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될 거야"... 아이 꿈 선언에 아빠는 '아찔'

[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57] 아이들의 꿈

등록 2016.03.13 16:35수정 2016.03.1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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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보고서


며칠 전 JTBC 뉴스는 새 학기를 맞아 '탐사플러스'라는 코너를 통해 어느새 우리에게 익숙해져버린, 그러나 결코 적응되지 않는, '뜨악한' 소식을 하나 보도했다. 으레 이때쯤이면 등장하는 아이들의 장래희망에 관한 통계가 바로 그것이다.

뉴스의 내용은 역시나 예상한 대로였다. 설문조사는 서울 시내 초·중·고등학생 83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는데, 아이들은 자신의 장래희망으로 아이돌이나 운동선수 등 '문화체육인'을 1위로 꼽았으며 '교사와 대학 교수'를 그다음으로 지목했다. 각각 경제적으로 풍족하기 때문에, 그리고 오래 일할 수 있고 연금이 나오는 등 안정적이기 때문에 그 직업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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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작업 중 새로 이사를 와서 가장 좋은 점은 자신의 방이 생겼다는 점이다 ⓒ 정가람


더욱 주목되는 것은 고등학생들의 조사결과였다. 고등학생들은 가장 선망하는 직업으로 1위 '공무원'(22.6%), 2위 '건물주와 임대업자'(28.5%)를 꼽았는데, 그 이유 역시 '안정적이서(37.5%)', '높은 소득이 보장되기 때문에'(28.5%)가 절반을 넘고 있었다. 중·고등생의 약 30%가 아예 꿈이 없다고 답한 것을 감안한다면, 현재 청소년들이 현 세태를 얼마나 절망적이고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지표였다. 이 척박한 현실에서 오로지 살아남는 것만이 아이들의 꿈이 된 것이다.

사실 요즘 청소년들에게 꿈이 없다는 사실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IMF 이후 양극화된 사회는 사람들을 극단적인 경쟁으로 몰아붙였고, 그 결과 '안정적인 직장'은 삶의 도구가 아닌 목적이 돼버렸다. 한창 꿈을 꿔야 하는 청소년들조차 도전보다는 안정을 희구하며 좀 더 돈 잘 벌고, 오래 버틸 수 있는 직업을 찾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과학자'나 '대통령'이 대신 '삼성 입사'와 '공무원 채용'을 꿈꾸는 아이들. IMF 이전에는 이과 수능 1등이 서울대 물리학과를 지원했지만, IMF 이후에는 전국의 모든 의대 정원이 찬 다음에야 서울대 지원이 다시 시작된다지 않았는가. 그만큼 이제 우리 사회에서 꿈은 사치가 됐는지도 모른다.


뉴스는 다음과 같은 전문가의 말로 마무리되었다.

"(계층 이동) 사다리가 끊어진 상태에서, 사실 꿈은 청소년들에게 사치일 수 있습니다. 꿈을 꾸기 위해서는 이제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예요."

까꿍이, 너의 꿈은 뭐야?

새삼 우리 아이들의 꿈이 궁금해졌다. 매번 묻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다시 한 번 까꿍이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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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꿍이가 그린 우리 가족 자신이 첫번째다. 자존감이 세다는 좋은 증거다 ⓒ 이희동


"까꿍아,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어?"
"화가."
"화가? 왜? 전에는 요리사 될 거라고 했잖아."
"아냐. 이젠 그림 그리는 게 더 좋아. 그림을 그리면 상상도 할 수 있잖아."

앞선 통계를 보면 그래도 아이에게 꿈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막상 아이에게서 또 '화가'라는 소리를 듣고 나니 아찔해졌다. 그 많은 직업들 중 하필 화가라니. 정녕 핏줄 탓일까? 나의 작은 고모도 화가요, 여동생도 화가인데 이제는 딸자식마저 화가가 꿈이라고 하다니.

그것은 하나의 데자뷔였다. 내가 어렸을 적 아버지는 나와 여동생을 붙들고 똑같은 질문을 하셨는데 축구선수부터 시작해서 파일럿, 대통령 등 꿈이 다양하게 바뀌었던 나와 달리 여동생은 줄곧 하나의 장래희망만을 고집했다. 바로 화가. 그리고 현재 나의 여동생은 화가로서 대학 강의도 나가고 있다.

나는 자신의 꿈을 기어코 이룬 여동생이 자랑스럽다. 녀석은 또래 중에서 그래도 꽤 알아주는 화가로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옆에서 지켜본 바, 그림을 그리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전인데, 동생은 자기 돈을 들여 개인전을 여는 이들과 달리 지금까지 항상 갤러리에서 모든 비용을 책임져주며 먼저 그림을 걸고 싶다고 했었다. 그만큼 녀석의 그림이 경쟁력 있다는 뜻이겠지.

다만 문제는 화가가 되는 과정이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어느 직업인들 쉽겠냐만은, 특히 화가는 자신이 투자하는 많은 시간과 비용에 비해, 그 성공 가능성이 다른 직업보다 현격히 낮은 편이다.

게다가 화가가 된다 한들 우리 사회에서는 밥벌이가 어렵다. 다행히 동생은 곧잘 그림도 팔고 강의도 나가는 등 수입을 올리고 있지만, 대부분의 화가들은 결국 그 꿈을 포기하거나 특정 수입이 없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게 현실이다. 사회가 성숙돼 순수미술의 가치를 알아주면야 다행이겠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먹고사는 것만 해도 빠듯하기에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 먹고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아버지도 당신의 딸자식을 말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30년 전 멀쩡히 다니시던 은행을 그만두고 붓을 잡겠다던 당신의 여동생은 자신이 아무런 경제적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이상 아무 말할 수가 없었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그림을 그린다고 했을 때 완강히 반대하셨다. 딸자식이 여동생처럼 고생하는 걸 보기 싫다는 이유였다. 물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동생이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평생 아버지를 원망할 것 같다며 설득하자, 두 손 들고 마셨지만 어쨌든 아버지는 나의 여동생이 화가 되기를 꽤 오랫동안 반대하셨다.

그런데 지금 또 나의 딸, 아버지의 손녀가 화가 되기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까꿍이의 꿈은 바뀔 가능성이 크지만, 여동생을 보며 한 번 놀란 입장으로서, 녀석의 일갈은 충분히 고민 대상이었다. 녀석이 진짜 계속해서 화가를 고집하면 어쩌지? 나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반대해야 할까? 아니면 지금 아버지가 딸자식 보듯 묵묵히 지켜봐야 하나?

그래도 네 꿈을 펼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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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꿍이의 그림 주제는 엄마에 대한 사랑 ⓒ 이희동


이런 나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까꿍이는 오늘도 나름 그림을 그린 뒤 내게 보여주느라 바쁘다.

"아빠, 어때? 잘 그렸지? 예쁘지?"
"어? 으응. 잘 그렸네."
"그치? 난 역시 그림 소질이 있다니까. 고모도 그랬어. 나 그림 잘 그린다고."
"그래? 화가인 고모가 말했으니 진짜겠지. 좋겠다. 까꿍이는. 아빠는 그림 잘 못 그리는데."
"그래. 내가 나중에 화가가 돼서 아빠한테 그림 가르쳐줄게."

이렇게 계속해서 아이들을 마냥 북돋아주는 것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직 초등학교 1학년밖에 되지 않는 아이에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 이러 이러하니 꿈을 포기하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미술은 돈이 많이 드니까 다른 꿈을 가지라고 할 수도 없었다. 모든 아이의 꿈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 꿈을 포기하든 아니면 다른 꿈으로 바꾸든 그것은 오롯이 개인의 몫일 터. 단지 난 옆에서 거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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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탐험 중인 산들이 얼음을 헤치고 앞으로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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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모든 길은 앞서 나가야 한다 산들이가 생각하는 탐험의 조건 ⓒ 이희동


누나가 아빠와 이야기를 하고 있자 산들이가 끼어들었다.

"아빠, 나는 나중에 커서 탐험가가 될 거야. 그래서 공룡도 찾고, 탐험도 갈 거야. 아빠도 같이 갈래?"
"그래. 아빠 꿈도 탐험가였어. 산들이 크면 아빠와 같이 세계일주 가자."
"야호! 좋아 아빠. 우리 같이 탐험 가자."

역시나 옆에서 누나와 형한테 질세라 띄엄띄엄 이야기를 건네는 막둥이. 나의 고개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돌리며 시선을 맞춘다.

"아빠, 난 공룡박사."
"그래, 우리 복댕이는 공룡박사 할거지? 형하고 다니면서 공룡뼈 발견하면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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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공룡박사 공룡은 이맘때쯤 아이들의 킬링아이템이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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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댕이의 공룡사랑 해부까지 한다 ⓒ 이희동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아이의 꿈과 관련해 내가 바라는 점은 하나다. 녀석들이 부디 현실에 매몰되지 않기를. 어려서부터 건물주를 꿈꾼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는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이렇게도 많은데. 물론 아이가 계속 자신의 꿈을 유지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부모와 주위의 영향이 매우 크겠지만, 그럼에도 녀석들이 좀 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꿈을 야무지게 꾸길 바란다. 아빠는 너희들이 무엇을 하던 응원하도록 하마. 결국 네 삶의 주인공은 바로 너인걸.

까꿍아, 산들아, 복댕아. 네 꿈을 펼쳐라!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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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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