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가 사상가들, 법 때문에 비참한 최후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97] 법(法)

등록 2014.12.11 15:48수정 2014.12.1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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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법(法)은 시비선악을 가리는 해태(?)가 옳지 않은 사람을 제거(去)함으로써 물(水)처럼 공평함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 漢典


중국 초등학생들은 학교에 등교하면,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당시(唐詩) 300수를 낭송하며 외운다. 그런데 지난 12월 4일, 중국 헌법의 날을 맞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전국 40만 개 초·중등생에게 아침 자습시간 등을 이용해 헌법을 읽도록 지시했다.

의법치국(依法治國), 심각한 빈부격차, 부정부패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빈틈없는 권력체제를 정비하는 수단으로 강력한 법치를 들고 나선 것이다. 모든 권력은 이전 정권과의 차별성을 위해 기강 확립을 강조하기 마련이지만, 강력한 카리스마로 부패 추방과 법치를 외치는 시주석의 행보에 사뭇 기개가 느껴진다.

법 법(法, fǎ)은 갑골문에서 원래 물 수(氵), 해태 채(廌), 갈 거(去)가 결합된 형태로, 시비선악(是非善惡)을 가릴 줄 아는 해태(廌)가 옳지 않은 사람을 뿔로 들이받거나 입으로 물어서 제거(去)함으로써 평평한 물(氵)처럼 공평함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외뿔 사슴처럼 생긴 전설의 동물 해태 채(廌)는 해치(獬豸), 독각수(獨角獸), 신양(神羊)으로도 불렸는데,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달려가 선악, 곡직을 가려 악인을 쫓아냈다고 한다. 전설의 제왕 황제(黃帝)가 채(廌)를 이용해서 판단하기 힘든 일을 공평하게 처리했고, 이후 채(廌)는 사법의 상징이 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사헌부 관원들이 해치관을 썼고, 지금도 법을 만드는 국회의사당 앞에 해태상이 놓여 있다.

전국시대 진(秦)나라는 상앙(商鞅)의 법가 사상을 받아들여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다. 통일 후 진시황이 중용한 이사(李斯) 또한 대표적인 법가 사상가였다. 순자(荀子) 밑에서 이사와 함께 동문수학한 한비자(韓非子)는 법을 '거울과 저울'에 빗대어, 거울은 맑고 아무 제약을 받지 않아야(鏡執清而無事) 아름다움과 추함을 바르게 비출 수 있고, 저울은 바르고 제약이 없어야 무겁고 가벼움을 제대로 달 수 있다(衡執正而無事)고 했다. 진시황은 <한비자(韓非子)>를 읽고 이 글의 저자를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할 정도로 법가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법가 사상가들이 한결같이 자신들이 만든 법의 수렁에 빠져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사실이다. 상앙은 효공이 죽자 역모의 모함에 도망가던 중 어느 숙소에 하룻밤을 청하지만, 증명이 없는 자는 재워줄 수 없다는 자신이 만든 법에 따라 신고를 당해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졌다. 이사 또한 조고(趙高)의 모함으로 허리가 잘리는 요참형(腰斬刑)으로 죽고, 한비자는 이사의 농간에 독약을 먹고 생을 마감한다. 주룽지(朱镕基)가 자신의 것을 포함하여 백 개의 관(棺)을 준비하라고 한 것은 이런 역사적인 경험 때문일 것이다.

법을 상징하는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어(Astraea)가 수건으로 눈을 가린 것처럼 법은 사람도, 권력도 가리지 않고 공정하게 흘러야 한다. 중국의 사회시스템을 정비하는 데에 매정하지만 모두에게 공정한 법의 힘이 무엇보다 필요해 보인다.
#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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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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