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정벌레의 습격, 어떻게 해야할까

[재미있는 과학이야기 64] 서구에서는 자연의 순리 중시하는 쪽으로

등록 2015.05.18 10:20수정 2015.05.1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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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정벌레들이 인류에 재앙을 안길 것인가? 지구상의 딱정벌레(beetle)는 대략 35만 종, 이들 대부분은 인간에게 직·간접 도움을 주거나 공존의 이득을 안기고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소나무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재선충 확산의 사례에서 보듯, 치명타를 가하는 딱정벌레도 있다. 소나무를 말려 죽이는 재선충은 '솔수염 하늘소'라는 딱정벌레에 의해 옮겨진다. 최근 1~2년 사이 제주에서만 최소 100만 그루의 소나무가 재선충 병에 희생됐다.

재선충의 발상지로 짐작되는 북미 지역도 지난 10년 동안 딱정벌레의 습격으로 극심한 손실을 입었다. 북미의 소나무, 잣나무 등을 공격하는 딱정벌레는 '소나무 좀'으로 불리는 쌀알 크기의 벌레이다. 이 딱정벌레가 한 번 나무 속으로 파고 들어가면, 나무는 시름시름 앓다가 고사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딱정벌레는 사람들에게 징그럽다는 이미지보다는 친근한 느낌으로 어필해 왔다. 유명한 독일산 자동차나, 영국의 밴드그룹 등이 딱정벌레라는 이름을 차용한 데는 이런 좋은 이미지가 한 몫을 했다.

실제로 절대 다수의 딱정벌레 종들은 '좋은 일'들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죽은 나무나 떨어진 낙엽 등의 부패를 촉진하는 데 딱정벌레는 없어서는 안 될 곤충이다. 나무 줄기나 잎사귀가 썩어서 땅의 거름이 되면 식물의 씨앗이 움트기 좋은 여건이 조성된다. 딱정벌레가 건강한 생태계 유지에 큰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솔수염 하늘소나 소나무 좀에 이르면 딱정벌레 얘기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이들 딱정벌레의 습격을 받은 소나무나 잣나무 등은 다시는 살아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딱정벌레들의 공격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길은 "재앙이 재앙을 물리치도록 하는" 것이다.

딱정벌레의 습격은 가뭄이 지속되는 시기와 맞물리는 경향이 있다. 말라 죽은 소나무나 잣나무가 흔히 산불을 확산시키는 연료 역할을 하는 건 이 때문이다. 헌데 바로 이 산불이 딱정벌레와 재선충 등을 일거에 싹쓸이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곤 한다.

그러나 빈대 잡는다고 초가 전체를 태우듯, 딱정벌레나 재선충을 죽이겠다고 산불을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숲 전체에 당장 엄청난 피해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곤혹스럽더라도 자연은 때때로 냉혹한 원리로 작동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딱정벌레의 기승과 말라 죽어가는 소나무, 자연발화에 의한 산불의 확산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 커다란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논쟁의 경계는 뚜렷하다. 한편에서는 산불 등이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 일부러 진화하지 말고 확산을 막는 정도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쪽에서는 산불은 최대한 조기에 진압하고, 차후 딱정벌레 방지 농약 등을 살포해 확산을 저지해야 한다고 맞선다.

북미 지역에서는 전자의 주장이 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다. 헌데 국토가 좁은 한국에서도 이런 방식이 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북미가 원산지인 소나무들은 소나무 좀에는 취약하지만, 재선충 병에는 잘 걸리지 않는다. 1980년대 후반 북미의 재선충이 한국 중국 등에 상륙,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데는 동북아 지역 고유의 소나무들이 저항력을 갖지 못한 탓도 있다.  

딱정벌레 확산으로 인한 소나무 피해 문제는 길게 보면 자연이 해결토록 하는 게 순리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긴 시간을 기다려줄 수 없다는 점이 소나무 고사 대응을 풀기 어려운 숙제로 만들고 있다.
덧붙이는 글 위클리 공감(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 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주간지 입니다.
#딱정벌레 #소나무 #재선충 #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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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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