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 팬 잘못 아니다" 27년 만에 밝혀진 진실

[유럽에서 세월호의 미래를 보다 ③] 힐스버러 유가족과의 만남

등록 2016.06.09 14:03수정 2016.06.0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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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일~5월 15일 세월호 유가족들은 독일, 이탈리아, 바티칸 시국, 벨기에,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각 도시를 방문해 세월호 참사를 알리고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촉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방문 기간 동안 스웨덴 에스토니아호 참사 유가족, 영국 힐스버러 참사 유가족, 파리 테러 피해자 모임 등을 만나 재난참사에 대한 국제연대의 장을 열었습니다. 유럽에 울러 퍼진 세월호 유가족들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총 5회에 걸쳐 유럽 방문 이야기를 전하는 기사를 게재합니다. -기자 말

유럽 방문 9일째인 5월 11일, 우리는 27년 전 힐스버러 참사가 일어났던 영국 리버풀로 향했다. 1989년 4월 15일, 영국 힐스버러 축구 경기장에서 열린 리버풀 경기에서 많은 관중이 몰려 96명이 압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경찰은 책임을 회피하며 팬들의 부주의로 사고가 났다고 결론을 내렸고 언론 또한 희생자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렇지만 피해 가족들과 팬들은 진상규명 캠페인을 지속했고 지난 27년간의 노력으로 2016년 4월 26일 법원은 해당 참사의 원인을 팬들의 잘못이 아닌 경찰의 과실치사라고 평결했다. 우리가 유럽으로 떠나기 직전에 이 판결이 나왔다. 힐스버러 유가족들을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던 만큼 어떤 노력과 과정을 거쳐 이런 판결을 받을 수 있었는지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또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우린 말없이 손을 꽉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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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스버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념비 앞에 선 세월호 유가족들과 힐스버러 유가족 ⓒ 4.16연대


새벽 일찍 런던 숙소를 떠나 도착한 리버풀. 기차역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힐스버러 참사 유가족회의 변호사 사무실을 먼저 찾았다. 가장 먼저 우리를 알아보고 다가와준 분은 힐스버러 참사 당시 18살 외아들을 잃은 배리 데번사이드씨였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슬픈 아버지의 눈망울이 그동안의 아픔을 말해주었다. 데번사이드씨는 약속시간 전부터 사무실을 찾아 세월호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며 우리의 이야기가 자신들이 겪은 일과 흡사하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 하였다.

당시 데번사이드씨의 아들은 친구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았다가 참변을 당했으며 경찰과 구조인력이 아닌 시민들이 경기장 광고판을 뜯어 아들의 시신을 옮겼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강조했다.


"세월호도 안전하지 않았고 힐스버러 경기장도 안전하지 않았다. 축구장 철조망은 사람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설치되어 있었고 경찰은 그 안에서 깔려죽지 않으려고 나오려는 이들을 가로막았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대화 도중 어머님 한분이 들어오셨다. 제니 힉스씨는 이 참사의 유가족이자 생존자다. 두 딸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어머님은 두 딸을 잃은 채 혼자 돌아와야만 했다. 말이 필요 없이 우리는 힘껏 안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힐스버러 유가족들은 우리 이야기를 들으며 두 나라 권력이 보인 태도까지도 매우 유사하다고 표현했다.

"한국의 대통령이 유가족을 돕지 않은 것처럼 이곳 경찰들도 우리 희생자 가족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그들은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을 리버풀 축구 구단 팬들에게 돌리기 위해 모든 술수를 다 썼다."

또한 힐스버러 유가족들은 공권력에 맞선 싸움은 매우 길고 외롭다고 여러 차례 말하며 우리 세월호 가족들은 누가 돕고 있는지 그 도움이 충분한지 물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한국에서의 활동과 많은 국민들의 서명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포기하지 않으면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는 희망을 얻어가려 한다"고 답했다. 그들은 한국에서의 활동에 놀라워하며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하지만 끊임없이 연대하고 노력하면 산도 옮길 수 있다"라고 용기를 주었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계속 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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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스버러 피해자들을 기념하는 추모동상 앞에서 묵념하는 세월호 유가족 ⓒ 4.16연대


우리는 잠시 밖으로 나와 힐스버러 유가족들과 함께 참사 기념비를 방문했다. 희생자명단과 추모비를 보며 두 손을 꼭 잡았다. 희생자 명단이 쓰인 추모비를 보니 대부분이 10대 청소년이었다.

"이 아이가 제 아이예요."

함께한 힐스버러 유가족들은 손가락으로 이름을 가리키며 추모비를 어루만졌다.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난 힐스버러 유족들은 이제 사건의 실체에 조금 더 다가섰다고 밝혔다. 제니 힉스씨는 또렷이 말했다.

"죽음이 우리 아이들 탓이 아니라는 증거가 나왔다. 우리는 당시 결정권이 있는 사람들의 잘못에 관한 증거를 쥐고 있다. 이젠 그들의 책임을 물을 차례다."

데번사이드씨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가슴 깊숙이 사랑을 담아 기원한다. 진실을 밝혀내기를, 정의를 구현하기를. 그 과정은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이들에게는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한국의 다른 가족들에게도 이 말을 꼭 전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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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들이 가져간 연대의 현수막을 힐스버러 유가족들에게 전달했다 ⓒ 4.16연대


마지막으로 우리는 유럽으로 출발하기 전 우리 세월호 유가족들이 힐스버러 가족들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적어 준비한 현수막을 전달하며 우리 유가족들에게도 메시지를 부탁했다.

"진실, 정의, 사랑을 보냅니다." - 제니 힉스
"절대 NO를 받아들이지 말고 계속 싸우십시오!!" - 배리 데번사이드

힐스버러 유가족들은 우리가 가지고 온 메시지를 리버풀시청에 전시할 것이라고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식을 들은 리버풀 시청 부시장님이 직접 오셔서 현수막을 받아 가시며 우리를 꼭 안아주셨다.

비록 법원 판결은 팬들의 잘못이 아닌 경찰의 잘못이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27년이 지난 지금 진상규명이 된 힐스버러 참사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참사에 책임을 지고 형사 처분을 받는 이는 아직 단 한명도 없다.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고 김시연양의 어머니입니다.
#세월호 #리버풀 #힐스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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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약칭 4.16연대)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세월호 피해자와 시민들이 함께 만든 단체입니다. 홈페이지 : https://416act.net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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