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문재인, 존재감 없는 안철수... 그리고 '깽판 준표'

[대선토론 평가] 19대 대선후보 첫 생방송 토론은 무엇을 남겼나

등록 2017.04.20 14:42수정 2017.04.20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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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TV토론 참석한 대선후보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두 번째 대선 TV토론에 앞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왼쪽부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번 대선 토론은 사상 첫 스탠딩 토론으로 진행됐다. ⓒ 국회사진취재단


'이번 대선 첫 생방송 토론', '유례없는 대선 후보들의 스탠딩 토론'이라며 떠들썩하게 시작한 'KBS 주관 후보자 토론회'가 어설픈 장면들을 쏟아내며 막을 내렸다. 이번 토론회가 유독 혼선을 빚은 표면적인 이유는, 전례 없는 5자 대결 구도였다는 데에 있다.

야권과 여권 내의 분당으로 원내에는 5개 정당이 들어섰고,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 국면으로 고만고만한 지지율의 후보들이 대부분인 상황이 벌어졌다. 무려 5명이 참전하는 대선후보자 토론회는 토론을 준비하는 방송국에게도, 유권자에게도, 후보자들 본인에게도 생경한 풍경이었다.

KBS는 후보자 다섯 명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식인 '사회자 개입을 최소화하는 자유토론'을 제안했다. 두 시간 동안 이어진 토론은 '공통질문① > 자유토론 > 공통질문② > 자유토론 > 마무리발언'의 순서로 구성되었다. 후보자들은 공통질문에 대한 답을 순서대로 1분씩 한 뒤, 각각 9분의 발언 시간을 얻어 자유롭게 난상토론을 진행했다. 자유 토론에서 공-수는 매 순간 바뀌었고, 어떤 이슈에 대해 논쟁할 때는 1대1을 넘어 '1대多'의 구도가 만들어지는 순간도 찾아왔다.

사회자의 개입 없이 다섯 토론자가 자유롭게 토론하는 방식이, 결코 매끄럽게 흘러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여지없이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후보자들만의 캐릭터는 여과 없이 드러나 유권자들에게 선명하게 다가왔다. 이번 토론에서 보여준 각 후보자들의 태도와 말하기 방식을 분석해, 그들의 선거 전략과 경향성을 알아본다.

'문재인 청문회' 돼버린 토론... 그리고 전략적 모호성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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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선토론에 참가한 문재인 후보 ⓒ KBS


문재인 후보가 가장 거센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문 후보의 중도 지지층을 끌어와야 하는 안철수 후보, '유일한 보수 후보'를 자청하며 본인만의 색(色)다름을 자부하는 홍준표 후보 등에게 문 후보를 대상으로 한 의혹이나 논란을 파헤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날 토론에서 역시, 문재인 후보는 가장 많은 방송 분량을 차지하며 어쩔 수 없는 '주연'으로 등극했다. 자유 토론에서 나머지 네 후보는 문 후보에게 가장 많은 질문을 쏟아냈고, 문 후보는 질문 상대와 질문 내용에 따라 다층적인 반응을 보였다.


문 후보는 국방/안보를 주제로 한 첫 공통질문에서 지속적으로 강직한(나쁘게 말하면 '경직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보수 진영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안보관/대북관 논란에, '특전사 출신' 이미지로 응답하던 전략과 유사한 방식이었다. 문 후보는 국방과 안보 문제만큼은 진지하고 물러설 수 없는 태도로 임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위해 미소를 거둔 것이다.

문 후보는 "북핵을 저지할 우리 정부만의 외교적 지렛대는 무엇일까?"라는 첫 번째 공통 질문에 대한 1분 답변 시간에, 강경하며 차분한 목소리와 자신의 주장을 '제안'하는 듯 시청자를 가리키는 제스처를 취하며 대본을 거의 외운 듯한 깔끔한 답변을 내놓았다. 보수 진영의 홍준표 후보 등의 '색깔론'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공격 전 사전 방어와 같은 느낌이었다.

반면 유승민 후보와 홍준표 후보가 내놓은 '북한 인권 결의안' 등의 질문에는 일부러 아주 가벼운 태도로 응답해 질문 자체의 신뢰도를 떨어트리려는 전략을 펼쳤다. 문 후보는 '김정일에게 먼저 물어 보았냐'는 질문에 허허-하며 웃거나, '국정 운영을 안 해보셔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는 식의 가벼운 반응을 보여 질문을 회피함과 동시에 질문 자체의 영향력을 죽였다. 유 후보는 이러한 문 후보의 반응에 크게 흥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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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후보의 질문에 문재인 후보가 답하고 있다 ⓒ KBS


이렇듯 문 후보는 표정과 말투의 변화를 통해, 자신이 취약한 분야의 질문에 아주 강경하거나 아주 가볍게 대답함으로써 안보 논의에서도 높은 고지를 점령한 듯 보였다. 그러나 문 후보 답변 방식의 가장 치명적인 한계는, 이날 토론 전반의 문제로 이어졌다. 대선 국면에서 문 후보가 지속적으로 취하고 있는 입장 표명 방식은 바로, '전략적 모호성'. 쉽게 말해 사안에 대해 확실하고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기 보다는 "차기 정부에서 다룰 문제다", "여야의 합의를 통해 논할 문제다"라는 식의 중립을 취하는 것이다. 지지율 1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논란을 굳이 만들지 않으려는 문재인 캠프의 전략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자유 토론의 방식에서 문 후보는 가장 많은 질문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는 문 후보에게 가장 많은 답변의 책임이 주어졌음을 의미한다.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과 색채가 비교적 뚜렷한 홍준표, 심상정, 유승민 후보가 본인들의 명백한 입장을 가지고 문 후보에게 질문을 던지면, 전략상 뚜렷한 입장을 표명할 수 없는 문 후보는 두루뭉술한 답변을 내놓는 시간들이 반복되었다. 토론의 핑퐁이 오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만일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명확한 입장을 가졌더라면, 논리 구조가 촘촘한 토론이 얼마든지 가능했으리라 본다. 타 후보들의 눈길이 모두 문 후보를 향하는 상황에서, 애매한 태도를 기반으로 한 애매한 답변을 지속하는 문 후보는 어찌 보면 이번 토론의 '맥 커터(맥을 끊는 사람)'였을지도 모른다.

심상정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 국가보안법에 대한 질문을 한 장면에서 이 문제는 여실히 드러났다. 심 후보가 "국가안보법은 노무현 전 대통령도 박물관에나 보내라고 했을 정도로 구시대적인 법안인데, 왜 문 후보께서는 없앨 것이라고 말을 못하느냐"는 질문을 하자, 문재인 후보는"여야가 논의해서 개정할 문제다"라며 뚜렷한 답변을 회피했다.

물론, 문재인 후보가 모든 질문에 뚜렷하게 답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하기엔, 문 후보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도 있다. 문 후보는 본인이 비서실장으로 있었던 노무현 정권에 대한 질문, 그에 앞선 김대중 정권에 대한 질문, 심지어는 민주정권 10년 동안의 일정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식의 과거 지향적 질문을 받아 내야 했다. 문 후보는 자신의 정치적정체성인 '친노'의 뿌리를 지킴과 동시에, 과거의 잘못에 대한 인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야하는 큰 짐을 안은 듯 보였다. 문 후보만 비정상적으로 수비에 집중해야하는 토론 방식 자체의 문제도 분명해 보였다.

안철수,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인 걸 기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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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선토론에 참가한 안철수 후보 ⓒ KBS


"국민이 이깁니다!"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며 안 후보는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국방·안보 공통 질문 1, 2 번 중 하나를 고르라는 사회자의 요구에 "3번은 없나요"라는 농담을 날리는 여유(?)를 보이며 토론에 참전한 안 후보는, 이날 토론에서 결국 '묻혔다'.

현 대선 지형에서 안철수 후보의 위치선정은, 지지율에서나 토론에서나 비슷했다. 합리적 중도를 표방하는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은, 문재인 후보와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에서 형성된 것으로 일종의 반사이익이라는 분석이 많다. 지난 4.13 총선에서 국민의 당이 꽤 많은 의석을 확보한 사실과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되는 것이다.

안 후보는 분명 중도 세력과 기존의 새누리당을 지지하던 세력 일부를 흡수해 지금의 지지율을 달성했다.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의 유연한 이데올로기를 원동력 삼는 안 후보의 주된 지지층은, '안철수가 좋아서 지지한다'기 보다는 '나머지가 싫어서 안철수를 지지한다'는 유권자들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기존 박 대통령 지지층이 최후의 양심을 발휘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가 안철수 후보였을 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상은 안 후보가 문재인 후보와 양강구도를 이룰 수 있게 만들었지만, 안 후보의 지지기반이 유독 취약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현 대권 구도에서 안 후보의 이러한 위치는, 이날 토론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안 후보는 '좌파'라고 욕먹지도, '우파'라고 욕먹지도 않았다. 문재인 후보처럼 북한을 대하는 사상검증을 당하지도 않았고, 홍준표 의원처럼 박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음 받지도 않았다. 다만 안 후보는 '말 바꾸기 논란', '박지원 상왕설' 등의 부수적인 요소들의 질문을 받았다.

문재인 후보가 보수 진영에게 사상 검증을 당하기에 좋은 먹잇감인데 비해, 안 후보는 이도 저도 아닌 게 오히려 약점이 됐다. 이렇게 안 후보의 분량은 실종되었다. 토론에서는 공격을 하든, 당하든 카메라에 많이 잡히고 발언권을 많이 얻는 것이 중요한데, 안 후보의 반사이익적 위치 선점은 토론에서는 분명한 실패로 나타난 것이다. 문재인 후보처럼 난타는 당하지 않았지만, 난타를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 후보에게 득이 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악플 보다 무서운 무플'의 뉘앙스와 비슷한 논리다.

토론 태도와 능력만을 본다면, 안 후보는 지난 SBS 토론보다는 훨씬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안 후보는 원고와 대본 없이도 시종일관 차분한 모습을 유지했고, 이날 토론해서 유일하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후보였다.

특히 안 후보는 홍준표 후보의 '떼쓰기'에 가까운 질문들에도 원론적인 수준이지만 차근한 답변을 내놓아 인상적이었다. "박지원을 국민의 당에서 내보낼 것이냐"라는 홍 후보의 질문에 안 후보는 "제가 CEO 출신이라고 언제는 제왕적 리더라고 하더니, 지금은 박지원 상왕설을 내놓는다"며 "네거티브도 앞뒤가 맞게 하기를 바란다"는 차분한 답변을 내놓았다.

DJ 정권의 불법 대북송금이나 햇볕정책을 묻는 질문에도 공과 과를 두루 짚어내며 객관적 시선을 전달하려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꽤나 단계적인 말하기 방식("다른 측면을 제시하겠다" "두 가지 지점을 바라봐야 한다"는 등)을 구사하게 된 안 후보의 성장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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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후보가 홍준표 후보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KBS


하지만 안철수 후보는 교육/사회/문화 파트의 토론에서 뜬금없이, 자신을 지지한 가수 전인권을 '적폐가수'라고 지칭한 문 후보 지지자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등 '문재인과 한 판 붙고 싶은 열망'에 가득 찬 모습을 보였다. 시청자로 하여금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었다. 전반적으로 문 후보와 '양자 토론' 구도를 이루는 방식 역시 '누가 더 좋은 정책을 내놓았는가'가 아니라, 감정적 소모에만 그치는 느낌이었다. 문 후보를 따라잡을 만한 한 방을 기대했다면, 다른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

유승민의 '바른 보수' 딜레마와 심상정의 사자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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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선토론에 참가한 유승민 후보 ⓒ KBS


다섯 후보 중 가장 말을 잘하는 달변가를 뽑자면, 유승민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박빙이다. 두 후보는 모두 오해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정확한 어휘와 문장을 구사한다. 독특한 억양을 구사하는 문·안 후보에 비해 명확하고 또렷한 발음을 자랑한다. 이번 대선 국면에서 가려져있었던 유 후보의 진면모가 지난 SBS 토론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허나 이날 토론에서는 유승민의 '바른 보수' 딜레마가 눈에 선했다. 유 후보의 교육·경제·사회·문화 공약은 매우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심상정 후보의 것과 비교해도 될 정도의 개혁적인 방향이다. 이는 유 후보에게 '올바른 개혁 보수'의 이미지를 선사했지만(박 전 대통령과의 거리 두기), 진보적 공약을 펴는 보수 후보로서 레드 콤플렉스를 더욱 강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기존 보수와의 차별화를 위해 진보적 공약을 펼치는 것이 유 후보에게는 또 다른 딜레마로 다가오며, 기존 보수층의 무기인 '레드 콤플렉스'를 더욱 강하게 사용하는 실수를 초래한 것이다.

유 후보는 토론 초반부터 중반 이후까지 문재인 후보에 끊임없는 사상 검증을 요구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꽤나 매력적인 공약 콘텐츠로 무장한 후보의 의아한 토론 전략이었다. 유 후보는 '송민순 회고록'을 언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의 주적이 북한이냐'는 질문까지 들먹이며 문 후보를 몰아붙였다. 이로써 유 후보는 본인의 옅어져 갔던 보수의 정체성을 다시금 무장하고 보수 유권자들에 구애했다.

그러나 유 후보는 문 후보를 공격하며 본인의 보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는 과정에서 정작 자신의 콘텐츠는 홍보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유 후보는 토론 내내 명확한 언어를 구사하며 지적인 매력을 발산했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성적표를 받았다.

한편 심상정 후보는 이날 토론의 명장면을 두 차례나 만들어내 그 자체로 존재감을 입증했다. KBS 토론회에 어렵사리 합류하는 것에 성공한 심 후보에게는 강력한 한방이 필요했다. 심 후보는 지난 SBS 토론회에 비해 더욱 부드럽고 유연한 대화의 자세를 취해 호감을 샀으며, 가장 강직한 입장을 펼치는 진보 진영 후보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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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선토론에 참가한 심상정 후보 ⓒ KBS


사회자의 개입이 없이 진행되는 토론에서, 부드럽게 대화를 치고 들어오다가도 어느 순간 빠지는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 전술을 가장 유능하게 구사하는 후보이기도 했다. 지난 토론회에서는 쌍방향적 대화 보다는 일방적 토론의 말하기 방식을 취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대화의 핑퐁을 주도하는 역할을 도맡은 것이다.

심 후보는 과거 정권의, 대북 송금 문제를 가지고 난상 토론을 펼치던 나머지 네 후보들에 "여러분, 대북 송금이 몇 년이나 지난 이야기입니까"라며 "선거 때마다 재탕 삼탕을 하고 정작 공약 이야기는 언제 할 것 이냐"는 호통을 쳤다. 네 후보는 멋쩍은 듯 심 후보를 바라봤다. 토론 막판에는 홍준표 후보의 "설거지는 여자의 일" 발언이 여성 차별적이라는 안철수 후보의 지적을 이어받아. 홍 후보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강력하게 요구해 이를 받아냈다. 심 후보는 "여성을 종으로 보지 않는 이상 이런 발언을 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심 후보가 줄곧 날카롭고 논리적인 모습을 보인 것에 반해, 토론에서 심 후보의 방향성을 뚜렷하게 제시하는 성과를 이뤄내지는 못했다. 다섯 후보 중 가장 진보적인 주장을 펴는 심 후보는, '덜 진보적인' 후보들과 '보수적인' 후보들의 논리적 비약과 공약의 문제점을 명확하게 짚어냈지만 정작 본인을 어필하는 기회는 놓쳤다.

특정 한 사람만 집중 마크하는 전략을 펼친 타 후보들과는 달리, 가장 보수적인 홍준표 후보와 본인 다음으로 진보적이라고 분류되는 문재인 후보 모두에게 골고루 총구를 겨누느라 너무 바빴던 것이다. 토론 내내 바쁜 모습을 보여준 심 후보는 그 자체로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강직함과 성실함을 입증했지만, 심 후보의 바람대로 '하루에 지지율을 2%씩 올리는 데' 이 토론이 얼마나 큰 성과로 다가올지는 의문이다.

'나이롱맨' 홍준표에게 토론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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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선토론에 참가한 홍준표 후보는 예능토론을 했다 ⓒ KBS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율 3위를 꾸준하게 기록하고 있는 홍준표 후보에 대한 평가를 빼놓을 수는 없다. 홍 후보는 지난 SBS 토론과 비교해 가장 '기복 없는' 모습을 보여준 후보다.

홍 후보는 여전히 토론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홍준표 후보의 질문은 하나같이 낙제점을 받아야 하는 것들이었다. 문재인 후보에 송민순 회고록에 대한 질문을 하던 중 노무현 전 대통령 '극단적인 선택'을 언급하는 장면이나, 안철수 후보에 "왜 친북인사 박지원을 당에서 내보내지 않느냐"는 떼쓰기 등은 듣고 있기가 괴로워 눈이 절로 감겼다.

그 와중에 홍 후보가 '후보자 토론회'를 어떠한 자리로 이해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은 안철수 후보에게 "DJ 정권의 햇볕 정책을 계승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순간이었다. 이에 대해 안 후보는 오점은 버리고 좋은 점은 계승할 것이지만, 햇볕 정책 자체의 방향성에는 크게 동의한다는 원론적이면서 상식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하지만 홍 후보는 계승할 것인지 아닌지, 예·아니오로 답하라며 안 후보를 몰아붙였다. 토론은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하고, 상대방의 의견에 대해서는 어떤 점에서 잘못되어 있는지를 충분히 따져서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토론은 정답을 맞추는 퀴즈쇼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홍준표 후보는 자신만의 정답을 정해 놓고, 이를 맞추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상대방이 자신의 세계가 정한 정답을 맞추지 못한다면, 사상 검증으로 보복했다. 자기주장만 옳다고 생각하거나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말은 들으려조차 하지 않는 태도는 토론 문화를 저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홍 후보는 이러한 장애물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물론 홍 후보는 MBC 공채 개그맨 시험에 응시한 이력이 부끄럽지 않게, 이날 토론의 예능적 요소를 담당하며 시청자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안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대선주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아닌 것은 아주 명백하다.

다섯 후보 각자는 공력을 다해 이날 토론에 임했을 것이다. 다섯 후보는 하루아침에 무주공산이 된 청와대에 들어가 자신이 꿈꾸는 옳은 세상을 이끌어가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이러한 후보자들의 진심을 이번 토론의 방식이 담아내기에는 그릇이 너무 작았던 탓일까, 아니면 후보자 개개인이 아직 갈 길이 먼 것일까. 이념을 넘어서 정책과 정책이 당당한 겨룸을 벌이는 풍경을 대선 후보자 토론회에서 보기란 아직 요원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음 토론회에서는 후보자들의 더욱 발전한 모습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다섯 명이나 되는 후보자들의 서슬 퍼런 두 시간을 홀로 힘겹게 전달한 수화통역사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대선토론회 #문재인 #2017대선 #안철수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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