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보이는' 흡연 폐해 발표... 정부, 솔직해져라

[取중眞담] 비흡연 여성폐암까지 간접흡연 탓?

등록 2014.11.10 10:56수정 2014.11.1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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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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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의 한 편의점 담배 판매대 ⓒ 연합뉴스


지난 3일 국립암센터는 흡연관련 보도자료를 공개했다. '비흡연자 여성의 폐암 발생률 증가해'라는 제목이었다. 요지는 최근 15년간 폐암수술을 받은 여자 환자 가운데 88%가 비흡연자였다는 것이다. 또 남녀 전체 폐암 발생 추이를 보면 남성은 감소 추세를 보이는 반면 여성은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자료보기)

A4 용지 한 장짜리 자료 마지막에 이강현 암센터 원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폐암 예방을 위해 금연과 간접흡연을 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언급이었지만, 그의 설명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졌다. 이번 자료에는 여성 폐암 발생 추이와 흡연 경력 유무만 나왔을 뿐 간접흡연이 주요 원인이라는 어떠한 객관적 근거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3일 오전에 나온 <연합뉴스>기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해당 기사는 아예 제목부터 "비흡연 여성 폐암 증가세... 어릴 적 간접흡연 탓"이라고 적었다. 기사 내용을 보면, 암센터 이진수 박사는 "50-60년대 가난했던 시절 부모나 남편 등과 한방에 함께 살면서 오랜 시간 간접흡연에 노출된 게 노년기 들어 폐암으로 진단받는 주요 이유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릴 적 남성보다 여성이 집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서 간접흡연에 노출되는 시간이 더 길었던 점도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국립암센터의 뜬금없는 보도자료

폐암의 경우 흡연 이외 다양한 요인 탓에 복합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은 이미 의학계에선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사실을 뻔히 알고 있는 국립암센터는 언론에 보도자료를 내놓으면서 흡연 이외 다른 원인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또 이 자료를 맨 처음 보도한 <연합뉴스>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일본 국립암센터의 이노우에 마나미 박사는 지난 2006년 미국 흉부의학학회 학술지 체스트(Chest) 10월호에 낸 연구보고서에서 "폐암은 흡연 여부와 관계없이 가족력이 커다란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13년에 걸쳐 중년 이상 남녀 10만225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분석 결과였다. 그는 특히 "폐암환자의 직계 가족은 남성보다 여성이 폐암 위험이 더 크게 나타났고, 흡연 여부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의 분석도 사뭇 다르다. 지난 2005년 8월호에 미 흉부학회 의사들을 통해 정리한 '흡연과 폐암에 관한 5가지 질문과 답변' 기사를 보면, 미국에서도 비흡연 여성의 폐암 발병률이 크게 늘고 있다는 사실을 적었다.


대신 그 원인으로 여성의 호르몬 변화를 꼽았다. 여성의 경우 호르몬 변화로 암 발병 위험이 남성보다 높다는 점을 들었다. 특히 주택에서 방출되는 '라돈 가스'에 노출되는 시간이 남성보다 여성이 많기 때문에 그만큼 폐암 발병 위험도 크다고 지적했다.

담뱃값 인상 발표 후, 정부기관 편향적이고 성급한 발표 이어져

이밖에도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백효채 교수팀은 10년동안 폐암치료를 받은  환자 500여 명을 분석한 결과 예후가 좋지 않은 선암 발병률은 여성이 남성보다 2배나 많았다고 했다. 선암의 경우 주로 비흡연자에게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팀은 여성들이 요리를 많이 하면서 가스와 불, 음식 연기 등을 지속적으로 흡입해 선암 발병 위험도가 증가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폐암을 둘러싼 의학계의 연구들은 대체로 흡연과의 상관관계를 따지는 것보다 다양한 위험변수를 찾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유는 세계적으로 흡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폐암 환자는 날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 국립암센터의 자료를 보지 않더라도 폐암환자의 상당수가 비흡연자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결국 국립암센터의 이번 연구결과는 그리 새롭지도 않았다. 오히려 뜬금없는 발표였다. 여성 폐암환자의 증가추세나, 비흡연자가 많다는 것도 그렇다. 게다가 50-60년대의 간접흡연을 주요 원인으로 꼽은 것에 대해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차라리 그 당시 대다수 서민들이 겪었던 아궁이 불때기와 연탄 사용에 따른 가스 노출 등 다른 원인을 함께 설명했더라면 이해가 될 수도 있었다.

정부는 담뱃값 인상을 발표한 이후 여론의 후폭풍을 절감하고 있다. 많은 국민은 뻔히 보이는 증세를 국민건강으로 포장하는 모습에 실망하고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를 비롯해 정부 산하기관 등은 여전히 왜곡되거나 편향된 자료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관련기사: 경제학자인 청와대 수석의 무지인가, 왜곡인가).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솔직해지면 된다. 국민건강 때문에 담뱃값을 올리는 것보다는 당장 나라 곳간 사정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또 과거 부유층이나 일부 대기업에만 돌아갔던 세금감면 특혜부터 거둬들이겠다고 하면 된다. 국민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담뱃값 인상 #폐암 #흡연 #국민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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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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