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실정에 100만 시민 촛불시위

[현대사 100년의 혈사와 통사 92회]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압력으로 분별없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등록 2019.05.04 14:42수정 2019.05.0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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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5.17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 유성호

한국사회에서 촛불은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전통적으로는 종교나 제사 등 엄숙한 제의용으로, 현대적으로는 저항의 상징으로서 정치용으로 쓰인다. 촛불이야말로 '제정(祭政)' 일치의 현대적 산물이다. 몸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초의 본질이, '촛불'이란 저항용어가 되고 군중집회의 '죽창'의 대용으로 변한 것은 2008년 봄과 여름 서울 광화문의 '촛불집회' 또는 '촛불항쟁'에서 시작되었다.

한국 근현대사는 지배층의 부패, 전횡과 외세의 침략으로 국권이 짓밟힐 때면 어김없이 민중들이 들고 일어났다. 동학혁명 -> 만민공동회 -> 3.1혁명 -> 의병 -> 독립군 -> 4월혁명 -> 반유신투쟁 -> 부마항쟁 -> 광주항쟁 -> 6월항쟁으로 면면하게 이어져왔다. 2008년 봄과 여름의 촛불항쟁은 이러한 역사의 전통과 민중의 저항정신이 다시 한번 폭발한 것이다.

촛불집회는 이후 억울하고 서러운 민초들의 저항수단으로 일상화되었다. 특히 세월호참사와 박근혜정부의 무능, 부패에 분노한 시민, 유족들이 촛불이 들고 시위에 나섰다. 어떠한 저항의 방법보다 파급효과가 크고 공감을 불러왔다. 촛불시위는 해외로도 '수출'되어 세계 곳곳에서 야간집회가 열릴 때면 촛불을 켜들었다.

한국에서 촛불이 시위의 저항무기로 등장한 것은 2008년 이명박 정권 때에 시작되었다. 박정희 유신정권기에 3.1명동사건 등 구속자 가족들이 십자가가 새겨진 마스크를 쓰고 촛불시위를 한 적이 있었지만, 이 때만 해도 소수의 저항운동이었다. 대규모의 저항운동으로 불을 부친 것은 이명박정권이 노무현 전대통령을 죽임으로 몰아가서 결국 자살에 이르도록 한 폭거에 저항하는 수단으로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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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친소 수입 반대 촛불 집회 ⓒ 오마이뉴스

국민들의 가슴에 부글거리던 촛불의 용암이 분출하게 된 것은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압력으로 분별없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2008년 5월 2일에는 10대 여학생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를 처음 연 뒤로 많은 시민들이 수입조건 재협상을 외치며 자발적으로 동참하여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2008년의 촛불집회는 이전과는 달리 이른바 주도세력이 없는 자발적 개인들의 모임이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중고생들로부터 시작되어 대학생, 일반 회사원, 유모차를 끄는 젊은 주부들까지 다양한 개인들이 다발적으로 동참하여 비폭력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폈다는 점에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직접민주주의 새로운 실험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네이버 백과사전 「촛불집회」의 항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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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5.17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 유성호

일반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활용하는 네이버 백과사전을 인용한 것은 "10대 여학생들이…"로 시작되는 해석 때문이다. 촛불집회 또는 촛불시위는 이명박 취임 50일 만에 10대 여학생들을 시작으로 청년, 회사원, 주부들까지 자발적으로 참여한 거대한 시민운동이었다. 시위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면서 시작되었으나 곧 이슈가 '쇠고기'를 넘어서 정권 퇴진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촛불집회는 청계광장에서 여중고생들이 미친소 반대, 이명박 탄핵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점화되었다. 그것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발족, 고시 강행,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을 거쳐 6월 10일 백만 촛불 대행진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40일 만에 거대한 횃불 연대로 타오른 것이다. 서울 70만여 명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 80여 곳에서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하였다. 이는 21년 전 87년 6·10항쟁 이후 최대 규모이며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규탄 촛불집회(200만 명)와 비교해도 두 배가 훨씬 넘는다. 온라인 생중계 시청자가 300여 만 명, 집중 항의 메일 발송자는 50만 명으로 추산된다. 왜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이렇게 많이 모였나. 이들이 요구한 것은 무엇인가.  예고 없이 도래한, 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이 자발적 촛불항쟁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이병천)

2007년 5~7월 사이에 일어난 촛불시위를 연구하는 학자ㆍ전문가들은 어린 소녀들로부터 시작되어 전국민적으로 확산된 평화시위라고 분석한다. 예외라면 뉴라이트 계열의 식자들과 족벌신문이다. 이들은 촛불시위를 좌파의 선동이라고 몰아쳤고, 이명박 정권의 핵심에서는 '봉하' 쪽에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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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5.17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 최윤석

 
2004년 3월 한나라당과 잔류 민주당이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하면서 탄핵반대 촛불시위가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이것이 결국 헌법재판소가 기각 결정을 내리게 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해서 '촛불=노무현'을 연상했을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서울은 물론 전국에서 촛불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노 대통령은 대단히 신중하고 절제된 모습을 보여줬다. 참여정부에 책임을 전가하는 이명박 정부와 당국자들의 발언이 연이어 터져나와 속으로는 마음이 상했을 텐데도, 현직 대통령을 존중하고 배려했다. 촛불에서 나온 '대통령 퇴진' 구호나 요구가 사리에 맞지 않고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촛불 문화제 이후 청와대로 몰려가려는 움직임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시했다. 대통령도 우리도 촛불 시위의 후속 대응이 정치보복이고, 보복의 칼끝이 우리에게 향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증오심과 적대감이 그때부터 시작됐다는 것도 한참 후에 알게 됐다. 촛불 시위의 배후로 우리를 의심했다는 얘기 역시 한참 후에 알게 됐다. 정말 놀라운 상상력이고 피해의식이었다. (문재인)

촛불집회가 거세게 전개되고 있을 때 이명박은 심야에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민중의 분노에 두려워하면서 '아침이슬'을 부르는 등 민심을 수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경찰차 수백대로 시위대를 포위하는 '명박산성'을 쌓는 등 탄압을 가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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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국민대책회의 주최 100만 촛불대행진이 예정된 10일 오전 경찰이 서울 세종로네거리 청와대 방향을 컨테이너를 쌓아 봉쇄하고 있다. ⓒ 권우성

 
검, 경은 유모차를 끌고나온 엄마들을 '아동학대죄'로, 시위 학생들에게 음료수를 나눠주는 상인들을 '경범죄'로 처벌하는 등 반민주행태를 보였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시위대를 종북으로 매도하는 등의 족벌신문사 앞에 쓰레기를 투입하면서, 이들 기자들을 기자+쓰레기='기레기' 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한국언론사의 일대 치욕이다.

"촛불항쟁의 밑바닥에는 탐욕스런 시장만능주의에 맞서는 민주주의, 건강한 삶이 위태로워진 시대에 맞서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가 있다."(유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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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박산성큰딸과 큰딸 친구들이 '2008 가장 기억에 남는 올해의 단어'로 손꼽은 '명박산성' ⓒ 이종찬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현대사 100년의 혈사와 통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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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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