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개성공단, 내 딸도 '반공소녀'로 만들 건가요?

[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55] 까꿍이가 살아갈 세상이 평화롭길 바라며

등록 2016.02.27 08:51수정 2016.02.27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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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무서워."

며칠 전이었다. 저녁을 먹은 후 아이들을 씻긴 뒤, 아이들의 바람대로 옛날이야기나 수수께끼 놀이를 해준다며 이불에 같이 누워 있는데, 갑자기 옆에 누워있던 까꿍이가 불쑥 내 품을 파고들었다. 그리고서 던지는 뜬금없는 질문들.

"아빠, 우리 전쟁 나면 다 죽는 거야?"
"응? 전쟁? 다 죽지는 않지만, 죽을 수도 있지. 왜?"
"아니, 뉴스에서 계속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고 하기에. 또 산청 가니까 길거리에 전쟁 뭐라고 하는 것도 걸려있고. 난 전쟁이 무서워."

북한 조선중앙TV가 광명성 4호 발사장면을 사진으로 내보냈다. ⓒ 연합뉴스


몇 주 전, 북한의 로켓 발사 소식 및 개성공단 폐쇄 뉴스를 보면서도 연신 전쟁이 나냐고, 우리 모두 죽으면 어찌하냐고 걱정하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산청 외갓집을 다녀오더니 그 무서움이 배가된 듯 보였다. 길거리에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민주평통자문위원회나 새누리당의 현수막이 붙어있으니 그럴 수밖에.

녀석은 아빠가 전쟁의 심각성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나름 심각하게 말을 이었다. 아빠에게 전쟁의 공포를 인지시켜줘야겠다는 듯 자신이 들은 바를 이야기했다.

"산청에서 들었는데 증조 외할머니는 10살 때 전쟁이 났대. 사람들이 엄청 죽고 도망도 갔었대."
"할아버지도 7살 때 그 전쟁을 겪으셨어. 할아버지도 피난을 갔었는데 너무 어려서 증조할아버지가 그 자식들을 잠시 고아원에 맡기셨대. 전쟁 끝나면 찾으러 온다고. 그래서 할아버지는 그때 배운 영어 노래를 아직도 기억하셔."
"근데 아빠는 전쟁이 안 무서워?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는대?"
"무섭지. 근데 전쟁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아. 옛날에는 우리나라가 힘이 없었는데, 지금은 우리나라가 힘도 세고, 북한과도 사이가 예전만큼 나쁘지 않거든. 물론 조금 나빠지긴 했지만 전쟁 날 정도는 아니야. 아빠는 예전에 북한에 있는 금강산도 갔었다니까."

막상 걱정하지 말라고,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리고 전쟁이 나도 아빠가 지켜준다고 말은 했지만 그 말이 딸에게 얼마나 안심이 될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까꿍이에게는 아주 오래전부터 북한이 의심스러운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무서운 까꿍이

까꿍이의 근황 전쟁이 무서워 ⓒ 이희동


아마도 1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까꿍이는 당시 한참 세계 각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는데, 문득 내게 아빠는 세계 어디어디를 다녀왔느냐고 물었고, 나는 15년 전에 다녀왔던 유럽 배낭여행과 함께 북한 금강산도 언급했다. 그러자 까꿍이의 눈이 커졌다.

"북한? 아빠, 북한도 다녀왔어?"
"응. 왜? 우리, 북한도 갈 수 있어. 제일 가까워. 아빠는 예전에 북한 개성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그러는데, 북한은 우리 쳐들어왔었대. 사람도 많이 죽이고. 그런데 북한을 어떻게 가?"
"응. 예전에 전쟁을 했었지. 그런데 전쟁을 했었다고 계속 그 나라랑 사이가 나쁜 건 아냐. 일본도 예전에 우리나라를 쳐들어 왔었고, 중국도 쳐들어 왔었어. 너도 산들이랑 가끔 싸우잖아. 그렇다고 계속 산들이랑 사이가 나쁘고 안 놀아? 아니잖아. 나라끼리도 그래."

오랜만에 본 삐라 한강 얼음 속에서 발견한 삐라 ⓒ 이희동


녀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말을 미심쩍어했다. 아직 채 자라지 않은 아이에게는 부모보다 선생님의 말씀이 더 강한 영향을 끼치는 듯했다. 아무리 아빠가 예전에 대학에서 북한을 공부했던 사람이라고 강변한들 그것이 녀석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이에게 북한은 여전히 의심스럽고 두려운 존재였으며, 이는 간혹 TV에서 나오는 뉴스로 증명되었다. 로켓을 굳이 미사일이라고 표현하고, 당장이라도 전쟁이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언론들을 보면서 까꿍이는 대보름날 기도에 한 마디 덧붙인다.

"달님,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하고, 전쟁 안 나게 해주세요."

개성공단 폐쇄가 지니는 3가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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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포토] 빨간불 켜진 개성공단 ⓒ 유성호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어느덧 10일이 훌쩍 지났다. 남북은 여전히 험한 말들을 뱉어내며 극한 대치 중이고 개성공단이 재개될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번 결정이 4월 총선 승리를 위한 정부여당 발 북풍이라면 그냥 지켜보면 될 일이지만, 사드배치와 관련되어 미국/중국의 대립이 격화되고, 이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해지면서 개성공단의 재개 역시 불투명하게 되었다. 2000년 6월 15일 이후 불안정하게나마 유지되었던 평화의 마지막 안전핀이 뽑힌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인들은 내게 가끔 개성공단 폐쇄에 관한 의미를 묻곤 한다. 어쨌든 내가 대학원에서 북한학을 전공했고, 한때 개성공단으로 출근하기 위해 기꺼이 물류 분야에 뛰어들었기 때문인데, 적지 않은 시간 현장을 떠나왔던 나로서는 그 질문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 오히려 나의 시선은 전공자보다는 평범한 아빠의 그것과 비슷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으로서 이번 개성공단 폐쇄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는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데, 평화의 문제, 인식의 문제, 꿈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선사마을 삼남매 ⓒ 정가람


우선 평화의 문제. 앞서 언급했듯이 개성공단 폐쇄는 까꿍이에게 꽤 큰 충격인 듯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그래서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 물론 8살 된 아이가 죽음을 얼마나 명징하게 받아들이겠냐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치는 까꿍이에게 하나의 공포로 다가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미 어른들이야 계속되는 자극으로 인해 안보불감증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지만, 이제 막 세상을 인식하는 아이들에게 TV 등에서 나오는 로켓 발사 장면이나 군인들의 삼엄한 경계 모습은 충분히 위압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쨌든 이번 조치로 인해 한반도는 전쟁의 불구덩이로 한 발짝 전진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부모의 입장으로 이번 개성공단 폐쇄를 전격적으로 감행한 정부에게 다시 한 번 물을 수밖에 없다. 비록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위한 행위였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좀 더 긴 호흡으로 봤을 때, 이번 조치가 우리의 안보를 더 악화시킨 것은 아닌가. 나보다는 내 자식이 살아갈 세상이 좀 더 평화롭길 바라는 입장에서 현재 정부의 태도는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닌가.

목욕 직후 삼남매 ⓒ 정가람


두 번째는 인식의 문제다. 우리의 공교육은 북한을 비정상적인 존재로 가르친다. 앞선 대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유치원생조차 북한을 바라봄에 있어 새빨간 안경을 쓰고 바라본다. 물론 개인에 따라 편차도 있을 수 있고 좀 더 많은 교육을 통해 고쳐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작금의 교육 속에서 아이들은 북한이란 존재에 편견을 가지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잘못된 인식과 편견이 이후 아이가 자라면서 가치관을 형성해 갈 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결국 아이들에게 어떤 대상에 대한 혐오와 멸시, 공포, 증오 등을 심는 것으로, 이와 같은 메커니즘에 익숙해진 사람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와 맞부딪혔을 때 합리적인 사고 대신 퇴행적인 사고를 할 가능성이 높다. 무지의 대상을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 나와 단절시키고 타자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아이가 세상을 합리적이고 따뜻하게 바라보길 바라는 부모의 입장에서 이번 개성공단의 폐쇄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결국 북한을 다시 악마화할 가능성이 높은 조치로서, 아이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상대를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소통하고 대화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현재 그 기회를 모두 저버렸다. 오히려 그동안 이뤄왔던 인식의 개선을 다시 수포로 되돌렸다.

광명동굴의 삼남매 ⓒ 이희동


마지막은 꿈과 가능성의 문제이다. 사실 북한은 현재 남한 사회에 있어서 가장 현실적이고 가능성이 높은 발전의 원동력이다. 결국 이 땅의 자본이 고도화된 자본주의의 숙명일 수밖에 없는 저성장의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는 방법은 북한으로의 진출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 초기 소위 '통일대박론' 역시 이와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이는 각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하나의 블루오션이다. 당장 나만 보더라도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북한학 대학원을 선택했는데, 이는 북한학이 결국 우리의 먹을거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해야만 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의 교집합이 북한학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 개성공단 폐쇄로 이와 같은 꿈을 최소한 10년 지체시켰다. 남북은 그동안 쌓아왔던 신뢰를 한꺼번에 까먹었고, 또다시 서로를 탐색하고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아이는 10년이 지나도 다시 반도의 울타리 안에서 사고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언감생심 대륙의 꿈을 꾸는데 지난한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러니 어찌 부모의 입장에서 이번 정부의 조치가 반가울 수 있겠는가.

소녀상과 삼남매 어떻게 키워야 할까? ⓒ 이희동


아직 개성공단은 깜깜무소식이다. 4월 총선이 아직 한 달 이상이 남았으니 그동안에는 해결될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도 사실이다. 부디 정부가 좀 더 큰 사고로 대승적으로 판단하길 바란다. 우리 까꿍이가 평화로운 한반도에서 북한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큰 꿈을 꿀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 아니겠는가. 정부의 변화를 촉구한다.
#개성공단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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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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