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킴'의 도시 의성과 컬링 경기장은 닮은꼴이다

공룡발자국부터 '의로운 마늘'까지, 우리가 몰랐던 경북 의성의 매력

등록 2018.03.10 14:00수정 2018.03.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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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군은 경상북도의 중심부에 있다. 북쪽과 서쪽은 안동시와 상주시가 낙동강을 경계로 버티고 있고, 동쪽과 남쪽은 청송군과 군위군이 주왕산과 팔공산을 등진 채 받쳐주고 있다. 이렇게 위치를 설명하면 대략 짐작할 수 있듯이 의성군은 경상북도에서 가장 넓은 안계평야 등을 거느린 곡창 지대이다. 당연히 개천지와 조성지 등 거대한 호수들도 많다.

그러나 의성군은 185년 신라 벌휴왕이 보낸 구도와 구수혜의 정벌군을 막지 못해 조문국이 멸망한 이래 크게 이름을 떨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경주는 1000년 역사의 신라 덕분에, 부여와 공주는 신라와 용호상박의 쟁투를 겨룬 백제 덕분에, 김해는 김유신 가문의 금관가야 덕분에, 고령은 후기 가야연맹의 맹주 대가야 덕분에 진작부터 삼한 일대의 주요 도시로 자리를 잡았지만 의성은 한적한 시골로만 조용히 존재해 왔다.


의성이 주목받은 건 처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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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군 마늘캐릭터 ⓒ 의성마늘박물관


그러던 의성이 2018년 들어 문득 여자 컬링을 계기로 새삼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서 '새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여자 컬링 이전에도 의성이 사람들의 관심을 자아내고, 또 뇌리를 사로잡은 바 있다는 뜻이다. 비록 여자 컬링만큼 집중적인 관심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해당 부문에 관심을 가진 일정 사람들로부터는 크게 눈길을 끈 적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중 하나가 공룡발자국이다. 의성에는 우리나라 공룡발자국 중 가장 먼저 천연기념물 지정을 받은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1973년 세계 최초로 공룡 골격 화석이 발견된 곳도 의성이고, 1982년 무게 120톤, 길이 40m, 높이 20m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거대 울트라사우루스 발자국이 발견된 곳도 의성이다. 이 일로 의성은 일찍이 전국적, 아니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의성이라면 마늘을 빼놓을 수 없다. 전국 최고의 품평을 얻고 있는 의성마늘은 의성에 유명세를 안겨준 천부의 자원이다. 그래서 세간에는 "우리나라 여자 컬링이 그처럼 대단한 실력을 뽐내게 된 것은 선수들이 어릴 적부터 의성마늘을 먹고 자랐기 때문"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전에는 "의성 사람 마늘 한 니야까(리어카, 손수레의 잘못된 말) 싣고 나가서 돈 한 니야까 싣고 돌아온다"는 말도 있었다.

의성군은 의성마늘을 "의로운 마늘"이라 부른다. 의성의 '의'가 '의로울 의(義)'이기 때문이다. 즉 의성은 의로운 지역[城]이다. 의로운 사람들이 화산재 토양의 찬바람 부는 한지 마을에서 재배한 마늘이니 의로운 마늘이라 불러도 결코 과찬은 아닐 터이다. <한국의 발견- 경상북도>(뿌리깊은나무, 1986년)에는 "의성마늘은 여덟 쪽의 논마늘로 크기는 작지만 맵고 쫀득쫀득한 즙액이 많아서 서울의 경동시장 같은 데서도 비싼 값을 쳐준다"라는 표현이 실려 있다.


의성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때는 고려 건국 무렵이다. 929년(신라 경순왕 3, 고려 태조 12) 후백제왕 견훤의 5천 대군, 인구 비례로 환산할 때 지금의 5만 군사로 추정되는 어마어마한 적군이 문소군을 공격해온다. 왕건을 지지하여 고려의 장군으로 활약하던 문소군 성주 홍술이 용맹하게 대적하지만 중과부적으로 끝내 전사한다. 홍술의 죽음을 크게 애통해하던 왕건은 940년(태조 23) 문소군을 당시 나라 안에 10곳밖에 없었던 부로 승격시키고 이름도 의성부로 개명한다. 의로운 지역, 의성군이라는 이름은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인지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의성에는 우리나라 탑이 목탑에서 전탑을 거쳐 석탑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증언해주는 국보 77호 탑리5층석탑, 류성룡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이어져 오는 천연기념물 405호 사촌숲도 있다. 사촌숲은 경상북도에서 가장 큰 군락을 이루고 있는 장관의 방품림이자 경관림이다.

고운사도 의성의 품격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단단한 문화유산이다. 무엇보다도 고운사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사찰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입장료도 주차비도 받지 않아 과연 의로운 고장의 절집답다는 기운을 느끼게 한다.

고운사에는 최치원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가운루와 우화루가 예나 다름없이 계곡물을 가로지른 채 우뚝 서 있는 광경도 놀랍다. 일주문에서 사천왕문까지 이어지는 '천년 송림 체험로 1km'의 금강송 숲 또한 역사와 자연의 향기를 온몸으로 체감하게 해주는 천혜의 도보 길이다. 이 길을 천천히 걸으면 신라 천년의 바람 소리가 솔향과 함께 금강송 나무 사이에 나부끼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의성과 컬링의 닮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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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군 지형 ⓒ 의성군 홈페이지 캡처


의성군은 가로로 길게 누운 지형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중앙고속도로가 의성군의 가운데를 가로질러 땅을 동서로 반분하고 있다. 읍 소재지인 의성읍은 동부의 중심지이고, 거대 소시장으로 널리 알려졌던 안계면은 서부의 중심지이다. 

의성읍 일대 사람들은 큰 도회로 가려면 남쪽으로 바로 내려가 대구로 갔다. 안계면 일대 군민들도 마찬가지로, 읍을 거칠 이유 없이 곧장 대구로 갔다. 서울에 갈 때도 읍 주위 사람들은 안동을 지나서 갔고, 안계 사람들은 낙동강을 건너 상주를 경유하여 갔다. 이는 의성군이 동서로 매우 길쭉하다는 사실을 증언해주는 현상이다.

의성 사람들은 가을이면 마늘 파종을 하고, 봄에는 풋마늘, 초여름에는 알뿌리를 수확한다. 마늘은 물이 잘 빠지는 땅과 서늘한 기후를 좋아한다. 우리나라는 9천 만 년 전부터 약 3천 만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화산이 폭발했는데 가장 먼저 멈춘 곳이 의성 금성산이었다. 즉 화산재가 쌓여 축적된 의성땅은 물이 잘 빠져 마늘농사에 아주 적합했고, 경북 중부 이북에 위치한 덕분에 날씨가 서늘해 좋았다. 

아마도 하늘에서 보면 의성 사람들이 마늘 농사를 짓는 광경은 컬링 선수들이 길쭉한 시합장에서 바닥을 문지르며 경기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과 흡사할 것이다. 의성의 선조들은 나라 안 최고의 마늘 농사를 짓는 데 성공했고, 그 후손들은 부단한 노력과 깔끔한 경기 자세로 국격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세계와 한국인들은 한국 여자 컬링 선수들과 의성에 뜨거운 찬사를 보냈다.

컬링을 통해 고향 의성이 세계에서도 유명한 고장으로 거듭났다. 여름 장마가 계속되면 낙동강의 샛강인 위천이 넘쳐 통행이 끊겼고, 그러면 개학을 해도 대구의 학교에 갈 수 없었다. 평상시에도 상주로 가는 낙동강에는 다리가 없어서 배가 버스를 싣고 오갔다. 그랬던 오지가 지금은 경상북도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윽고 세계적 유명지로 발돋움했다.

끝까지 정성을 다하는 마음가짐을 의성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 보여주었다. 의성이라는 이름을 낳은 홍술에서부터 최고의 마늘을 생산해낸 농부들, 그리고 여자 컬링 선수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결과가 어떻든 과정에 최선의 마음과 힘을 쏟아붓는 참된 인간성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서 "영미야! 영미야!" 하고 목청껏 부르는 일이 빚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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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컬링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왼쪽부터) 김선영, 김초희, 김경애, 김영미, 김은정 선수가 25일 오후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경기후 기자회견을 마치고 메달을 들고 있다. ⓒ 이희훈


평창 올림픽 기간에 "영미야!"를 외친 분들께 의성을 한 번 방문해 보실 것을 권유 드린다. 그런 뜻에서, 필자가 임의로 선정한 의성의 대표급 역사유적과 문화유산 12곳의 등급과 소재지를 아래에 싣는다.

의성 탑리 5층 석탑(국보 77호), 금성면 탑리리 1381-1
제오리 공룡발자국(천연기념물 373호), 금성면 제오리 111
소우당(국가민속자료 237호), 금성면 산운리 173-1
조문국 박물관, 금성면 초전리 223-7
충효사(보물 880호 <정만록> 유적지), 의성읍 상거리 579
고운사(최치원 유적지, 금강송 숲, 보물 246호 불상), 단촌면 구계리 116
빙계 계곡 얼음굴, 빙산사터 5층 석탑(보물 327호), 춘산면 빙계리 산70
사촌마을 가로숲(천연기념물 405호), 점곡면 사촌리
만취당(유형문화재 162호) 등 점곡면 사촌마을 전역과 마을기념관
대곡사(유형문화재 160호 대웅전 등), 다인면 봉정리 894
관수정(낙동강, 유형문화재 432호 마애불상), 단밀면 생송리 산175-13
산수유 마을, 사곡면 화전리 일대
#의성 #컬링 #리틀포레스트 #의성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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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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