건 철가방에도 마찬가지였다.

고급 중화요리집을 표방한 곳에서는 달랐다. 그들은 대부분 메뉴판에 '자장면'이라고 표기했다. 심지어는 종업원들에게까지 손님을 대할 때 반드시 '자장면'이라고 발음하도록 교육시키는 곳도 있었다. 어쩌다가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이 '짜장면'을 시키면 '자장면'이라고 친절하게 정정해주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부당한 공권력(?)에 오랫동안 탄압을 받아왔던 '짜장면'이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한 때는 2011년 8월 31일부터다. '짜장면'도 '자장면'처럼 표준어로 인정된 것이다. 그때부터 누구나 남의 눈치를 안 보고도 '짜장면'이라고 당당하게 쓰고 주문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자장면'을 썼던 중국음식점들도 기다렸다는 듯 '짜장면'으로 바꿔 쓰기 시작했다. '짜장면'에 애착이 강했던 중국집 사장들 중에는 메뉴판을 아예 새로 제작하는 이들도 있었다. 출입문이나 외벽에 '자장면'이라고 쓴 것도 모두 바꿨다. 메뉴판 제작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자장면'의 '자'에 획을 하나 더해서 '짜'로 바꾼 곳도 여럿이었다.

'자장면'을 고집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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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급 중화요리집의 메뉴판 ⓒ 송준호


지금도 '자장면'을 끝끝내 고집하는 곳도 물론 있다. 주로 규모가 크고 내부시설이 으리으리하게 꾸며진 중국집의 경우다. 물론 '자장면'도 표준어로 인정되고 있으니 그걸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짜장면'을 '자장면'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많은 사람들이 과거나 지금이나 '짜장면'을 부르며 주문해오지 않았나.

이렇게 호텔 중식당 같은 고급 중화요리집에서 유독 '자장면'을 고집하는 가장 이유는 '자장면'이 '짜장면'보다 어감이 부드러워서 고급스러운 품격을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처럼 메뉴판에 '옛날쟁반자장', '유니자장면', '삼선자장면'이라고 적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보이는 바와 같이 꼬박꼬박 '자장'이고 '자장면'이다. 그 바로 아래 적힌 '삼선짬뽕'으로 슬그머니 눈길이 간다. '짬뽕'은 어째서 '잠봉'이라고 바꿔 쓰지 않은 걸까. 아하, '잠봉'은 표준말이 아니기 때문에?

기왕 '짜장면'하고 '자장면'을 모두 표준어로 인정할 바에는 '짬뽕'에 '잠봉'도 표준어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건 어떨까. 아니면 이참에 '자장면'을 표준어에서 완전히 빼버리는 것이다. '짜장면' 하나만 쓰도록 아예 못을 박아버리는 건 어떨까. 그렇게 통일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의외로 많을 것 같아서 하는 이야기다. '짜장면'과 더불어 '남북'도 통일하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짜장면 #자장면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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