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 군가 부르고, 독립지사 묘소도 참배하고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달성군 소재 주요 독립운동유적 답사

등록 2019.12.16 11:20수정 2019.12.1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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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시민들이 문석봉 의병장과 이두산 3부자 유적을 찾는 독립운동유적 답사를 실시했다. ⓒ 정만진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상임대표 배한동)가 대구시의 지원을 받아 다섯 차례 진행한 '대구 시민 독립운동유적 답사 프로그램'의 마지막 답사가 지난 14일 실시되었다.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의 '대구 시민 독립운동유적 답사 프로그램' 전체 내역

실시 일자
2019년 11월 16일-12월 14일 중 매주 토요일(5주 연속)

답사 장소
11월 16일 : 신암선열공원, 봉무동 일제 군사 동굴, 향산 일제 군사 동굴, 최종응 고택
11월 23일 : 수성못 상화 동산, 수기임태랑 묘, 서상돈 묘소, 강제 위안부 유적, 조양회관
11월 30일 : 이육사 고택, 동화사 학승 유적, 남산교회, 김울산 흉상, 대구형무소 터, 녹동서원
12월  7일 : 이종암 고택, 대한광복회 창립지, 조양회관 터, 이종암 군자금 모금지, 인물동산
12월 14일 : 이두산 생가터, 문석봉 생가터, 문영박 유적, 이상정·이상화 묘소, 이장가 문화관
 

14일 답사에 참가한 대구 시민 30여 명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약한 이두산 장군 생가터, 구한말 문석봉 의병장 생가터,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해 임시정부에 전달했던 문영박 지사 유적, 이상정·상화 형제의 묘소 등을 둘러보았다.

광복군 군가를 작사·작곡한 이두산 장군

14일 답사의 첫 방문지는 달성군 화원읍 명곡리의 이두산 장군 생가터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부 및 내부무 차장·광복군 정훈처장 등을 역임한 이두산은 광복군 군가를 작사·작곡한 독립지사로 이름이 높다. 

이두산은 해방이 되자 장남 이정호와 함께 남한으로 귀국했다. 장남 이정호도 임시정부의 외무부 총무과장과 의정원 경상도의원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였다. 반면, 조선의용대에서 활약한 차남 이동호는 북한으로 귀국했고, 뒷날 북한군의 요직을 역임했다. 이두산 3부자는 남북 분단의 비극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명성왕후 시해 이후 처음으로 창의한 문석봉

이두산 장군 생가터에서 광복군 군가를 부른 답사자들이 두 번째로 찾은 답사지는 달성군 현풍면 성하리의 문석봉 생가터였다. 문석봉은 명성왕후 시해 이후 최초로 창의한 구한말 의병장이다. 그는 유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서울을 향해 진격했지만 군사 규모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였던 탓에 패퇴하고 말았다. 대구감옥에 갇혔던 지사는 탈옥하여 재기를 도모했지만 병이 깊어져 결국 귀향했고, 이내 세상을 떠났다.

 

독립운동가 문영박 선생의 유적을 찾은 대구시민들 ⓒ 정만진

 
세 번째 답사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하며 독립운동 군자금 모금 활동을 펼쳤던 문영박 지사 유적이었다. 흔히 '문씨 세거지'로 불리는 이곳은 대구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이곳이 독립운동 사적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많지 않다. 대구경북동학연구회 추연창 대표는 "문씨 세거지는 조선 시대 고택이 있어 시민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독립운동 유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답사를 하면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나란히 유택을 마련하고 있는 이상정·이상화 형제

중국군 장군으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했던 이상정 지사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민족시인 이상화는 형제다. 그래서 이상화는 중국에 가서 형 이상정을 만나고 돌아온 일로 체포되어 고초를 겪기도 한다. 이상화는 해방이 가까워진 1943년에 세상을 떠났고, 이상정은 독립 이후 귀국하지만 이내 병사하고 만다.
 

대구 시민들이 '상화 기념관, 이장가 문화관'을 찾아 실내를 둘러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 정만진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 따라 꿈속을 가듯 (중략)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네 빼앗기겠네"


형제의 묘소 앞에서 답사 참가자들은 묵념을 하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기본 가사로 하여 작곡된 노래를 함께 불렀다. 대구신문연구원 김영재 원장은 "안동에는 이상룡 선생이 있고 대구에는 이상정 장군이 있다"면서 "대구가 자랑할 만한 지사님들을 찾아 성심으로 기리는 일은 그분들의 독립운동정신을 계승해야 할 우리 후대인들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방문하지 못한 정학이 지사의 동상

마지막 답사 예정지는 달성군 화원읍 화원초등학교 교정의 정학이 지사 동상이었다. 정학이 지사는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순국했다. 지사는 임진왜란 당시 대구 지역 의병 부대들의 연합체인 공산의진군(公山義陳軍)의 초대 의병장에 추대되었던 정사철 선비의 12세손으로, 화원공립보통학교 3회 졸업생이다.

지사는 15세 때 혼자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을 했고, 이듬해인 16세 때부터 인권 운동과 노동 운동을 펼쳤다. 결국 지사는 20세 때 대판 형무소에 투옥되었고, 혹독한 고문을 당한 끝에 2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화원초등학교의 동상은 2013년에 건립되었다. 동상 제막식의 이름은 '정학이 열사 탄생 100주년 기념 행사'였다.

그러나 이날 답사자들은 정학이 지사 동상을 참배하지 못했다. 해가 짧아져 이상정·이상화 두 분의 묘소를 참배한 후 화원초등학교에 당도했을 때에는 이미 교문이 굳게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일행은 교문 앞에서 물러나야 했다. 다만 마음으로 정학이 지사에게 인사를 드리는 도리밖에 없었다.   
 

정학이 지사 동상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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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소설 의열단><소설 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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