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시에 죽는 다는 것'에 대해

[서평] 한병철의 <시간의 향기>

등록 2014.06.25 20:48수정 2014.06.25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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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향기> 책표지. ⓒ 최태양

올해 1월 11일. 대학 후배이자 때로는 친구가 되어 주었던 동생이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뺑소니였다.

다리가 불편했던 동생의 발이 되어준 그 바이크는 부서진 모습으로는 더 이상 제 속도를 낼 수도, 자신을 그토록 아껴주던 주인을 만날 수도 없을 것이다. 동생은 생전에 남들에게 바이크는 위험하다고 타지 않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녀석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전 이거 없으면 불편해요."
 
사실 동생에게 그 바이크는 시간의 방향성을 상실한 사회에서 살아가기에 우리들이 가진 튼튼한 두 다리처럼 대체 불가능한 기계였는지도 모른다. 다리가 불편한 그는 도저히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남들과 그들을 위시한 한국이라는 사회를 따라갈 수 없었을 테니까. 수많은 매체와 타인들이 삶의 미덕으로 찬양하는 '활동적 삶'을 위해서 그는 바이크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말하는 것은 나의 너무나도 지나친 비약일까?
 
저자인 한병철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닥쳐온 시간의 위기는 가속화로 규정할 수 없다. 우리가 현재 가속화라고 느끼는 것은 시간 분산의 징후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삶이 가속화 된다는 느낌은 실제로는 방향 없이 날아가 버리는 시간에서 오는 감정이다."

여기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지속적인 경험이란 존재 하지 않는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회적 환경, 제도에 일관성 있는 고유한 흐름과 적시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 너의 죽음 또한 의미 있는 종결의 형식이 아닌 불시에 끝장난다.
 
과거 한국사회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적시성에 맞춰져 있었다. 혹자는 한국 유교 문화의 제사와 상례를 비꼬아 '산 자가 아닌, 죽음의 문화'라고 말한다. 그러나 제사와 상례란 산 자가 죽은 자를 적시에 사색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하나의 고리였다.
 
그러나 지금 한국사회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책은 이렇게 말한다.

"시간이 예전보다 훨씬 더 빨리 지나간다는 느낌도 시간의 원자화에 기인한 것이다. 시간의 분산은 지속의 경험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 어떤 것도 시간을 늦추지 못한다. 삶은 더 이상 지속을 수립하는 질서의 구조나 좌표 속에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시공간의 원자화는 죽음에 대한 생각도 바꾸어 놓았다. 사회성과의 극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노동에 부적절한 늙은 육체는 측은함과 동시에 사회에서의 도태를 명령받는다. 이런 사회에서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삶의 시간의 양적인 증가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동전의 양면처럼 삶의 생동감 역시 적시 속에서 죽음에 대한 사색이 있어야 그 의미의 중력이 생긴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잊고 있다. 아니 잊도록 '명령'받고 있다. 그래야만 내 앞에 놓인 일에만 열중 할 수 있기에.
 
동생의 장례식장에 가는 아침. 대중교통을 타고 그 녀석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대면한 사람들의 슬픔을 보여주는 듯 슬프고도 느릿하게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는 향은 나와 우리 모두에게 울림으로 다가오는 시간의 향기였다. 잠시 멈춰 서자. 우리 모두는 잃어버린 적시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사색 속에서 자신과 주위를 조용히 그러나 깊게 살펴보는 데서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북대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향기 - 머무름의 기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3


#한병철 #시간의 향기 #피로사회 #투명사회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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