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종북몰이', 정권 못 내놓겠다는 거지?

[게릴라칼럼]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과거 지우기가 아닌 미래 권력 만들기

등록 2015.10.16 11:07수정 2015.10.1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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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된 과거는 반복의 동력이 없다. 반복은 좌절을 맛보지 않은 세력의 야심과 그 야심을 권력으로 되돌려주는 에너지가 맞물린 결과다. 광복이 70년이나 지났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종북 프레임의 반복이다.

친일 부역자들이 반공의 수호신으로 자처하고 나선 해방 직후부터 지금까지. 불령선인. 용공. 좌경. 종북. 공산주의자 처단이라는 대명제는 항상 이름만 바뀌며 존재해 왔다. 프레임을 꺼내든 측은 매번 이겼다.

멀리 볼 것도 없다. 국정원과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종북 대응 활동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처벌을 면했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도 전직 대통령의 종북 낙인찍기로 끝났다.

심지어 규명되지 않는 은행의 해킹 사건조차도 북이나 종북주의자 소행으로 지목되었다. 박근혜 정부를 숱한 위기에서 건져준 종북 프레임.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에 좌편향을 바로 잡는다는 이유를 내세운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놀랄 일도 아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과거 지우기가 아니라 미래 다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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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포럼이 만든 교과서에 "5.16쿠데타는 근대화혁명의 출발점" 14일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정청래 최고위원이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이 만든 한국 현대사 교과서 내용을 예로 들며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정교과서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정 위원이 제시한 이 교과서에는 "(박정희 주도의) 5.16쿠데타는 근대화혁명의 출발점이기도 하였다"라는 표현이 있어, 친일독재 미화 역사왜곡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 남소연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단지, 대통령이 아버지의 치부를 감추기 위함이 아니다. 친일 행위를 했던 선친을 독립투사로 만들기 위해 과거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다. 틀린 지적은 아니지만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오히려 박근혜 정권과 보수 세력의 의도는 과거를 바꾸려는 게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지배하자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흔들리지 않는 종북 프레임을 만들어 보수정권의 영원한 집권 디딤돌을 놓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친일 행위는 역사적 사실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선친의 친일 행위도 최근에 밝혀진 일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나 보수 세력이 이런 사실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 역사교과서를 국정화 하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청산되지 않고 잊혀진 과거가 불씨로 되살아나 종북 프레임을 흔들고 그 프레임 위에서 굳어진 권력이 의심받는 것이 더 두려운 것이다. 대립각을 세웠던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모든 보수 세력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 한목소리를 내는 이유. 과거 지우기가 아니라 현재 권력 지키기. 미래 권력 만들기의 의미가 강하다.

기존 검정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 되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볼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박정희, 김대중 전직 대통령 사진 숫자가 차이 난다는 지적은 우스개 같은 소리다. 또 현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 되었다면 검정을 맡은 교육부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박근혜 정부 또한 종북이라는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어떤 근거 제시나 설명도 없는 역사 교과서의 좌편향 주장. 종북의 굴레는 정당과 정치인을 넘어 이제는 교과서까지 덧씌워지는 모양새다. 그래야 지지율이 올라가고 선거에 이길 수 있다는 건 오랜 경험이 축적된 보수 세력의 생존 방식이다.

이번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정부와 여당이 팔을 걷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고 았다. 이에 반대하는 야당과 시민단체 역사학계를 보수 단체가 나서서 종북이라며 저주에 가까운 막말을 퍼붓는다. 너무나 오래된 그리고 익숙한 프레임이다.

나는 국정 교과서로 공부한 세대다. 기억하건대 5.16 쿠데타는 구국의 혁명이고 5.18 광주 학살은 간첩들의 소행으로 배웠다. 어떤 교과서도, 어떤 선생님도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5.16 쿠데타가 군인들의 정권 찬탈이었음을, 5.18 광주 학살 또한 권력에 눈이 먼 자들의 살육이었음을 안 것은 금서로 규정된 책들을 통해서였다.

아이들이 또다시 교과서에 나와 있지 않는 진실을 금서로 통해 알아야 한다면 이건 누가 뭐래도 역사의 퇴보이다. 기성세대로서, 부모로서 은폐된 진실을 배우게 하고 싶지 않다.

아베 총리가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역사 교과서를 채택하는 것이나, 박근혜 정부가 일본 장교 박정희 얼굴과 굴욕적인 한일 수교 과정을 은패한 채 긍정적인 역사관만 강요하는 국정교과서 체제로 가려는 것이나 목적은 같다.

과거의 잘못한 내용을 고치거나 치부를 감추는 정도가 아니라 보수 집권에 맞게끔 역사를 뜯어 고치겠다는 의도다. 아베의 독도 영유권 주장 교과서가 잘못되었다면, 박근혜 정권의 국정교과서 채택도 잘못되었다. 아베를 비난하면서 박근혜 정권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나하나 고치는 방법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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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1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실에서 '올바른 교과서'라고 명칭을 한 한국사 국정교과서 행정예고 발표를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이희훈


박근혜 정권의 종북몰이는 끝이 없다. 국정원 대선 개입.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세월호 대참사 등 정권의 위기에는 어김없는 종북의 프레임이 가동되었다. 따지고 보면 박근혜 정권 때만도 아니다. 제주 4.3 사건, 유신정권의 인혁당 사건은 종북몰이의 원조격이다.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 이명박 정권조차도 종북몰이로 위기를 탈출했고 종북 프레임으로 지지자를 모았다.

나아지려 하지 않으면 나빠진다. 종북의 프레임 제대로 한번 걷어 차보지 못한 후과가 박근혜 정권이 역사마저 뜯어 고치겠다는 오만을 키웠다. 지키려고 애쓰지 않으면 빼앗긴다. 그나마 밝혀지고 기록된 진실마저도 보수정권의 권력 연장의 야욕에 의해 지워지고 왜곡될 수 있는 현실에 처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과 미래의 문제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아버지의 과거를 세탁하기 위한 빗나간 효심 때문에 빚어진 일이 아니다. 절망적인 바닥 경제의 민심을 희석시키고 종북몰이로 위기를 넘어 보자는 속셈과 다가올 총선, 더나아가 다음 대선까지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이 기회에 종북몰이를 끝장내 보겠다는 여론이 필요하다.

'출판사와 집필진들이 만든 교과서의 잘못된 내용을 부분적으로 하나하나 고치는 방법으로는 도저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밝힌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유다. 일면 타당한 말이다. 경제 문제가 불거지면 경제수장에게 책임을 묻고,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교육부장관 해임을 건의하는 것. 그러나 부분적인 투쟁과 요구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사건건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는 박근혜 정부.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무엇인지 국민의 지혜와 각오를 모아야 할 때이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국정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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