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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보다 2천년 먼저 나온 경제학 교과서

[내가 쓴 '내 인생의 책'] 10화 <사마천 경제학>

등록 2021.03.08 10:42수정 2021.03.0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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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간 탁월한 경제학자, 사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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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이자 역사서 <사기> 저자인 사마천 ⓒ Wiki commons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이 살았던 진한(秦漢)시대의 통치자들은 농업이야말로 재부를 창조할 수 있으며, 교환은 결코 재부를 창조할 수 없다고 강변하였다. 그리하여 상인이란 단지 중간에서 불로소득을 차지하는 사람에 불과한 존재로서, 그러므로 이러한 상인들은 결국 전체 경제사회에 백해무익한 '독충(毒蟲)'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사마천은 상업이야말로 경제구조에 있어 가장 활발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역설하였다.
 
"농부의 농사를 기다려 양식을 얻어야 하고, 산택(山澤)을 관리하는 우인(虞人)이 각종 재료를 개발해내기를 기다려야 하며, 공인(工人)이 각종 재료를 완성품으로 만들어 내기를 기다려야 하고, 마지막으로 상인(商人)이 각종 물건을 무역하고 유통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사마천은 중국 역사에서, 아니 세계 역사에서 거의 최초로 상품경제의 특징을 체계적으로 고찰하였다. 나아가 그는 경제와 정치, 경제와 도덕 풍속의 관계라는 문제도 기술하여 생산의 발전, 교환의 확대 그리고 부국의 경제 이론을 정리해냈다. 경제문제를 고찰하고 기술함에 있어 그는 단지 고립적으로 경제 분야를 따로 떼어 연구하지 않고 경제를 정치, 사상, 법률, 도덕 등의 문제와 결합시켜 고찰하고 조사하여 종합적인 분석과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 토대는 다름 아닌 경제였고, 핵심 역시 경제로서 경제를 일체의 사회 문제를 평가하는 기본 척도로 삼았다.

애덤 스미스와 사마천

<국부론> 저자 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열정과 행위는 사회 전체의 이익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는 이러한 방향을 이끄는 것을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종국적으로는 공공복지에 기여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애덤 스미스보다 무려 2천 년 이전에 나온 동양의 고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사람들은 단지 자기 재능에 따라 역량을 극대화하여 자기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값이 저렴한 물건은 어떤 사람들이 나타나 값이 비싼 곳으로 그 물건을 가져가 팔려고 하고, 어느 한 곳에서 물건 값이 비싸게 되면 곧 어떤 사람들이 나타나 값이 저렴한 곳에서 물건을 들여오게 된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의 생업에 힘쓰고 자기 일에 즐겁게 종사하여 마치 물이 아래로 흘러가듯이 밤낮으로 정지하지 않으며 물건은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고 가서 찾지 않아도 백성들이 스스로 가지고 와서 무역을 한다. 이 어찌 '도(道)'와 자연의 효험이 아니라는 말인가?"
 
바로 사마천 <사기>의 '화식열전(貨殖列傳)' 편에 나오는 글이다. '화식(貨殖)'이란 '재산을 늘림' 혹은 '상공업의 경영'이라는 의미이다.

사마천을 단지 <사기>를 저술한 역사가로만 알기 쉽지만, 사실 그는 탁월한 경제학자이기도 했다. 이른바 '사농공상(士農工商)', 즉, 신분의 귀천이 선비-농민-공장(工匠)-상인의 순서로 간주되던 사상은 중국을 비롯하여 그 영향을 받은 동북아 사회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주류적 지위를 점해왔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낸 것이 다름 아닌 사마천의 <화식열전>이었다.

사마천의 충실한 계승자였던 덩샤오핑

사마천은 국가는 굳이 간섭을 강행할 필요가 없고 상인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생산과 교환을 하도록 인도해야 하며, 더구나 국가가 상인들과 이익을 다퉈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사회 발전에 있어서 공업과 상업 활동의 역할을 강조하였고 그것은 사회 발전의 필연이라고 인식하였으며, 상공업자의 이익 추구의 합리성과 합법성을 인정하였다. 그는 특히 물질재부의 점유량(占有量)이 최종적으로 인간 사회에서의 지위를 결정하며 경제의 발전은 국가의 흥망성쇠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경제 사상을 펼쳤다.

<화식열전>이야말로 장기적인 중농억상 정책의 억압 속에서도 인간 본성과 중국이 지니는 지대물박, 천혜의 상업 환경에 부응하여 이를 천재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백성들에게 상업 활동의 정당성을 확인해주고 누구든지 기회를 잡고 노력을 다해 부를 쌓을 수 있다고 '격려'했던 경제 바이블이었다.

사마천은 인간이 부를 추구하는 것을 불변의 진리로 파악했으며, 그것은 결국 객관적 경제규율의 '자연의 효험' 혹은 '도(道)'에 부합된다고 천명했다. "경제란 흘러가는 물처럼 유통의 과정"이라고 규정하는 대목에서는, 마치 그가 우리와 동시대 인물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그는 정당한 부의 추구 활동은 마땅히 어떠한 속박도 받지 않아야 하며, 모름지기 국가란 인간의 영리 추구활동에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재능에 따라 역량을 극대화하여 자기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역설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대 중국에서 문화대혁명과 인민공사라는 인위적 압제에서 벗어나 개혁개방을 주창했던 덩샤오핑은, 사마천 사상의 충실한 계승자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고전은 오늘을 밝히는 영원한 등불

하지만 사마천은 시장 만능주의자는 아니었다. 애덤 스미스는 흔히 시장 만능주의자로 간주되지만, 들여다보면 그는 오히려 일체의 독점과 특권을 반대하고 특권층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없애려고 노력했던 경제학자이기도 했다. 독점적 이익과 경제 집중을 반대했으며, 동시에 공공의 복지, 학교, 사회간접자본 등에 있어 국가의 역할을 대단히 중시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이른바 '경제 자유주의', 혹은 '경제 방임'이란 억압받는 사람을 위한 '경제 자유주의'인 것이었을 뿐, 결코 부자만을 위한 '경제 자유주의'가 아니었다.

이 지점에서도 사마천은 애덤 스미스와 궤를 같이 했다. 즉, 사마천은 국가 경제에 심각한 폐단과 문제점이 나타나게 될 경우, 국가가 나서 일정한 교화와 인도를 해야 한다는 '교회(敎誨)' 그리고 국가의 개입과 강제를 포함하는 '정제(整齊)'라는 국가의 조정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역시 고전은 오늘을 밝히는 영원한 등불이다.

필자가 사마천의 경제사상을 정리해 출간한 <사마천 경제학> 책은, 중국의 관련 논문을 비롯한 많은 문헌들을 조사·연구한 결과물이었다. 2012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필자가 중국 학술회의에 참석했을 때 어느 중국 학자에게 <사마천 경제학> 책에 대해 설명하자, 그는 사마천이 무슨 경제와 관련이 있느냐며 반문하였다.

그 정도로 중국에서도 소수의 전문가 외에는 사마천과 경제의 관계에 대해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당연히 중국에 그런 책도 거의 없다. 한 지인은 미국에 이 책을 출판해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지식과 지혜를 배우고 그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 그 역시 배우는 자(學者)의 보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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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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