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 행상 70세 할아버지...경이롭다

[디카시로 여는 세상 - 시즌2 중국 정주편 ⑭] <거리의 성자>

등록 2016.05.12 11:04수정 2016.05.1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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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에서 ⓒ 이상옥


오늘도 어김없이 불 켜진 쇼윈도 앞
리어카 행상을 하시는...
-이상옥의 디카시 <거리의 성자>


최근 개봉의 판관 포청천, 공의의 시성 두보, 신정의 중국 문명의 개조 황제 등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거인들의 위대한 삶을 경탄하며 경의를 표한 바 있다. 오늘의 현대 문명사회를 앞장서서 이끈 위인들은 마땅히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의 주체는 민중

그러나 역사의 주체는 민중이다. 필부의 삶도 위인들 못지 않는 의미를 지니는 것임은 물론이다. 김수영의 <풀>이라는 시를 최근 다시 읽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 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자신의 자리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지키며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민중들의 모습은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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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던 거리에 휴지 조각이 뒹구는 늦은 밤까지 계속 리어커 행상을 하시는 할아버지. ⓒ 이상옥


지난 3월 중국 정주경공업대학교로 일자리를 옮기고서 숙소 아파트에서 학교까지 가까워 걸어 다닌다. 오갈 때마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리어카 행상을 하시는 70세는 됨직한 할아버지 한 분을 늘 만난다.

오후에 나오셔서 밤늦게까지 여성용 소품을 팔고 계신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숙연해지고, 무한한 존경스러운 마음이 벅차게 차오르는 것을 누를 길이 없었다. 말씀도 없으시고, 그냥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계시는 것이다. 이 분의 삶을 저울에 달면 어찌 황후장상만 못하다고 할까.

최근 취업이나 결혼을 못해 부모와 같이 사는 '캥거루족'이 늘고 있다는 기사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2015년 통계층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년층이 자녀와 함께 사는 비율이 31.6%라고 하고, 그 첫 번째 이유가 '자녀의 독립생활 능력 불가능'이기 때문이고, 이 비율은 해마다 증가 추세라고 한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가시고기

자녀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은퇴도 못하고 일터에 나가는 세상의 아버지들은 '가시고기'가 맞다. 아빠 가시고기는 혼자 알들을 지키며 외적과 싸우며, 먹지도 자지도 않는다. 결국에는 알에서 깨어난 새끼 가시고기는 제 갈 길을 가고 홀로 남은 아빠 가시고기는 그 자리에서 쓸쓸히 죽는다.

왜, 이국땅 어느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자꾸만 조창인의 장편소설 <가시고기>가 떠오르는지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올 3월 1일부터 중국 정주에 거주하며 디카시로 중국 대륙의 풍물들을 포착하고, 그 느낌을 사진 이미지와 함께 산문으로 풀어낸다.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감흥)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소통하며 공감을 나누는 것을 지향한다
#디카시 #가시고기 #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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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베트남 빈롱 소재 구룡대학교 외국인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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