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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은 너무 잘해서 질문 없으시죠?" 아뇨, 있습니다

[오태양의 미래정치칼럼] K-방역 1년, 성공 스토리의 이면

등록 2021.01.23 11:03수정 2021.01.2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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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1월 20일, 우리는 K-방역 1년을 맞이했다. 질주와 혼돈의 시기였다. 바이러스는 돌연변이를 거듭하며 질주했고, 보건당국과 의료진은 최전선에서 싸웠다. 다행히 3차 대유행이 소강 국면에 접어든 지금, 잠시 숨을 고르고 주위를 한번 살필 때인 듯하다.

"방역은 너무 잘하니까 별로 질문이 없으신가요?"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여유 있는 농담이었다. K-방역에 대한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한국은 명실상부하게 코로나 방역 모범국이다. OECD 기준으로 확진자 수는 세 번째, 사망자 수는 두 번째로 적다. 백신 지각생 논란도 있었으나 곧 전 국민 무료 접종이 시작되고, 국산 백신도 승인을 앞두고 있다.

거시경제 지표도 꽤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다. 2020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1.1%였으나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수출액은 2년여 만에 500억 달러를 넘어섰고, 1인당 국민소득은 이탈리아를 제치고 세계 7위에 오를 것으로 추정한다. 가파른 국가부채비율 증가 속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으나 4차례의 긴급 추경 편성에도 OECD 회원국 평균보다는 낮은 상황이다.

방역과 경제에서 코로나 기습 펀치에 휘청거렸던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대통령의 자신감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러나 이것이 '방역 모범국'의 전부는 아니다. 화려한 조명이 그치면 무대 뒤가 드러나고, 갈채도 있으나 객석을 떠나는 관객들의 냉정한 한 줄 평도 뒤따른다. K-방역의 성공 스토리 이면에는 'K-양극화' 라는 고통의 이면이 존재한다.

K-방역 성공의 이면, K-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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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호프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른 정부의 영업시간 제한에 항의하며 형평성 있고 합리적인 방역기준 수립해 달라고 요구했다. ⓒ 유성호

  
코로나 대유행이 진행 중인 일터와 삶터에 전반에 K자형 양극화 현상이 가중되고 있다. 더불어 경제 회복기의 양상이 업종·직종·계층·소득 기준 등에 따라 치솟는 상단과 떨어지는 하단으로 양극화되고, 이로 인해 경제·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익히 알고 있듯이 수출품목 중심의 대기업과 배달의민족, 네이버, 카카오, 쿠팡과 같은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매출은 급증하였으나, 내수 중심의 소상공업과 오프라인 매장에 매여 있는 자영업은 이미 침체의 바닥을 뚫고 침몰 중이다.

더군다나 방역 당국의 강제적 영업 '금지'와 '제한' 조치는 직격탄이었다. 2020년 기업 파산 신청은 13년 만에 회생 신청 수를 넘어섰고, 개인 파산도 5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폐업으로 인한 고용보험 신청액도 최근 3년간의 총액보다 높다. 코로나 기업 매출 특수는 극히 제한적이었고, 소규모 영세업일수록 추락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일자리 양극화도 K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3분기의 경우, 하위소득 20%의 근로·사업 소득은 각각 10.7%, 8.1% 감소한 반면 상위소득 20%의 근로소득은 0.6% 감소하였고 사업소득은 되려 5.4% 증가하였다. 2020년 비자발적 실직자는 임시직 종사자 40.3%, 일용직 23.2%를 차지하였다. 경제적 취약계층에게 코로나 대유행은 고용과 소득에서 바이러스만큼 불안과 고통으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자산 양극화도 불을 보듯 뻔하다. 재정지출 확대와 금리 인하 정책으로 풀린 유동성 자금이 실물경기나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유입되었다. 2020년 종합주택 매매가격지수는 전년 대비 가파르게 상승했고, 코스피는 30% 상승률을 보이며 3000선을 돌파하였다. 이러한 자산 가치의 상승효과는 고소득자에게 집중되었다. 2020년 소득 5분위(고소득층)의 자산점유율은 44%로서, 소득 1분위(저소득층)의 6.1%보다 무려 7배 이상 높았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 '빚투(빚내서 주식투자)' '동학개미(주식시장의 개인투자자를 빗댄 말)' '벼락거지(자산시장에 투자하지 않음으로써 상대적 자산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빗댄 말)'와 같은 신조어들이 일상어가 되어가고 있다. 단어 마디마디에 '생존 게임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는 절박함'이 느껴져 안쓰럽기조차 하다.

고용과 자산의 양극화는 비대면 온라인으로 급속히 전환된 교육 영역에서도 K형 양극화로 전이되었다. 2020년 6월에 시행된 수능 모의평가 분석 결과, 중위권은 줄고 상·하위권은 늘어났으며, 서울시 교육청이 서울지역 교원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원격수업으로 학력 격차가 벌어졌다'는 응답이 무려 84%에 달했다. 한 연구 결과 주택 가격이 높을수록 학생들의 원격수업 집중도는 비례하고, 게임 편중은 반비례 한다는 사례는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이제 코로나 블루(우울감)를 넘어 '코로나 레드(분노)'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 3.8%였던 우울 고위험군은 2020년 12월 기준 20.0%로 무려 5배 넘게 상승했다. 코로나로 인해 우울감을 경험했다는 국민이 80%에 이르는 여론조사를 입증하듯 묻지마 폭행, 가정 폭력, 음주·흡연이 증가하고 맵고 자극적인 음식 소비도 늘어나고 있다. 유엔은 정신건강 정책을 코로나 국가대응전략에 포함시킬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러한 코로나 대유행 시기의 경제 양극화 현상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일찍이 <21세기 자본>의 저자 피케티는 코로나 대유행이 몰고 올 '치명적 불평등(a virulent inequality)'을 예고한 바 있다. 기존에 잠재되어 있던 경제·사회적 불평등이 코로나 대유행을 계기로 '극단적 불평등'으로 심화·폭발할 것이라는 통찰이었다.

코로나 불평등을 넘을 과감한 정책 결단이 필요할 때

이처럼 코로나 대유행이 미치는 불평등성은 전방위적이고, 전사회적이다. K-방역의 성공이 단순히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기준으로만 평가된다면, 그것은 지극히 단편적이고 자의적이다. 바이러스 방역만이 아니라 경제 방역, 교육 방역, 심리 방역에 이르기까지 국민 삶의 질과 불평등 제어의 영역까지 포괄하는 총체적 방역 대책을 점검하고 설계해야 하는 시점이 바로 K-방역 1년을 맞는 정부의 태도여야 한다.

지난 1년 동안 대통령도, 총리도, 보건당국도 이구동성으로 K-방역의 성공 요인으로 꼽는 것은 우리 국민의 자발적이고 수준 높은 '방역 준수 자세' 였다. K-방역은 '국민이 백신입니다' 라는 정부의 훈령을 부적 삼아 정말 충실하게 마스크를 착용하고,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명절에도 두문불출하며, 방콕과 혼밥을 감내했던 온 국민의 투철한 헌신과 희생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의 보상과 지원은 인색하고 '국민 개개인의 몫과 책임'을 강조하는 듯 하다. 대통령은 '착한 임대인'을 칭찬하고, 집권 여당 대표는 이익공유제를 실천할 '착한 기업인'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경제부총리는 재난지원금 확대와 자영업 손실 보전을 두고 머뭇거리며 '나라 곳간'만을 걱정하고 금융권 대출로 버텨 줄 것을 주문한다.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전시에 가까운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불특정한 선의에 기대는 것은 전시 체제의 사령관의 태도가 결코 아니다. 과감한 정책적 결단력과 행정 집행력으로 헤쳐나가야 할 상황이다. 국민들은 그에 합당한 권한을 이미 부여한 바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서 시행되었던 '집합금지'와 '영업제한'에 대한 손실보전은 입법과 행정에서 과감한 결단이 요구된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 이라며 주저하는 경제부총리에게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국민들을 믿고 가 보시라'고 권한다. 지금 국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손실보전 특별법이 쏟아지고 있다.

그 가운데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집합제한업종의 임대료·공과금·대출이자·위약금을 면제하는 이른바 '4-STOP'법이 가장 포괄적인 보상 조치로서 눈에 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K-양극화의 벼랑 끝으로 추락하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고통 분담이 아닌 고통이 가중되는 것은 막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겨울의 끝에서 대학 개강이 다가오지만 여전히 비대면 원격수업은 유지될 것이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초단기일자리조차 쫓겨나는 반면,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OECD 회원국 중 네 번째 최고액 수준이다. 정치권에서 반값등록금 공약이 쏟아진 지 10년이 되도록 책임지는 곳은 없다. 이러한 때에 학자금 빚으로 살아가는 50여 만 명의 대학생에게 반값등록금은 차치하고서라도, 한시적 '학자금리 0%' 조치는 한국장학재단과 협의를 통해 경제·교육 당국이 충분히 시행할 수 있는 대책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블루(우울)에서 레드(분노)에 이어 블랙(사고·사망)으로까지 확산되지 않도록 심리 방역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지난 1월 14일 정부는 '2차 정신건강복지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향후 5년간 2조원의 예산 투입을 결정하였다. 2020년 기준 보건예산 13조원 중 정신건강 예산이었던 2,000억원(1.6%)에 비하면 2배 증액되었으나, 세계보건기구(WHO) 권고기준인 5%에는 크게 못 미치는 실정이다.

한국사회는 여타 선진국에 비해 유독 '심리건강' 영역의 국가적,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매우 각박하고 보건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편이다.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산업재해와 같은 재난재해와 사회적 참사로 인한 고통과 상처가 만연한데도 공공영역의 트라우마센터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코로나 방역을 계기로 국민의 심리건강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권을 대폭 강화하고, 국공립 트라우마센터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경제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은 절대적 빈곤보다는 '상대적 박탈감'에 기인하는 바 크기 때문에 심리적 접근이 중요한 이유다.

'억불탑 성공 신화' 교훈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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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합니다' 서울시내 한 가게 앞 폐업 안내문. ⓒ 연합뉴스

  
K-방역과 K-양극화는 코로나 시대의 가파른 벼랑 길을 헤쳐나가야 하는 쌍두마차다. 세계 어떤 나라도 방역만으로 이 난국을 벗어날 수 없으며, 또한 경제의 고삐를 풀었다가는 코로나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야 말 것이다. 한국도 K-방역의 성공을 위해 불평등을 제물로 삼는다면 결코 방역 모범국의 지위를 자랑하지는 못할 것이다.

K-방역의 성공 신화가 그 옛날 '억불탑 신화'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1964년 11월 30일, 군사정부는 한국의 수출액 1억 달러 돌파를 기념하여 '수출의 날'을 지정하였고, 그로부터 10년 뒤 한 섬유 기업의 첫 1억달러 수출을 기념하여 '수출은 국력의 총화' 라는 친필휘호가 새겨진 '억불탑'을 하사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 '억불탑'의 이면에는 당시 저임금과 폐 질환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수출입국의 성공 신화를 위해 희생했던 여공들이 흘렸던 피눈물의 대가였다는 것을 말이다. K-방역 1년이 지난 지금, 잠시 숨을 고르고 성공 스토리에 담기지 못한 평범한 국민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기울여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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