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단둘이 30분, 이제야 밝히는 '영업비밀'

[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56] 까꿍이의 초등학교 입학 그리고 이별

등록 2016.03.06 19:16수정 2016.03.0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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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꿍이와의 출근길


"아빠, 나 학교 간다."

오늘도 까꿍이는 일어나자마자 학교 타령이다. 초등학교 입학통지서를 받은 이후 계속해서 날짜를 세더니, 입학 이후 학교가 너무 재미있다는 녀석. 처음 학교를 가면 조금이나마 두려움이 있을 만도 한데, 녀석은 마냥 좋은 듯 보였다. 그리도 좋을까. 부디 저 감정이 오래 지속돼야 할 텐데.

부모로서 그런 녀석을 보고 있자니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역시 뿌듯함이었다. 어느새 우리 딸이 초등학교 갈 나이가 됐구나. 막 태어나서 엄마 품에 안겨 입을 오물거리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학교에 간다며 연필과 공책을 챙기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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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꿍이와 출근하는 길 가끔은 자전거로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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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지간 유대감 쌓고 있는 중 ⓒ 이희동


그러나 그 뿌듯함 뒤켠으로 드는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비록 초등학교 입학이지만 까꿍이를 품에서부터 떠나보내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지난 2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녀석을 내 손으로 등원시킨 탓일 게다. 이젠 초등학교가 걸어서 10분 거리이니 굳이 데려다줄 필요가 없는 만큼, 까꿍이와 단 둘이 이야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 없어졌으니 그럴 수밖에.

근 2년 동안 자전거 혹은 버스로 까꿍이를 등원시키던 출근길 30분. 사실 내게 그 시간은 사회적 경제 분야로 직장을 옮긴 이후 나의 결정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시금석이었다.


비록 연봉의 50%를 포기했지만, 이 기간만큼은 돈보다 시간이 소중하다고 생각했었던 바, 까꿍이와 함께 출근을 하면서 다지게 된 딸과의 유대감은 이후에도 결코 얻을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었다. 내가 새벽에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던 물류업에 계속 있었다면 지금처럼 까꿍이와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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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꿍이 눈에 비친 출근길 아빠와 까꿍이 ⓒ 이희동


그 시간이 아이와의 관계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는 아이의 그림 등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까꿍이가 가끔 그려주는 아빠는 아침에 자신과 함께 길을 나서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는데, 그만큼 까꿍이에게도 아침 시간은 특별하다.

두 동생들을 떼어내고 아빠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는 두 동생들 눈에도 역시 남다른 것 같은데 산들이가 묘사하는 가족의 모습에도 아빠는 누나와 단 둘이 집을 나서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나와 까꿍이는 그 오랜 시간 동안 무슨 말을 주고받았을까? 이는 아내가 궁금해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도대체 그 시간 동안 당신은 까꿍이랑 무슨 말을 해? 그리 할 말이 많아?" 

아빠와 딸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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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시작 끝말잇기 중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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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에서 유치원 가는 길 ⓒ 이희동


사실 6~7살 된 딸아이와 대화를 이어나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폭발하고, 유치원에서 배운 어쭙잖은 지식으로 모든 걸 이해하려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기는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 '왜'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자신이 이해할 때까지 좀 더 쉬운 설명을 요구하는 아이.

그러나 어찌 포기할 수 있겠는가. 부모의 입장에서 뭔가를 끊임없이 이야기할 수밖에. 하지만 아빠의 알 수 없는 설명이 길어질 때쯤이면 까꿍이가 이야기한다.

"아빠, 우리 끝말잇기 하자!"

그렇다. 내가 등원길에 까꿍이와 가장 많이 한 것은 바로 끝말잇기였다. 까꿍이는 아빠와 단절되는 대화를 끝말잇기로 잇고자 했고, 나 역시 끝말잇기를 통해 아이의 어휘력을 더욱 높여주고 싶었다. 나는 아이가 아는 단어와 모르는 단어 중간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아이에게 새로운 단어를 가르쳐줬다.

비록 맞춤법이 맞지 않는 끝말잇기였지만 부녀는 이를 통해 대화를 이어나갔고, 둘의 유대감을 강화시켰다. 어렸을 때 내가 아버지와 장기를 두면서 그랬듯이 까꿍이는 끝말잇기를 통해 나를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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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보는 법 열심히 적어가며 가르치는 아빠 ⓒ 이희동


어디 그뿐인가. 유치원 가는 길은 내가 까꿍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시간이기도 했고, 반대로 까꿍이가 내게 문제를 내는 시간이기도 했다. 일례로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까꿍이에게 시계보는 법을 가르쳤고, 까꿍이는 전날 배운 세계지리 상식들을 내게 문제로 내곤 했었다.

"지금 몇 시게? 큰 바늘이 숫자 5에 가 있네."
"흠. 어려운데. 20분? 25분? 그럼 아빠도 맞춰봐. 인도 사람은 어떤 음식을 먹게?"
"카레."
"어? 어떻게 알았어? 인도 가봤어?"
"아니, 아빠도 세계지리 좋아했었어. 우리 나중에 여유가 되면 같이 인도 가서 사람들이 진짜 카레 먹는지 구경해보자."
"그래, 좋아."

결국 이와 같은 대화는 까꿍이와 내가 신뢰를 형성하는 과정이었다. 물론 아이에게 시계의 숫자 5가 25분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아이의 빤한 문제에 매번 답하는 것 역시 힘든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 과정을 통해 까꿍이는 아빠에게 서슴지 않고 뭐든지 말을 하게 됐고, 아빠라는 존재를 깊숙히 받아들이게 됐다. 내가 까꿍이를 등원시켜주지 못했다면 얻기 힘든 과정임에 분명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그렇다면 내가 까꿍이랑 유치원을 가면서 녀석에게 제일 강조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평등하고 따뜻한 시선이었다. 유치원에 가던 어느 날 까꿍이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아빠, 우리 반에 이상한 아이가 있어."
"응? 왜? 어떤 아이인데?"
"같은 아람반인데, 자꾸 우리더러 자기를 언니라고 부르래. 자기가 한 살 많대."
"그래? 작년에는 푸른반이었던가?"
"아니 똑같이 아람반이었대. 그런데 좀 이상해. 우리랑 같이 놀지 않고 맨날 혼자서 블록 쌓기만 해."

이야기만 들어도 충분히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됐다. 까꿍이 반에 학습이 더딘 아이가 있어서 초등학교를 올라가지 않고 1년 더 유치원 생활을 하게 된 듯했다. 그러니 아이는 계속 언니라 부르라고 하지만, 정작 행동은 다른 아이들과 달리 어눌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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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꿍이는 등원 중 눈이 와도 비가 와도 ⓒ 이희동


그러나 부모로서 난 까꿍이에게 분명히 말했다.

"그래도 까꿍아, 그런 사람일수록 네가 옆에 가서 먼저 놀아주고 그래."
"왜? 이상해. 같이 놀지도 않아. 맨날 소리 지르고 뭐든지 자기 혼자만 하려 해."
"그래도 같이 해야 해. 혼자 얼마나 외롭겠어. 모든 사람은 평등해. 모두 사랑받을 자격을 가지고 있지. 세상에는 그 아이와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아. 우리 주위에도 꽤 있는 걸.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그러니까 까꿍이가 이상하게 바라보면 안 돼. 이상한 게 아니라 조금 다른 거야. 같이 놀아. 알았지?"
"응. 알았어."

다행히 까꿍이는 그 뒤로 그 아이를 챙기는 눈치였다. 친구들이 편을 갈라 놀 때도 그 아이가 혼자 있으면 가서 말이라도 건넸고, 같이 블럭쌓기도 했다고 했다. 물론 그 아이는 계속해서 투덜댔지만, 그때마다 까꿍이가 먼저 그 아이를 품어주는 듯했다. 엄마 아빠에게 배운 대로 녀석은 사람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면서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생각됐다. 그래 계속 그렇게 자라주렴 까꿍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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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 어딨지? 누나 이름 보여?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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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 입학을 축하한다 까꿍아 ⓒ 이희동


어쨌든 그런 까꿍이가 어느덧 초등학생이 됐다. 매일 같이 걷던 등원길이 사라져 아쉽기도 하지만 별 수 있는가. 품 안의 자식이고 이젠 너의 길을 걸을 때가 됐을 뿐.

아빠는 부디 너의 그 길이 계속해서 찬란하길 바란다. 앞으로 12년 동안 힘들고 궂을 때도 있겠지만 씩씩하게 이겨내고 꿋꿋이 걸어가렴. 아빠는 뒤에서 언제나 늘 우리 딸을 응원할게. 아빠는 항상 네 편이란다.

입학 축하한다. 까꿍아.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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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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