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여년 전 세계지도로 지중해 여행하는 법

[지도와 인간사 9] 강리도에서 지브롤터 찾기... 이게 바로 고지도의 매력

등록 2018.02.27 10:36수정 2018.03.1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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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번에는 카사블랑카의 베르베르어 지명을 강리도에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예고한 대로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스페인 땅으로 건너갑니다.

기분 전환을 위하여 이번에는 탐구 놀이를 해보겠습니다. 이렇게 가상을 해봅시다. '강사사(강리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에서 아래와 같이 공지하고 있다고.

"강리도 상의 이베리아 반도 남쪽에 적혀 있는 '這不里法'가 어느 곳을 가리키는 지를 알아내고 그 근거를 정확히 제시하는 사람에게 지중해 15일간 호화 크루즈 여행권을 상으로 주겠음. 여기에는 비즈니스 왕복 항공권이 포함되어 있으며 원한다면 한 사람을 동반할 수 있음."

이 정도면 응모해볼 만합니다. 먼저 강리도에서 這不里法를 찾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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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 류코쿠 본의 일부 ⓒ 류코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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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 강리도 교토대 본 일부 ⓒ 교토대


붉은 동그라미가 문제의 '這不里法'입니다. 붉은 네모는 지난 번에 찾아 보았던 카사블랑카의 옛 이름. 가장 먼저 할 일은 중국어 발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 발음으로는 '저불리법' 이지만 중국어로는 '저불리파(zhebulifa)'.

이제 오늘날 지도에서 이 발음과 비슷한 곳을 찾아내야 합니다. 물론 이번 경우에도 어원이 아랍어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우선 이베리아 반도 남부에서 유서 깊고 유명한 지명들을 떠올려 봅니다.

지브롤터(Gibraltar)! 저불리파와 발음이 상당히 비슷합니다. 지리적 위치도 비슷합니다. 이제 구글에서 지브롤터를 검색해 봅니다. 역시 아랍어에서 유래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브롤터는 아랍어 Jabal Tariq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뜻은 '타리크의 산(Mountain of Tariq)'이다. 타리크(Tariq)는 711년 지브롤터를 점령한 이슬람 장군의 이름이다."

그렇다면 답이 나온 건가? 이걸 제시하면 당첨되는 걸까? 결론은 아직 이릅니다. '저불리파'와 '지브롤터'는 뒷부분이 다르므로 좀더 규명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대목에서 토막 공부를 잠깐 해봅니다. 우선 'Jabal'. 이게 앞으로 다른 지명의 탐험에서도 '這不'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산을 뜻하는 아랍어의 음을 옮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Jabal Tariq은 바로 '타리크 산'이 됩니다. 'the' 혹은 'of'에 해당하는 al을 사이에 넣으면 Jabal al Tariq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al은 넣기도 하고 안 넣기도 한다는 것을 기억해 두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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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롤터 바위 산을 오르고 있는 타리크와 병사들(작자 미상) ⓒ gibraltar-intro.blogspot.


그렇다면 우리의 강리도에서 '저불리파(這不里法)'는 '자발(알)타리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어딘지 석연치 않습니다. 뒷부분 즉 '파'와 '타리크'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좀더 정확한 근거를 찾아 보는 게 좋겠습니다. 지중해 여행이 달려 있으니까요.

인터넷에서 지브롤터의 지명을 다시 찾아 봅니다. 이렇게 많을 줄이야.

"Jebal-Tarik, Gibeltarif, Gibil Tarif, Jibel Tarif, Jibel Tarik, Gibel-Tarik, Gibel-Tarif, Jabalu-t Tarik, Gebaltarik, Gibel -al Tarif, Gebal-Tarik, Ghebal-Tarik, Djebel-Tarik, Gebal Taric, Chebel Tarik, Gebel-el-Tarik, Yebel Tarik, Jebel-Tariq, Jebel Tariq, Djebel Tarik, Gebel Tarik, Yabal Tarik , Jebel Tarik, Jebel-Tarik,Yabal Tariq, Jabal Tariq, Jabal-i Tariq" (출처 : The People of Gibraltar)

이토록 많은 지명 표기가 있다는 것은 이곳이 복잡 다단한 역사를 겪었다는 뜻일 겁니다. 하긴 이 곳이 지금 영국령이라는 것도 이상하기는 합니다. 2016년 말 이곳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었을 때에도 최종적으로 영국 왕실의 승인을 거쳤더군요.

그건 어떻든 우리는 지명에 집중해야 합니다. 수많은 지명 표기 중에 앞 부분은 모두 산을 뜻하는 표기입니다. 문제는 뒷 부분입니다. 'ㅍ' 발음이 들어 있다면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그게 있습니다. Gibil Tarif, Jibel Tarif. 그렇다면 이게 정답일까? 아마 그럴 수 있겠지만 조금 더 만전을 기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파'와 '타리프'는 역시 차이가 있으니까요. 혹시 '파'가 '타리크'가 아닌 다른 어원에서 나왔을까? 발상의 전환을 해 봅니다. 이제 인터넷은 접습니다.

강리도가 만들어졌던 즈음에 쓰여진 여행기인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를 조사해 봅니다. 이븐 바투타(1304년~1368년)는 시기적으로 강리도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겹치고 그의 고향 모로코 탕헤르는 지리적으로 지브롤터와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 또한 베르베르족입니다. 그의 여행기 속에 무언가 단서가 있지 않을까?

"<정복의 산>은 이슬람의 보루이며, 우상숭배자들의 목구멍 가시인 동시에 우리의 주공 아부 하싼이 행한 선덕의 산물이며 그의 앞에 불을 지펴준 화로이기도 하다. 또한 성전을 위한 장비의 저장소이고, 영용한 사병들의 주둔지이며, 신념의 승리를 가져 온 해구이다. (중략) 여기에서 대정복이 시작되었다. 그로 하여 Andalus 사람들은 공포와 쓰라림 후에 안녕의 감미로움을 맛보게 되었다. 타리크가 해협을 건너(711년에 원정군을 이끌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갔다), 바로 여기에 주둔하였던 것이다. 여기로부터 그 이름이 유래했는 바, '자발 타리크' 혹은 'Jabalu'l Fath(정복의 산)이라고 했다." - 정수일 역 <이븐 바투타 여행기2> 380쪽

우리는 이 대목에서 무릎을 쳐야 합니다. 바로 이게 아니겠는가. Jabal tariq(자발 타리크)외에 'Jabalu'l Fath(자발루 파스)'라는 별칭이 있다는 것 아닌가. '저불리파'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이제 수수께끼가 풀렸습니다.

지브롤터에 처음 발 디딘 한국인은?

카자흐스탄의 눌란 박사도 우리의 발견을 확인해 줍니다. 눌란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당시 스페인 일부는 무슬림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아랍 지리학자들에게는 al-Andalus로 알려졌다. 여기에서 오늘날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주 이름이 유래한다. 강리도 상의 알 안달루스지역 지명 중에는 어원이 아랍어인 경우도 있고 원래 로마나 고딕어의 원명이 나중에 아랍어로 변형된 것들도 있다. 이베리아 반도 남단에 '저불리파'가 나오는데 지브롤터를 가리킨다. 지브롤터는 아랍어 Jabal al-Tariq에서 파생된 것인데 '타리크 산'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16세기의 해도 제작자이자 학자인 Ali al-Sharafi는 지브롤터를 아랍어로 Jabal al-Fath라 하였다.

한편 Jabal al-Fath에 대하여 이븐 바투타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사브타(Subta)에서 배를 타고 스페인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본 첫 장소는 승리의 산(Jabal al-Fath/Hill of victory)이었다. 이곳은 이슬람의 위대한 보루이며, 우상숭배자들의 숨통을 죄는 곳이기도 하다. 타맄 이븐 지아드가 스페인으로 진격할 때 바로 이곳에 주둔했기에 이슬람의 승리는 이곳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한 사정으로 이곳은 그의 이름을 따라 Jabal Tarik(Taric)라 불렸으며 또한 Jabal Fath(승리의 산)이라고도 불리었다. 승리의 기점이 바로 여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불리파는 Jabal (al) Fath의 음을 옮긴 것이 거의 확실하다." - <The Silk Road 14>(2016) 114쪽 번역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는 여러 판본이 있는 관계로 어떤 것을 번역했느냐에 따라 내용과 뉘앙스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수일과 눌란의 번역이 약간 다른 까닭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요지는 같습니다.

다음은 16세기 터키의 해군 제독이자 지도 제작의 달인이었던 피리 레이스(Piri Reis, 1465~1553)가 그린 지브롤터 일대입니다. 오른쪽(북쪽)의 지브롤터와 왼쪽(남쪽)의 모로코 세우타 요새가 마주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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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롤터 피리 레이스 지도상의 지브롤터 ⓒ <항해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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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의 書> Piri Reis <항해의 書> ⓒ 김선흥


피리 라이스는 이 책에서 지브롤터의 이름을 터키어로 Cebel-i-Feth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역시 '승리(정복)의 산'이라는 뜻으로 확인이 됩니다(<항해의 서> 187쪽).

이제 '저불리파'의 고증을 완전히 끝냈습니다. 지중해 여행을 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놀랍지 않나요? 나중에 세종 대왕이라 불리게 될 소년 이도가 만 5살 때인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의 붓끝에서 지중해의 관문 지브롤터가 지도에 새겨졌다는 것이. 

그렇다면 이런 의문을 제기해 봅니다. 이곳 지중해의 관문 지브롤터를 실제로 맨 처음 들른 한국인은 누구였을까요? 민영익, 서광범, 변수 등 20대 청년들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이들은 방미 사절로 미국을 방문한 후 귀국시에는 미측이 제공해준 함선에 올라 뉴욕항을 출발하여 인천항으로 돌아 왔습니다. 미국에 갈 때에는 태평양을 가로질렀지만 돌아올 때에는 대서양과 인도양을 경유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 일주 기록을 남긴 것이지요.

1883년 11월 10일 뉴욕항에서 출발하여 대서양을 가로지른 미 해군 함선은 지중해로 진입하기 위하여 지브롤터에 들렀습니다. 배는 계속 나아가 프랑스 마르세이유 항을 거치고 이집트와 수에즈 운하를 경유하여 인도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곳 저곳에서 머물고 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민영익 일행은 선조들이 그 당시로부터 이미 480년 전에 지명을 적어 놓은 곳들을 자신들이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강리도가 조선땅에서 사라지고 잊혀진 지 벌써 300면 가까이 된 시점이었으니까요.

그들이 당시 들르고 머물렀던 곳들을 강리도에서 찾아 볼 수 있을까요? 다음에는 한국인이 최초로 밟았던 지중해 여로의 일부 구간(대서양 아조레스 군도에서 이집트까지)을 강리도에서 찾아보겠습니다.

고지도 보면서 드는 의문, 그게 바로 묘미

이제 강리도의 다른 버전을 잠깐 들여다본 후 강리도를 보다 잘 즐기는 법 혹은 고지도 보는 법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아래 지도를 보면 우리나라 땅에 하얀 눈송이가 점점이 수 놓여 있어 이채롭습니다. 이 지도는 일본의 나라시 소재 텐리(天理)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강리도 버전 중의 하나입니다. 제작시기는 16세기 중엽으로 추측됩니다.

이 지도의 특징은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땅덩이가 바다로 둘러싸인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는 점입니다. 나아가 일본 열도가 수정되어 있고 중국의 남쪽과 아프리카 남쪽 바다에 보다 많은 섬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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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 텐리대 본 ⓒ <대지의 초상>


강리도가 1402년 원본이 만들어진 이래로 계속에서 같은 세계상을 기초로 수정본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어져오던 것이 자취를 완전히 감춘 것은 임진왜란 즈음으로 보입니다.

다시 그 모습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 일본에서였으니까, 300여년 동안 긴 잠을 잔 것이지요. 하지만 한국에 그 존재와 가치가 알려지기까지는 또 다시 많은 세월을 필요로 했습니다.

강리도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나라의 흥망성쇄가 상응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시사가 아닌가 합니다.

'이상하다, 기형적이다, 한국이 얼토당토 않게 크다, 역시 중화주의적이다...'

강리도를 처음 대할 때 그런 인상을 받을 수 있고 그건 자연스러운 거라 생각됩니다. 고지도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읽고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는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해석과 느낌은 무한히 열려 있습니다. 얼마든지 자주적으로 소통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지식 정보는 오히려 부차적입니다.

여기 한 시인의 글을 보겠습니다.

"조선 전기의 세계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는 한반도가 중국 대륙의 반이나 차지하는 크기로 그려져 있다. 비교적 자세하게 그려진 한반도와 중국에 비해 유럽과 아라비아와 아프리카는 한없이 왜곡되어 있어서 달리의 그림에 자주 출몰하는 녹아 내리는 시계와 나무 토막 등을 떠오르게 한다. 아프리카 대륙은 심지어 흐물흐물 해진 고리처럼 표현되어 있고 대륙 안에 거대한 바다를 품고 있다. 아메리카는 빠져 있고 오세아니아도 빠져 있다.

이것은 얼마나 흐뭇한가. 자신이 거처하는 지금 이 땅이 아니라면 머나먼 다른 땅의 일을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얼마나 평화롭고 안온한 느낌을 내게 주는 것이었는지.

지도의 필요가 다른 땅에 대한 침략과 정복의 역사에 바쳐진 면이 있음을 상기한다면 이 옛 지도의 심각하게 왜곡된 정보는 오히려 유머러스한 미감을 주는 것이었다. 옛 지도에는 경도나 위도 등의 직선의 규칙이 없다.

지도, 하면 으레 떠오르게 마련인 직선의 금들이 사라진 자리에 꼼꼼하게 그려진 자욱한 푸른 물결들이 찰랑거린다."

-김선우, <김선우의 사물들> 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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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 아프리카 남쪽 바다 ⓒ 김선흥


시인에게서 지리학의 역사에 대한 학문지식을 기대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거기에 속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직관과 통찰이 빛날 수 있음을 이 글은 보여 줍니다. 우리도 지식 정보에 주눅들 필요가 없습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면 고지도는 이상하게 보이는 그 지점에 묘미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터무니없이 크게 그려진 한반도, 아프리카 대륙 한 가운데에 놓인 얼토당토않은 거대 호수, 중국에 함몰된 인도 등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숨기고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지금 기준으로 고지도를 재단해 버려서는 그 묘미를 알 수 없다는 것이지요.    

영국의 어떤 학자는 이렇게 설파합니다.

"맨 처음 이 지도(중국의 17세기 고지도)와 마주쳤을 때 수수께끼처럼만 느껴졌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퍼즐 조각들을 맞춰 볼수록 더욱 알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어 버린다. 뭐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모든 지도는 그 시대의 사고와 제작자의 주관이 암호화되어 있는 수수께끼이니까 말이다. 옛 지도를 읽는다는 것은 그 코드를 해독하되 우리 자신의 코드는 잊어버려야함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옛 지도를 우리의 기준으로 오독하게 된다.

우리가 범하는 가장 큰 실수는 무시하는 태도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지도를 막론하고 타당한 면을 간직하고 있다. (중략) 옛 지도가 우리에게 '틀린 것'으로 보인다면 그런 대목이 오히려 코드를 풀 수 있는 최적의 단서가 될 수 있다. 지도의 코드와 우리의 코드가 어긋나는 대목이야말로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지점인 것이다." -티모니 브룩 <Map of China>155쪽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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