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봉쇄' 한국당, 자기 얼굴에 먹칠을 하다

[주장] 자신들이 만든 국회선진화법을 스스로 부정... 이러러면 왜 만들었나

등록 2019.04.25 15:21수정 2019.04.2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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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한 표정의 나경원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5일 오전 국회 사개특위 전체회의가 예정된 회의장을 방문했다 기자들에 둘러싸인 채 나서고 있다. 회의장 밖 복도에 자유한국당이 장기농성에 대비해 준비한 깔개와 스티로폼 등 비품들이 보인다. ⓒ 남소연

 
자유한국당이 국회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국회선진화' 역시 틀어막았다.

25일 한국당은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서울 관악을)의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사보임 문제로 국회의사당 내 회의실 세 곳, 그리고 오신환 의원 대신 사개특위 위원으로 보임된 채이배 의원 사무실, 국회 본청 의안과를 점거했다. 여야4당이 합의한 '25일까지 선거법, 공수처 설치, 검경수사권 조정 등 법안의 패스트트랙 상정'을 막기 위해 정치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에 영향을 끼칠 장소에 진을 친 것이다.

되살아나는 점거, 대치, 유혈사태의 추억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유독 '점거' 또는 '대치' 심지어 '유혈사태' 등 국회의원간 충돌이 잦았다. 이번 자유한국당의 국회 회의실 점거와 유사한 사례로는 2009년 강기갑 전 의원의 일명 '공중부양 사건'이 있었다. 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날치기로 통과시키자 민주노동당 대표였던 강기갑 전 의원이 국회사무총장실에 찾아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책상 위에 올라가 뛰는 장면이 마치 공중에 떠있는 듯 찍혀 붙여진 이름이다.

이번에는 회의 자체를 저지해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안 등에 대한 패스트트랙 상정 자체를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도 있었다. 2010년 말 한미FTA 사건이다.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은 한미FTA비준안을 단독으로 상정하기 위해 국회 회의실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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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2011년 예산안을 강행처리를 시도하자, 홍영표 민주당 의원이 예산안 표결 처리를 막기 위해 의장석으로 뛰어오르고 있다. ⓒ 유성호

 
회의실 진입이 봉쇄되자 민주당 의원들은 망치와 정을 동원해 문을 뜯어냈다. 문이 뜯기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회 경위들을 동원해 소파와 각종 집기들로 문 앞에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민주당 의원들은 문을 뜯어냈는데도 다시 소파 바리케이트에 갇히자 소화전에서 호스를 끌어와 물대포를 쐈다. 그러자 이에 질세라 한나라당 의원들도 회의실 내에 비치된 소화기를 가져와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발사했다. 국회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급기야 2011년도 예산 정국 때는 '유혈사태'까지 발생했다. 이번에도 역시 한나라당이 4대강 사업비가 포함된 6조 원 규모의 예산안을 단독으로 처리하려고 하면서 민주당과 충돌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김성회 한나라당 의원은 강기정 민주당 의원에게 달려가 펀치를 날렸다. 느닷없이 얻어맞은 강 의원은 입술이 터져 피를 흘려야 했다. 김성회 의원은 육군사관학교 36기 출신으로 생도 시절 럭비부원으로 활동을 하는 등 힘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입된 국회선진화법

이렇듯 연이어 국회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하자 국민들의 시선도 점차 곱지 않아졌다. 그럼에도 국회는 서로 '네 탓 공방'만 할 뿐 대화는 하지 않았다. 다행히 소장파 의원들 사이에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 여당 쇄신파 의원들은 국민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에 큰 목소리를 냈다. 2010년 12월 16일 홍정욱을 포함한 한나라당 국회의원 23명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 우리는 의원직을 걸고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을 것임을 말씀드리며, 이를 지키지 못할 때에는 19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임을 국민 앞에 약속드린다"라면서 불출마 배수진까지 치고 국회폭력사태 방지 의지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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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6일 한나라당 김성태, 황영철, 구상찬 의원 등이 '국회 바로세우기를 다짐하는 국회의원 일동' 이름으로 '자성과 결의'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기 위해 국회 정론관에 들어서고 있다. 이들은 이날 성명에서 "우리는 의원직을 걸고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를 지키지 못할 때에는 19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임을 국민 앞에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 남소연

 
이들은 더 나아가 여야 소장파 의원들과 국회 폭력사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법안의 도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여당 쇄신파와 야당 온건파 의원들이 가세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2011년 2월 임시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국회선진화법'이라는 이름으로 집중 논의된 뒤, 3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여야간 합의까지 도출했다.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 2월 13일 한나라당에서 당명을 바꾼 새누리당이 19대 총선 공약으로 선정하면서 도입이 기정사실화 됐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19대 총선에서 152석을 얻어 단독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자 돌연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태도를 바꿨다.

국회의 과반을 차지함으로써 야당과의 협조 없이도 대부분의 사안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게 돼 굳이 야당과의 협의를 강화해야 하는 국회선진화법을 도입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새누리당의 반대로 국회선진화법의 도입이 표류할 기미를 보이자 국회선진화법을 추진했던 당시 여당 쇄신파, 야당 온건파 의원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그들은 "싸우지 말라는 것이 국회에 대한 국민의 명령"이라며 국회선진화법 통과를 촉구하는 선언문을 내고 새누리당을 강하게 압박했다.

새누리당 역시 공약 파기에 대한 부담이 컸고 자당 소속 국회의원들까지 입법을 촉구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모르쇠로 일관할 수는 없었다. 결국 국회선진화법은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도입될 수 있었다.

'싸우지 말자'에서 탄생한 패스트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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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위 회의장에 설치된 투표소2018년 12월 27일 오후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을 신속처리(패스트트랙)를 위해 투표소가 설치돼 있는 모습. ⓒ 연합뉴스

 
국회에서의 싸움을 막겠다는 국회선진화법의 대상에 국회의장이 포함됐음은 당연했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종전 국회법상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위한 심사기간 지정은 별도의 요건이나 대상이 규정돼 있지 않았다. 단지 교섭단체대표의원(원내대표)과의 협의만 거치면 전적으로 국회의장의 재량에 따라 지정이 가능했다.

직권상정이 물리적 충돌과 국회교착상태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판단 하에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심사기간 지정요건을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각 교섭단체대표의원 간 합의가 있는 경우로 한정해 대폭 강화했다. 동시에 필요에 따라 입법의제를 신속하게 관철시킬 수 있는 안건신속처리 제도, 즉 '패스트트랙' 제도를 도입했다.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되면 소관 상임위는 안건을 180일간 심사해야 한다. 기간 내 심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안건은 자동으로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회부된다. 법사위에서도 90일 내에 심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된다.

다만,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되기 위해서 의원은 재적의원 과반수(위원회의 경우 소관 위원회 재적위원 과반수) 서명한 신속처리대상안건 지정요구 동의를 의장(위원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이때 의장이나 소관 위원회 위원장은 신속처리안건 지정동의를 무기명투표로 표결하되,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또는 소관 위원회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패스트트랙은 국회 대다수가 찬성하는 안건이 특정 정당 또는 세력의 반대로 무한정 표류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반대하는 정당 또는 세력의 의견이 무시되는 만큼 270일이라는 긴 시간을 돌아가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지금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여야4당은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안을 무한정 표류시키고 있는 한국당과 더 이상의 협상을 포기하는 대신 270일을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이것이 국회선진화법의 목적이고 존재 이유다.

최대한의 대화와 협의를 추구하되 결국 협의가 되지 않는다면 5분의 3 이상의 의원들이 모여 270일을 돌아가라는 것이다. 조금 늦더라도 그것이 국회가 난장판이 되는 것보다는 낫다는 뜻이다.

선진화 뒤로 하고 물리적 충돌로 돌아간 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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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개특위 회의장 봉쇄한 한국당 선거법과 공수처법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사흘째 농성중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5일 오후 사개특위 전체회의가 예정된 회의장 앞 통로 출입을 봉쇄한 채 연좌시위를 하고 있다. ⓒ 남소연

 
국회선진화법의 탄생 배경이 이런데도 한국당은 다시 국회를 점거하고 물리적 충돌을 일으키는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 예전과 상황이 바뀌었다면 당시에는 한나라당이 여당이었고 민주당이 야당이었다는 것, 당시 민주당은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의 날치기를 막고자 물리적 충돌을 일으켰지만 지금 한국당은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뤄지는 안건 상정을 저지하기 위해 물리적 충돌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을 만든 장본인은 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다. 즉 한국당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국회선진화법을 스스로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면 관계상 더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 요건도 충족시키지 않고 '북한인권법안'을 포함한 11건의 법률안을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해달라며 떼를 쓰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적반하장식으로 '국회선진화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면서 위헌소송을 걸었던 이들이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요건조차 충족되지 못했다며 각하결정을 내렸다.

그러니 '싸우지 말자'고 만든 국회선진화법을 싸움으로 무력화하려는 한국당의 모습이 되레 그들 본연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대한민국 국회에서 대화하는 방법이 있긴 한 건지 의심이 든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광민은 부천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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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이며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헌법 쉽게 읽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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