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으로 만나고 싶은 에세이 작가

[리뷰] 박철현 지음 '이렇게 살아도 돼'

등록 2019.08.28 08:17수정 2019.08.2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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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렇게 살아도 돼> 저자는 세상에 마냥 착한 사람은 없다고 자기 고백을 하며 글을 시작한다. 2001년 일본으로 건너가 18년 동안 저자가 살아 온 시간을 가감 없이 풀어 놓는다. 일본 여성과 결혼을 하고, 네 아이의 아빠로 살아가기 위해 그는 오늘도 바쁘게 일한다. 그는 일본에서 생계를 위해 호객꾼, 도박꾼, 술집 주인, 기자를 거쳐 현재는 인테리어 업체 대표로 일하고 있다.

<이렇게 살아도 돼> 박철현 지음 ⓒ 하빌리스

 
외국에 살아 보는 것은 누구나 한번은 꿈꾸는 로망이다. 그러나 그가 처한 현실은 달랐다. 그는 사채를 갚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도망치듯 일본으로 건너 간다. 그리고 일본에서 처음부터 밑바닥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빌린 사채를 갚기 위해 그는 독한 마음으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의 첫 번째 직업은 술집 호객꾼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열악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하며 돈을 모아 사채를 청산한다. 한동안 아내를 속이고 했던 일이 들통 나면서 결국 호객꾼을 그만두게 된다. 저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다시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선다.
 
운기(運氣)가 찾아왔을 때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 주어진 일이 영 마음에 안 들어도 최선을 다하다 보면 사람이 생기고,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자산이 된다. 3개월 만에 지옥이라 생각했던 삶이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그것만으로도 내 일본행(혹은 도피)은 성공이었다. 안정을 되찾은 지금도 간혹 그 시절의 일을 떠올리며 가부기초(지명)에 감사한다. 어떤 이들은 그곳을 불법과 폭력이 판치는 무섭고 더러운 동네라고 여전히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그가 호객꾼을 그만두고 시작한 일은 놀랍게도 일명 '파치 프로'라고 전문 도박꾼이다. 경마로 사채를 빌려 쓰다가 빚에 쫓겨 일본까지 도피했던 그는 다시 슬롯머신 앞에 앉아 생활비를 벌었다.

생계형 도박꾼이 된 저자는 매일 아침 8시면 슬롯머신 가게 앞에서 줄을 서서 입장해서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하루에 8000번 이상 버튼을 누르고 9개월 동안 450만 번의 팔을 들었다 놨다 하는 노동을 했다. 가장으로서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압도적으로 승리한 날도 들뜨지 않고 냉정했다. 경품을 받아 돈으로 바꾼 다음, 다시 가게로 돌아가 언제나 그랬듯 모든 기계의 데이터를 노트에 적고 다음 날 아침 여전히 8시에 가게에 도착해 줄을 섰으니까. 한국에서 경마를 했을 때 만약 이 정도의 수입을 올렸다면 친한 직원들 부르고 소고기 쏘고 클럽도 가도 아마 난리가 났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내 덕분일 수도 있다. 아내도 일을 마치면 한두 번씩 슬롯 가게에서 기계를 돌리며 나를 기다려 주곤 했다.

우리는 낭만적인 외국 생활을 동경한다. 정원이 있는 멋진 집에 살면서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공원을 산책하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런 낭만적인 삶은 잠깐의 여행자로서만 가능한지도 모른다. 가진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은 외국에서도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버텨야 한다.

그는 생계를 위해 때로는 비정상적인 일을 하지만 그 일마저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일하는 사람의 책임감 있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노력하는 하루하루가 모여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가부키초 호객꾼 생활을 통해 직업에 대한 귀천이 없다는 점을 배웠다면, 짧다면 짧은 파치 프로 생활을 통해서는 프로로서의 삶을 배웠다. 나이 서른에 평생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그리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업(業)에 대한 태도를 마스터한 셈이다. 누군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천한 업이라 할지라도, 인생의 단단한 자양분으로써 지금도 여전히 작용하고 있으니,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그는 타국의 고된 생활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의 직업 편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다시 기자를 거쳐 술집 주인을 하다가 현재 인테리어 업체 대표로 일하고 있다.

그는 눈 앞에 주어진 새로운 일에 뛰어들고 묵묵히 그 일을 배우며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간다. 가진 것 없는 현실의 절박함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다. 그는 어머니가 30년 넘게 생선가게를 하며 가족을 위해 쉬지 않고 일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는 아들로 성장한다.
 
나는 보통 사람들의 에세이, 타인의 삶을 엿보고 읽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만 명의 사람이 있다면 만 개의 오리지널리티 가득한 역사가 있다. 그 경험들을 덩어리 몇 개로 범주화시키거나 나누는 건 무례하고 폭력적이다. 한 개인의 역사와 경험은 오롯이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를 이웃으로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와 출근길에 마주치면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퇴근길에 만나 함께 캔커피를 마시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의 고단함을 풀고 싶다. 그리고 오늘도 애썼다고 서로 격려하며 바빴던 하루를 웃으면서 마무리 하면 좋겠다. 

이렇게 살아도 돼 - 지금의 선택이 불안할 때 떠올릴 말

박철현 (지은이),
하빌리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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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일상 여행자로 틈틈이 일상 예술가로 살아갑니다.. '예술가의 편의점' 블로그를 운영하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저서 <그림작가 정무훈의 감성워크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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