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검열'로 궁지 몰린 검찰, '보복'이 해법?

[取중眞담] "사회 혼란 야기" 카톡 압수수색 폭로자에 괘씸죄 적용 논란

등록 2014.10.20 17:27수정 2014.10.2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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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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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카카오톡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에서 만민공동회 제안자인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사례발표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열심히 해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검찰이 사이버 망명 상황의 심각성과 그 원인은 파악한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작스레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의 폭로를 탓하는 모습에선 현 사태를 부른 데 대한 반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공형사수사부(부장 김동주)는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의 보석취소 결정을 빨리 해달라는 의견서를 냈다. 정 부대표는 지난 6월 27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다음달 17일 보석으로 석방됐다. 당시 검찰은 재판부에 보석을 취소해달라고 신청했는데, 이에 대한 결정을 빨리 해달라는 의견서를 낸 것이다.

의견서에서 검찰은 "적법하고 정당한 경찰의 과학수사에 대한 근거없는 비난으로 현재 얼마나 큰 국가적 혼란이 야기되고, 선량한 기업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반드시 보석을 취소하여 죄에 상응하는 재판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재판부가 보석을 취소하지 않겠다면, 그 결정도 빨리 내려줘야 상급법원에 항고할 수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검찰이 정 부대표가 했다고 주장하는 '경찰의 과학수사에 대한 근거없는 비난'은 지난 1일의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왔다. 그 내용은 경찰이 카카오톡 압수수색으로 자신을 포함, 3000여 명의 대화 내용과 개인정보가 수사기관에 넘겨졌다는 것이다.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집시법 위반 혐의와 상관없는 이유로 보석 취소 결정을 촉구한 것도 이상하지만, 현재 카카오톡이 맞고 있는 어려움을 정 대표의 기자회견 때문이라고 한 건 더 이상하다.

시작은 검찰이 해놓고 이제 와서 남 탓?

애초 '카카오톡 대탈출'의 발단은 지난달 18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사이버상 허위사실유포사범 엄단 범정부 유관기관 대책회의'였다. 이 회의 결과 검찰은 보도자료를 내면서 '인터넷 실시간 모니터링', '악의적인 정보 삭제', '유관기관 협조체계 구축' 등의 용어를 썼고 이 회의에 카카오톡 고위 관계자도 참석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여론의 반발은 시작됐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검찰은 여유만만했다. 유상범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9월 25일 '수사기관이 인터넷을 모니터링하면 시민들이 위축되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자신이 아무 문제없는 글을 쓰는데 위축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가 더 큰 반발을 불렀다.

사이버 망명이 더욱 탄력을 받은 가운데, 지난 13일엔 국정감사 과정에서 유관기관 대책회의 내부 자료가 폭로되기도 했다. '특정 단어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해서 선제적인 대응을 하고, 포털사와 핫라인 구축해 문제의 게시물을 신속하게 삭제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문건이었다.

이 문건에 대해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참석자의 의견이었을 뿐"이라고 했고 김수남 서울중앙지검장은 "실시간 모니터링이란 말을 썼던 건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함에 있어 시기를 놓치지 않고 공개된 사이트에 대해 살펴보겠다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해명했다. 이 문건이 폭로된 뒤 검찰의 해명은 '사이버 검열에 대한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데에 집중됐다.

'대통령 명예' 위해 외국 기자도 처벌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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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장에 불려나온 이석우 다음카카오톡 대표 이석우 다음카카오톡 공동대표가 16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검과 서울중앙지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국감장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그러나 지난 16일 법사위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가 진술한 내용을 곱씹어 보면, 검찰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취지에서 참석을 요청한 건지 모르겠다. (유관기관 대책회의) 당일 아침에 '대검 차장께서 회의를 주재하신다. 가급적 대표이사 나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나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대외부서의 담당자가 나갔고, 도착해보니 회의자료가 배포돼 있었고 그와 관련해 사이버 명예훼손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이 논의됐다. 

그 자리에서 우리 직원이 '카카오톡은 실시간 모니터링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하고 왔을 뿐이다. 저는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을 모르지만 보고받기론, 회의자료가 미리 준비돼 있었다고 들었다. 보도자료 준비가 돼 있었다는 것도 전해들었다."

유관기관 대책회의는 이미 결론이 나와 있는 회의였고, 카카오톡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이 논의됐다는 것이다. 이 대표를 급하게 부르면서 회의 취지도 알리지 않았다는 점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고 한 지 이틀만에 부랴부랴 준비된 회의이기에 기본적인 예의도 지키지 못했다는 점을 방증한다.

시민들의 불신을 조장한 건 정 부대표의 폭로가 아니다. 오히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민간기업 대표를 급하게 호출해 '사이버 명예훼손 엄단' 등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려 한 검찰 때문이다.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라면 외국 언론인도 처벌하는 검찰인데 내 '카톡의 안전'을 믿고 맘대로 떠들 수 있겠는가. 카카오톡의 위기는 다음카카오톡의 탓이 아니다. 검찰 때문이다.
#정진우 #사이버 망명 #다음카카오 #카카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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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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