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는 참 쉬운데, 아쉬운 네루의 <세계사편력>

[김성호의 독서만세 76] <네루의 세계사 편력 다시 읽기>

등록 2015.11.03 16:23수정 2020.12.2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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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이후 인도의 독립운동을 이끈 지도자이자 인디아 공화국의 초대 수상으로 활약한 자와할랄 네루. 그의 사후 반 세기가 흐른 지금 그가 남긴 정치외교적 유산보다 후세에 더욱 큰 영향을 끼친 게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일부 이견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옥중에서 딸 인디라 간디에게 남긴 편지를 엮은 <세계사편력>이라면 합당한 답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인도를 넘어 전 세계의 고전이 된 지 오래인 이 책 안에 네루의 사상이 깊이 녹아들어 있으므로.


3년 가까운 투옥생활 가운데 딸을 가까이서 돌보지 못하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을 모두 196편의 편지에 담아낸 애틋한 저술이 바로 <세계사편력>이다. 책은 자신이 가까이에 없는 동안에도 딸이 올곧게 성장하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뿍 담긴 세심한 역사서이다. 동시에 제국주의 열강의 패권 다툼 속에서 인도 독립운동의 지도자로서 가진 세계사적 인식이 오롯이 담긴 의미 깊은 저작이기도 하다.

네루는 어째서 하고 많은 분야 가운데 13살의 딸에게 세계사를 이야기한 것일까. 어림잡아도 일주일에 한 통 이상의 편지를 쓸 만큼 딸에게 간절히 전하고자 했던 가르침이 대체 무엇이었을까.

네루의 뒤를 이어 인도의 수상이 된 인디라 간디는 이 책으로부터 어떤 가르침을 얻은 것일까.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투옥돼 이렇다 할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라던 어린 딸에게 네루가 들려준 이야기란 점에서 이보다 진솔하고 세삼하며 애정이 깃든 역사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책은 투옥 중인 아버지가 딸에게 보낸 편지라는 점 외에도 정치가가 저술한 역사서란 점에서 특색이 있다. 역사적인 사실의 전달보다 읽는 이로 하여금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키울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 무엇보다 당대의 일반적인 역사서술방식인 서양 중심, 권력 중심의 사관에서 벗어나 제3세계의 역사를 두루 다루고자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집권 이후 내정에선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비동맹주의를 천명하고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이집트의 나세르 등과 함께 제3세계의 위상을 드높인 정치가로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네루의 저작답다 하겠다.


네루의 <세계사편력>을 요약하고 풀어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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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의 세계사편력 다시 읽기 ⓒ 나름북스

<네루의 세계사편력 다시 읽기>는 인도사를 전공한 부산외국어대학교 이광수 교수의 저작이다. 내용이 방대해 읽기가 쉽지 않은 <세계사편력>을 바탕으로 그 위에 저자 자신의 사관을 다시금 투영한 해설서라 할 수 있다.

과거 의식있는 대학생들의 필독서로까지 여겨지며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 여러 권으로 이뤄진 시리즈를 찾아 읽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에 핵심을 요약하고 풀어쓰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저자의 말대로 고대로부터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인류의 역사를 서유럽부터 서아시아,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남아메리카까지 전세계를 아우르며 풀어가기에 한 권에 담아내기 벅찬 듯한 인상도 여러 군데서 눈에 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300페이지 안에 우겨넣는 집념도 돋보인다 하겠다. 이러한 선택이 바쁜 현대인에겐 장점이 될 수도 있겠으나 네루의 원저가 지닌 맛과 멋을 온전히 느끼고 싶은 독자에겐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라 판단한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제목처럼 네루의 <세계사편력>을 다시 읽는 듯한 인상을 준다기보단 맛보기 형식으로 책을 간략히 소개하고 그 위에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을 조금씩 덧입힌 저작에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네루의 저술이 이미 13살의 딸을 독자로 상정하고 쓰였기에 쉽게 풀어쓸 이유가 없고 단지 분량을 줄이기 위해 요약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저자는 세부적인 내용을 덜어내고 개략적인 내용만 담음으로써 일반 독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이 <세계사편력>이 지닌 본래의 풍미를 제대로 살렸는지 의문이 든다. 원저의 방대함은 기존 역사관에 따라 세계사를 서술할 때 소외된 부분을 조명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는데 이를 요약하기 위해 고대부터 현대까지 세계 모든 지역의 역사를 요약한 것이 과연 적절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 때문에 책은 각각의 사건을 개략적으로 훑는 이상의 서술을 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독자가 각각의 역사를 충실히 이해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전 지구의 역사를 한 권 안에

더불어 책은 기존 세계사 교과서에 등장할 만한 주요 사건들을 이어 붙이고 그 위에 네루와 저자 본인의 생각을 간단히 더하는 정도로 쓰였는데 이러한 구성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두세 페이지에 중국, 다음 두세 페이지에서 일본의 이야기를 하고 곧바로 같은 시기 서아시아로 넘어가 역시 두세 페이지에 걸쳐 그 변화를 서술하는 식인데 이 과정에서 네루와 저자 본인의 생각이 그리 새롭거나 깊이 있게 다가오지 않는 것.

또 원저를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니라 저자가 <세계사편력>을 읽고 그 내용을 새롭게 씀으로써 네루의 글을 읽는다기보다는 저자의 강의를 듣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책의 제목이 <네루의 세계사편력 다시 읽기>인 만큼 딸에게 쓴 편지라는 원저의 색채가 줄어든 부분이 못내 아쉬웠다. 저자가 네루의 저술을 현대 독자들의 요구에 맞게 재해석하거나 개인적인 통찰을 보이고 있지 않은 만큼 오히려 네루의 원저가 훼손된 듯한 인상만 남았던 것이다.

이 한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네루의 <세계사편력>을 일부나마 제대로 읽어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네루의 <세계사편력>과는 완전히 독립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곳곳에서 저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어 독자가 혼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네루의 원저가 갖춘 장점은 사라지고 책 스스로도 네루의 저작에 갇혀 제 나름의 색깔을 내지 못하고 있어 이도저도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어 보인다.

차라리 한 부분을 떼어 집중적으로 다루었거나 <세계사편력>과는 상관 없는 저자의 독자적인 저술을 써봤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컸다는 표현밖엔 덧붙일 말이 없다.
덧붙이는 글 <네루의 세계사편력 다시 읽기>(이광수 지음 / 나름북스 / 2015.05. / 1만 7000원)

네루의 세계사편력 다시 읽기

이광수 지음,
나름북스, 2015


#네루의 세계사편력 다시 읽기 #나름북스 #네루 #이광수 #김성호의 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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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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