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

심리학자가 검증한 정치인 문재인

[책에서 만난 대선주자] 심리학자 이나미 지음 <운명에서 희망으로>

등록 2017.04.20 08:34수정 2017.04.2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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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파면 이후 차기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유력 대선주자와 관련한 책이 연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오마이뉴스>는 특별기획 '책에서 만난 대선주자'를 통해 인물에 대해 깊은 정보 뿐만 아니라 새로운 리더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보려고 합니다. 시민기자로 가입하면 누구나 '책에서 만난 대선주자'를 쓸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정조 때의 문장가인 유한준(1732~1811)은 당대 수장가였던 김광국의 화첩 <석농화원>에 이런 발문을 붙였다.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곧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곧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

유홍준 교수는 이 시를 인용하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고 했다.

유한준이나 유홍준 교수의 말을 좀 더 간단하고 쉽게 말하면,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앎'이라는 것이 정치의 계절인 요즘은 자기 논리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선입견을 강화하는 방편이 아닌지 살펴야 한다. 알고자 하는 것만 알려 하는 태도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마음에 담고 있지는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2014년 새정치연합과 민주당 통합 당시 불거졌던 '5·18정신과 6·15선언' 등 강령 삭제 논란에 대해 정치인들의 라쇼몽 효과라는 말이 들린다. 각자 입장에 따라 '사실'을 달리 보는 라쇼몽 효과는 선입견을 강화시키며 서로의 '앎'을 깎아내리는 역할을 한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쏟아지는 정치 뉴스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주관적 선택을 점점 단단히 해 나갈 것이다. 내가 선호하는 미디어가 내놓는 뉴스는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뉴스는 쓰레기 취급을 하며 평가절하 할 것이 뻔하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사실만이 진리이기를 바라며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를 내면화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확신'이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검증마저 거부해 버린다면 어떻게 되는지 대한민국은 박근혜를 통해 충분히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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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에서 희망으로> 문재인 구술, 이나미 씀, 다산북스 출판 ⓒ 다산북스

한 정치인에 대한 선입견을 강화하는 도구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문재인이 말하고, 심리학자 이나미가 분석'한 <운명에서 희망으로>를 조심스럽게 읽었다. 여기서 선입견이라 함은 문재인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나는 문재인을 좋아한다. 그가 살아온 길이 해바라기처럼 권력만을 탐하지 않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왔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그를 지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후보의 삶을 들여다보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대한민국의 미래와 희망을 온전히 맡길 수 있는지를 살피지 않고 지지한다는 것은 사이비 종교지, 정치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삼십 년 넘게 사람을 상담해왔던 정신과 의사의 눈으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검증한 <운명에서 희망으로>는 의미가 있다. 저자는 심리학자로서 문재인이 걸어온 길과 그가 갖고 있는 생각을 살피며 정치인 문재인을 분석한다.

정치인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이유

2012년 대선 토론회에서 "증세를 하지 않고 어떻게 복지 예산을 감당하느냐"는 당시 문재인 후보의 질문에 박근혜는 이렇게 답했다. "그래서 내가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것 아니냐." 누가 봐도 상식적인 대화가 안 통하는 엉뚱하고 답답한 대답인데 공감한 이들이 더 많았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논리적으로 따박따박 숫자를 따지는 이정희 후보의 말보다 알맹이 없는 말을 쏟아내는 박근혜의 말이 왜 대중에게 먹혀들었을까? 대중의 동정심은 박근혜가 지금까지 정치할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 대중은 박근혜에게 자신들의 감정을 그대로 이입했다. 일종의 모성 콤플렉스였다.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감성적인 충동에 매몰된 대중은 눈이 멀어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대중은 대통령 후보들을 면밀하게 그대로 보고 있을까? 아니면 자신의 강한 감정을 실어서 스스로 눈을 감고 있지는 않을까? 특정 정치인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는 것은 제대로 된 검증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그런 면에서 정치인에 대한 검증은 날카로운 질문이 있어야 한다. 저자가 문재인에게 던진 의문은 이런 것이다.

"문재인은, 지금까지의 이력이나 언행으로 볼 때, 권위적이거나 제왕적인 정치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은 좀처럼 바꾸지 않는 신념 혹은 고집이 강한 사람이다. 그 고집, 신념을 어느 정도의 융통성, 포용력과 결합시켜나갈지는 그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가 아닐까" -37쪽.

대선후보로 확정된 후 문재인이 보여주고 있는 통합행보가 선거 전략이라고 깎아내릴 수 있다. 또한, 벌써부터 통합정부 운운하는 것은 정치인의 갈지자 행보라며 일관성이 없다고 폄훼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의 눈으로 볼 때는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인 셈이다.

저자는 "노무현 대통령은 일에 있어서는 뛰어난 사람이었고, 국민에 대한 애정도 깊었지만, 보수층과 언론의 마음을 얻는 데에는 실패했던 것 같다."(165쪽)고 평한다. 그렇다면 문재인이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어떨까. 저자는 묻고 소망한다. "보수와 진보 모두를 아우르는 큰 리더가 될 수 있을까?"

나 역시 문재인이 진보 보수를 아우르는 큰 리더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가 더 좋은 세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진보 의제라고 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을 대변하는 이슈들을 피해 가기 때문이다. 표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이런 부분은 보수나 진보 어느 한 쪽 할 것 없이 비슷하다. 관심을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두루뭉술하게 에둘러 넘어가지, 명확하게 나타내지 않는 경향은 늘 아쉽기만 하다. 비록 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가 정치인에게 무의미하다 할지라도 그런 행위를 기도하는 국민도 있음을 정치인은 알아야 한다. 그런 태도야말로 선명성을 강화하면서도 통합형 큰 리더로 칭찬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

다만 "난민 문제, 이민노동자 문제, 결혼 이주자 문제 등과 관련하여 대한민국의 순혈을 주장하는 극단적인 입장과 달리 더 포용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도 될 것 같다"(67쪽)는 저자의 판단을 믿고 싶다.

그런 믿음의 근거는 문재인이 인권 변호사로 보여 주었던 일관성이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 뿌리 뽑힌 자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 왔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 자신이 실향민으로 잠재의식 깊은 곳에 뿌리를 잃은 피난민의 한이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문재인의 일관성을 엿볼 수 있는 사건 중에 온 국민의 분노를 샀던 페스카마호 사건이 있다. 1996년 남태평양에서 조업 중이던 선상에서 한국인 선원 7명을 포함한 11명의 선원이 살해된 사건이다. 문재인은 이 사건에서 가해자들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할 중범이고, 피해자 유족에게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준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다만, 가해자들이었던 조선족 선원들이 처했던 상황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보고 변호에 나섰다. 스스로의 원칙과 양심에 따랐지만 이 사실은 2012년 대선 당시 많은 논란을 낳았다. 그러나 "아무리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는 이들이라 하더라도 형사 절차에서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정신이다."(154쪽) 인권변호사인 문재인의 선택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문재인이 현실성을 무시한 이상주의자만은 아니다. 저출산 문제 해결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이민 정책을 해법으로 제시하는 얼치기 다문화주의자들보다 훨씬 정확하고 확고하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하려면 청년 일자리 같은 경우는 국가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거고요. 그에 대한 대책으로 –중략- 우선 우리 자체 내에서 청년 일자리를 늘리고 청년들에게 저렴한 주택을 제공하고 그래서 일찍부터 결혼하게 만들고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필요한 거죠." - 210쪽

그 밖에도 이 책을 통해 대북정책이나 보육정책 등에 있어서 문재인은 통찰력 있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해관계의 충돌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또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문재인을 분석하고 총평을 이렇게 했다.

"문재인은 자신의 약점이나 공격받아온 맹점들에 대해 경청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었고, 수용할 부분은 수용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차근히 설명하려고 했다. 정치 경험도 문외한인 내가 생각 없이 던지는 질문에도 겸허한 태도로 진중하게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말을 하면서 더 좋은 생각이 나며 취합하고 추가하기도 했다 그럼 되었다. 믿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열린 태도였다." -313쪽

후한 평이다. 저자는 문재인을 결단력 있고 꾸밈이 없으며, 분명한 철학이 있는 줏대 있는 정치인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낸 책이라 '문재인이라는 유력 후보를 띄우기 위한 방편이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도 있다. 사실 정치인들은 대중이 매력을 느낄 만한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의심은 어쩌면 당연하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오류를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의심을 하며 읽는 자세야말로 필요하다.

다만, 나는 "소시민적 무관심과 안일한 태도가 어쩌면 박근혜 정부의 부패를 시작하게 한 씨앗은 아니었을까?"(10쪽) 하는 개인적인 반성과 의무감에서 분석을 시작했다는 저자의 말을 믿고 싶다. 그런 심정과 함께 문재인을 검증한다는 이 책을 비판적 시각으로 읽었다. 읽어본 결과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된다"는 유한준의 말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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