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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뷰, 감탄사가 절로

[제주살이를 꿈꾸는 당신에게] 유쾌 상쾌 통쾌! 사라오름

등록 2021.07.04 11:23수정 2021.07.0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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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주살이 4년차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에 거셌던 제주 러시 현상은 다소 진정된 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제주 이주를 꿈꾸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제주 1년 살이 혹은 1달 살이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이 글은 동아일보 기자와 세종대 초빙교수를 지내고 은퇴한 후 제주로 이주한 한 개인의 일기이자 제주에서의 생활을 소재로 한 수필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제주도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제주의 자연환경,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한국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할 제주사회를 이해하는 데 유익한 읽을거리가 되길 기대한다.[기자말]
 

전망대에서 감상하는 멋진 풍경 제주 동부지역의 오름들과 멀리 서귀포 시내, 섶섬 지귀도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 황의봉

 
오늘 처음으로 사라오름을 다녀왔다.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뷰(view)였다. 사라오름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수림(樹林)과 멀리 서귀포 일대의 조망은 한마디로 유쾌 상쾌 통쾌! 조망이 뛰어나다는 유명한 오름들을 여러 곳 올라가봤지만 사라오름만큼 강렬한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해발 1300여m의 높은 위치에서 해발 0미터 서귀포 바다까지 직선으로 내리꽂히는 시선이 만들어내는 장관이다.

사라오름은 성판악 코스로 백록담을 향해 오르는 등산로의 중간지점을 지나야 나올 정도로 높은 곳에 있다. 그래서 보통의 오름에 비해 훨씬 등반하기가 힘들다. 왕복 4~5시간이나 걸리므로 그 명성에 비해 다녀온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오늘 이 난코스에 도전하기로 한 것은 전적으로 오랜 친구 L 덕분이다. 등산 마니아인 이 친구가 사라오름에 대해 최고의 찬사를 늘어놓으며 함께 가자고 강력히 권하는 바람에 의욕을 내본 것이다.


성판악 코스는 관음사 코스와 함께 백록담까지 올라갈 수 있는 유이(有二)한 길이다. 그만큼 등산객들이 많이 몰리는 곳인데, 돌이 많은 길이어서 힘이 더 든다. 시작부터 울퉁불퉁한 돌길과 나무 데크, 야자 매트 길이 반복되면서 밋밋하고 재미없는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1시간쯤 지나니 삼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해발 1000m 지점의 삼나무 군락지는 곧게 뻗은 나무들이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한겨울이면 삼나무에 눈이 쌓여 가지를 축축 늘어뜨린 모습이 북유럽의 은빛 설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는 게 친구의 설명이다. 이곳을 지나면서부터는 제주조릿대 군락이 더욱 극성스럽다.

삼나무 군락지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4.1km 지점에 속밭대피소가 나온다. 사라오름까지 가는 도중 유일한 화장실이 이곳에 있다. 여기서부터는 오르막길이 좀 더 가팔라지므로 필수 휴식처다. 이곳은 등산객들이 백록담까지 갈 건지 아니면 무리하지 않고 사라오름까지만 갔다 올지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한다.

속밭대피소에서 1.7km를 더 올라가니 사라오름 입구다. 여기서 백록담으로 가는 무리와 헤어져 왼쪽으로 난 등산로에 접어든다. 목적지까지는 600여m의 좁고 우거진 숲길이다. 경사도가 제법 가파르다 보니 나무 데크 손잡이를 잡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20분쯤 오르니 어느 순간 시야가 확 트인다. 백록담을 제외하면 한라산에서 가장 높은, 해발 1324m에 위치한 사라오름 산정 화구호. 갑자기 펼쳐진 호수의 장관에 너나 할 것 없이 감탄사를 연발한다. 한라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발밑을 내려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띈다는 사라오름 화구호에 마침내 도착한 것이다.
 

사라오름 화구호 백록담을 제외하고 한라산에서 가장 높은 해발 1324m에 위치한 호수로 오름분화구에 물을 담고 있는 9개 오름 가운데 하나다. ⓒ 황의봉

 
접시 모양의 호수는 둘레가 250m로 산딸나무 산개벚지나무 진달래와 야생화들이 밀집한 숲으로 둘러싸였다. 수면 가장자리에는 데크가 설치됐다. 백두산 천지에야 비할 바 아니지만 높은 산 속에 그윽하게 빛나는 호수에 다다르는 순간, 어느새 피로감이 신비감으로 바뀐다. 호수는 수심이 그리 깊어 보이지는 않는다. 가물 때는 바닥이 드러나 목장처럼 보이고, 물이 차면 작은 백록담을 연상케 한다. 노루들이 찾아와 뛰노는 모습도 목격된다고 한다.


이 산정 화구호를 천천이 감상하노라니 문외한의 눈에도 훌륭한 명당자리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이곳은 제주도 6대 음택혈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그래서인지 이 높은 호수 주변 숲속 곳곳에 산소가 자주 눈에 띈다.

사라오름은 제주도에 소재한 국가 명승 9군데 중 하나다. 오름으로서는 유일할 뿐 아니라 국가 명승 90호인 백록담보다도 앞선 83호에 올라 있다. 사라오름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라오름 산정호수처럼 분화구에 물을 담고 있는 오름은 모두 9개인데, 대부분 람사르습지협약에 등재돼 있거나, 자연휴식년제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 산정호수가 사랑받고 있는 현실적 이유이기도 하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비가 많이 내려 물이 불어난 이 호수에서 수영 하다가 사진을 찍혀 고발되는 바람에 과태료 물고 망신 당한 웃지 못할 사건도 일어났다.
 

사라오름 화구호에 설치된 데크 호수 주변을 둘러볼 수 있고, 전망대로 가는 통로이기도 하다. ⓒ 황의봉

 
데크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나니 동행친구 L이 전망대 경관이 볼 만하다며 가자고 앞장선다. 호수 가장자리에 길게 이어진 데크를 통과해 숲 사이로 난 오르막길을 헤치고 나가기를 10여 분 정도 지났을까, 곧 사라오름 전망대가 나온다. 널찍한 전망대에 오르니 호수에서와는 또 다른 감동이 밀려온다.

말 그대로 일망무제다. 흙붉은오름 성판악 논고오름 동수악 물영아리 등 제주 동부지역의 오름들이 보석처럼 박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 제주조릿대 군락 너머로는 저 멀리 서귀포 시내와 섶섬 지귀도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한라산 정상을 뒤에 엎고 내려다보는 이 사라오름에서의 파노라마는 다랑쉬나 큰노꼬메 정상의 조망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좀 더 멀고, 좀 더 깊고, 좀 더 시원하다.
 

사라오름 전망대의 한라산 조망안내 전망대에서 머리를 들어 뒤를 바라보면 한라산 정상부가 바라보인다. ⓒ 황의봉

 
전망용 망원경과 안내도가 설치돼 있어 지명을 확인해가면서 멋진 풍광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안개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한라산에서 흔히 겪는 날씨다. 앞이 안  보이니 아쉽지만 이번엔 또 다른 몽환의 세계를 경험한다. 시야를 뒤로 돌려 바라보니 한라산 정상부가 안개로 뒤덮여 더욱 신비스럽다.

사라오름 전망대는 경치도 뛰어나지만 면적이 넓어 휴식을 취하기에도 그만이다. 여러 팀들이 올라왔지만 넉넉하게 자리를 잡았다. 눈요기를 실컷 하고 나자 비로소 배고픔이 찾아왔다. 준비해온 점심을 먹고, 배낭을 베개 삼아 잠시 눈을 붙였다. 이 기막힌 명승지에 누워 낮잠을 즐기다니!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라오름 호수와 전망대의 감동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018.6)
#사라오름 #화구호 #국가명승 #사라오름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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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봄 제주로 이주했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 그리고 제주현대사의 아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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