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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산호를 사랑하게 하고 싶었어요"

[기후위기 최전선, 제주바다 인터뷰 ⑦] 함덕 바다를 기어 다니는 생태 예술가 정은혜 작가

등록 2022.05.01 11:21수정 2022.05.0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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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이 작년 가을과 올해 초, 제주 연안 조간대 전체를 직접 뒤져보았다. 물 빠진 조간대는 '하얀 바위' 말고는 생명체를 찾기 어려웠다. 톳, 모자반, 감태 등 바다 숲은 왜, 어디로 사라졌을까. 무엇 때문일까. 해조류의 실종과 제주바다의 오염은 '수온상승과 육상오염', 이 두 가지를 빼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육지와 지하수, 바다가 연쇄적으로 벼랑 끝 위기 상황이었다. 제주바다의 '원형'과 '지금'을 알고 싶었다. 서귀포 현지 선장, 제주 생활사 연구자, 조수웅덩이 다큐 감독, 해조류와 산호 전문가, 다이빙 마스터, 미세플라스틱 아티스트, 기후변화 환경운동가, 남방큰돌고래 기록자 등 10여 명의 증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통해 2030년, 2050년의 제주바다 모습을 상상하려고 한다. 임계점의 끝에서 마지막 숨을 까딱까딱 들이키는 바다에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다. '제주바다가 제주바다의 모습대로 온전히 존재하기를.' [기자말]
기후위기와 코로나 시대에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제주 해안가 모래밭을 기어 다니며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주워 만다라(자연의 순환을 나타내는 원형의 이미지)로 배치하고, 완성되면 해체하는 이가 있다.

사람들과 함께 바닷속 산호를 떠올리고 걱정하면서 자유로운 뜨개질로 산호를 재연하는 '산호뜨개' 작업도 한다. <치유적이고 창조적인 순간> <변화를 위한 그림일기> <싸움의 기술: 모든 싸움은 사랑이야기다>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제주 중산간 마을에 터를 잡고, 예술·치유·자연을 키워드로 종횡무진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는 정은혜 작가를 지난 3월 중순, 조천의 카페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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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작가 ⓒ 에코오롯

 
- 제주에서 미술치료사와 생태예술가로 활동 중이신데 어떤 계기로 이 직업을 선택하셨는지 궁금해요.
"가족과 캐나다로 이민 가서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냈어요. 그곳의 광활한 자연에서 한없이 작아지면서 동시에 한없이 커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고요. 캐나다에서 미술과 미술사를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뉴미디어 전문 미술관에서 기획자로 일했습니다.

2년 반쯤 일하다 첨단 기술을 이용한 소통 방식보다 좀 더 근원적인 치유와 소통의 길을 걷고 싶어서 미국으로 건너가 미술 치료를 공부했어요. 미국 공인 미술치료사가 되어 시카고의 정신병원과 청소년 치료센터에서 일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예술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았고, 예술의 힘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죠. 다시 한국에 돌아와 제주에 자리를 잡게 되었구요."

- 자연에서 한없이 작아지면서 동시에 한없이 커진 경험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이민자가 많은 공립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좋은 선생님들을 여럿 만났어요. 생활 속 우리 행동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게 한다든가, 직접 가르치기보다 경험을 통해 깨닫게 하는 방식으로요.

당시 교회 목사님 지도로 토론토 북쪽의 광활한 호수에 있는 섬에 카누를 타고 들어가서 3박 4일 캠핑을 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음식을 담당했던 누군가가 짐을 놓고 와서 섬에서는 약간의 간식 외엔 먹을 게 없었는데요. 배고픈 상황에서 날이 저물고, 그 깜깜하고 고요한 섬에서 하늘 가득 별과 그 별이 비친 호수 표면을 바라보자니 마치 제가 우주 속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감수성 예민한 시기여서인지 그 장면 속에서 나는 죽어야겠다고도 느꼈고요.

돌아보면 자연의 아름다움, 경외심, 숭고의 경험이었습니다. 나보다 절대적으로 큰 공간의 경험, 그 안에서 나는 아주 작은 존재이지만 또 그 웅장함을 닮은 큰 존재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랄까요. 이민 가서 언어가 잘 안 되고 소통이 어려웠던 시기에 그런 경험이 저에게 영향을 주었죠."

- 제주에서는 미술치료를 하다가 생태예술 분야의 작업도 하게 된 것인가요? 두 개의 작업이 어떻게 연결될까요?
"미술 치료할 때 내담자에게 집중해서 상담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저 자신이 힘들고 우울해지곤 했어요. 피곤함도 있었고요. 그럴 때마다 제주의 숲, 바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숨을 쉴 수 있었어요. 저를 충전하는 시간이었죠.

그러다 나중엔 내담자를 데리고 숲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문을 열고 숲으로 간다'라고 이름 붙이고, 자연에 들어가서 하는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가져간 물건을 숲에 남겨두지 않고, 숲속의 자연물을 가져가지 않는 규칙을 세워서요. 사람들이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미술치료라면, 생태예술은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하는 작업이고요. 겹치는 부분이 많아요."

- 통상 미술치료는 심리학과 연결될 텐데, 심리학에서는 닫혀 있는 내밀한 공간에서 개인적 차원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과정이지요? 그런 면에서 '문을 열고 숲으로 간다'는 작업은 미술 치료에 있어 관점의 전환을 담고 있는 듯하네요.  
"맞아요. 제가 배운 것은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는 작업인데, 실제 내담자를 만나 미술치료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면 안으로 계속해서 들어가는 방식은 끝이 없더라고요.

내담자들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삶을) 살지 않으려는 것도 있고요. 치료 중에는 진짜 삶을 살지 않고, 사람을 만나지 않고, 친구를 사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요. 하지만 그렇게 계속 내면 안으로 들어가고 분석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자연에 드는 것은 마음의 문제를 안으로 파고들어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문제의 크기가 달라지는' 경험이에요. 내 마음에 문제가 생겼고 상처가 있고 아플 수 있지만, 웃을 수 있고 살 수 있다는 깨달음이요. 함께 할 수 있다는 열림이지요. 자연에 들어 나의 문제를 바라보면 나라는 인간이 겪는 고통이 전 지구적 맥락에서는 별게 아니라는 인식이 듭니다. 이해하고 파악하고 분석하는 게 아니라 열리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깨달았어요."

바닷가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줍기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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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플라스틱 쓰레기 ⓒ 에코오롯


- 사람들과 바닷가에서 플라스틱 조각을 줍고 분류해서 만다라로 만드는 '플라스틱 만다라'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제주에 살고 바다에 자주 가니 모래사장에 쓰레기가 있고,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그래서 줍기 시작했어요. 미술치료 작업 중에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자연의 순환을 이야기하며 거대한 만다라를 그리는 프로그램은 이미 있었고요.

그래서 바다에서 주워온 플라스틱 조각들로 만다라를 만들어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친구들의 지지가 아니었으면 하지 못했을 거예요. 플라스틱 조각을 이리저리 배치해 만다라를 만드는 작업을 할까, 라는 제 말에 누워서 듣고 있던 친구가 벌떡 일어나며 '정말 좋은 아이디어야'라고 했고, 다른 친구들도 비슷한 반응이었고요."

- '플라스틱 만다라' 전시회(국제생태미술전, 제주현대미술관 2019)에서 '바다에게 사과문 쓰기' 같은 관객 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게 기억에 남는데요. '사죄와 축복의 생태예술'이라는 부제와 플라스틱 만다라 작업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플라스틱 만다라 작업은 티베트 불교의 모래 만다라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원래 불교 용어인 '만다라'는 자연의 순환, 조화를 나타내는 원형의 이미지를 의미하는데, 티베트 스님들은 며칠 또는 몇 주에 걸쳐 색 모래로 만다라를 만들고 완성되면 그 모래를 다 쓸어 모아요.

완성되자마자 해체된 그 만다라 모래를 가까운 강이나 바다에 가서 흘려보냅니다. 만다라를 만들며 읊조린 축복의 메시지가 지구의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닿기를 바라는 기도와 함께요. 

'플라스틱 만다라'는 우리가 플라스틱 문명에 살면서 바다로 내보낸 고통을 거두어들인다는 의미가 있어요. 온 바다를 떠돌다가 제주 바닷가로 밀려온 플라스틱 조각을 모래밭을 기어 다니며 하나하나 줍는 거지요. 자연 앞에 낮게 엎드려 나와 바다의 연결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바다와 바다 생명에게 애도와 사죄를 보내는 기도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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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과 바닷가에서 주운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을 만다라로 배치한다 ⓒ 에코오롯

 
-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제주 함덕 서우봉 해변에서 플라스틱을 함께 줍자고 공지를 올리신 걸 봤어요. 플라스틱 수거 작업을 할 때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주로 수거 작업을 하는 서우봉 해변의 특징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모래밭에서 색색의 반짝이는 플라스틱을 주울 때, 줍는 그 순간 첫 마음은 예쁘다는 감각이에요. 모래사장 속 알록달록한 색깔, 바다에 마모된 동글동글한 알갱이들을 보며 드는 감정은 복합적입니다. 이것이 바닷속 생명들에게 죽음을 일으킨다는 인식도 동시에 들고요. 편리함에 더해 예쁘다는 감각이 플라스틱 문명을 확장시킨다는 생각도 했어요. 

제주 해변에서 개구리알처럼 생긴 플라스틱 알갱이를 주워 무엇인지 검색하다가 너들(nurdle,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을 알게 됐어요.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려고 공장에서 5mm 이하로 가공한 플라스틱 원료 구슬이에요.

제주에서 이 너들이 제일 많이 보이는 곳이 바로 함덕 서우봉 바다입니다. 제주 전 지역 해안가를 다녔는데 서우봉 해변만큼 많지는 않았어요. 같은 곳에 오래가다 보니 변화상이 눈에 보여요. 작년 후반부터는 너들이 2배 이상 늘었어요. 2021년 스리랑카 선박사고 때 유실된 것일까, 추측만 하고 있어요. 검은 돌알갱이 같이 검게 탄 플라스틱 알갱이도 많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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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만다라 (2022년) ⓒ 에코오롯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할 수 있을까

- 예술·치유·자연을 키워드로 사람들이 작업 과정 전반에 참여해서 함께 한다는 게 참 인상적입니다. 제주 산호를 재연한 '산호뜨개' 워크숍도 오래 진행하셨죠? 그 과정과 참가자 반응은 어떠했나요.  
"제주와 전국을 다니면서 2018년 8월부터 2019년 8월까지 총 547명의 참가자들이 소모임과 워크숍에 참여했어요. 4회의 전시가 있었고, 100여 회의 워크숍과 산호뜨개 모임을 열었습니다.

산호뜨개는 산호를 보고 영감을 받아 뜨개질을 하는 방식인데,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산호처럼 산호뜨개 역시 정해진 형태나 규칙이나 도안이 없어요. 가장 자유로운 형식의 뜨개질인데, 사람들은 용도가 있는 뜨개질을 주로 해왔기에 도안 없이 자유로운 산호뜨개를 어려워했어요.

그래서 평생 뜨개질을 해 오신 저희 어머니 김순덕 여사님께서 첫 시작을 해주셨어요. 어머니는 바다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와 함께 바다 스노클링을 하며 본 바닷속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계셔서, 샘플이 되는 산호뜨개 작품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참가자분들도 원칙과 답이 없다는 것에 대한 마음의 벽을 넘으면, 그 후론 너무 신나고 재밌어하셨어요. 실패하고 낙담했던 경험이 치유되는 시간이었다고 말씀해 주신 분들도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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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바닷속 산호를 생각하며 사람들과 '산호뜨개' 작업을 하다 ⓒ 에코오롯

 
- 그래도 산호뜨개에는 기술이 필요하지 않나요? 산호뜨개에 사용한 뜨개 기술은 무엇인가요. 
"뜨개질은 코바늘 뜨개와 대바늘 뜨개로 나뉘어요. 대바늘 뜨개는 두 개의 막대기로 뜨는 방식인데, 한 줄 한 줄씩 뜨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코를 하나 빠뜨리면 한 줄을 다 풀어야 하지요.

그런데 코바늘 뜨개는 코바늘 하나를 가지고 한 코 한 코씩을 뜨는 작업입니다. 이 차이는 어마어마합니다. 한 코씩 뜨는 것이기 때문에, 코를 늘리거나 줄이고, 짜는 방향을 바꾸거나, 코를 빼먹거나, 여러 사람이 동시에 뜨는 것이 다 가능하며 원형으로 뜨는 것이 가장 편한 방식입니다.

보통 코 수를 세면서 뜨개질을 하는 이유가 꼬불꼬불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데, 산호뜨개는 꼬불꼬불하게 뜨는 것이기 때문에 코를 셀 필요도 없고,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고, 어디서든 끝낼 수 있어요. 막 뜨다가 보면 꼬불꼬불한 맨드라미 꽃 같기도 하고 아름다운 연산호 같기도 한 산호뜨개가 만들어집니다."

- 산호뜨개 결과물로 전시회를 열었고, 올해도 전시 계획이 있으시다고요. 이 전시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산호뜨개로 전시를 하면서 우리가 가졌던 질문은 '어떻게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하게 할까?'예요. 우리는 보이는 것, 자주 보는 것을 사랑하고요. 사랑해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제주바다의 산호를 보호하자고 직접 말하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보이지 않는 산호를 사랑하게 하고 싶었어요. 산호뜨개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산호가 궁금해집니다. 산호 사진을 찾아보고 산호의 형태를 자세히 보다 보면 산호의 생태계, 산호가 함께 사는 방식들이 보입니다. 한 코 한 코 산호를 생각하면서,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로 마음의 길을 내고자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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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제주_우리 시대에 프로젝트 제주_우리 시대에 2021년 10월 12일 - 2022년 1월 9일 제주도립미술관 ⓒ 제주도립미술관

 
- '플라스틱 만다라', '산호뜨개' 작업은 둘 다 여러 사람이 작업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작가 혼자 창작하는 방식과 다른 특성은 무엇일까요? 
"'플라스틱 만다라', '산호뜨개'처럼 점점이 모이고 배치되고 흩어지는 과정의 작업은 공공 예술(커뮤니티 아트, 공동체 기반의 예술이나 활동) 성격이 강하지요. 커뮤니티 아트는 하나의 장르로 정리되지 않은 면도 있고, 60년대에 활발하다 지금은 다소 유행이 지나기도 했어요.

'산호뜨개'의 경우, 나 혼자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니까, 이만큼 혹은 저만큼까지 누군가 했다고 경계를 따지기가 불가능하고요. 미술사에서 말하는 '오리지널리티'가 애매합니다. '플라스틱 만다라' 역시 배치했다가 해체하는 거라 판매 불가하고 영속성도 없어요."

기후위기 시대, 예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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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뜨개질, 산호뜨개 워크숍 ⓒ 에코오롯


- 여러 사람들과 작업하기 때문에 즐거움도 있겠지만,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수고로움도 있을 텐데 이런 작업을 꾸준히 하시는 이유나 동기는 무엇인지요? 
"'산호뜨개'를 한다고 산호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플라스틱 만다라'를 한다고 플라스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 왜 이런 작업을 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아요.

산호는 바닷속에 있어 눈에 보이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접 산호를 본 적도 없죠. 다들 산호를 보러 물속에 들어가서도 안 되고요. 숫자와 통계로 이야기하는 산호의 가치는 우리를 움직이게 하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공감'을 만들어 내는 것은 구체적인 것이죠. 전쟁의 피해를 나타낸 통계보다 난리통 속 아이의 사진이 우리 마음을 움직이게 하듯이요.

뜨개 작업을 통해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마음을 움직이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게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관계망을 만드는 작업이에요. '플라스틱 만다라'도 동일해요. 감정적 공감을 발동하게 돕는 거예요. 예술은 상상하게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하게 하니까요. 예술이 수만 년 전부터 해왔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그것과 관계 맺는 방식입니다. 저에게 창작은 마음을 연결하는 행위이며, 그것을 위해 그림을 그릴 때도 있고, 뜨개질을 할 때도 있고, 모래밭의 미세 플라스틱을 모으기도 하고, 상상 속 바이러스를 그리기도 합니다. 저에게 예술은 예술 작품이 아니라, 예술이 일으키고, 연결하고, 승화하는 마음의 온갖 작용이 발동하는 순간들입니다.

말로 할 수 있는 것은 말로 하라고 해요. 미술치료에서도요. 그게 가장 경제적이니까요. 예술은 말할 수 없는 것,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내게 하는 작업이에요. 기후변화로 인해 바다 생명이 아파하는 걸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자연의 파괴에 눈물 흘릴 수 있게 하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 기후위기 시대, 예술의 역할에 대해 듣다 보니 정은혜 작가님이 심리치료에 대한 책을 쓰고, 미술치료를 하고, '플라스틱 만다라' 같은 작업을 하는 게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겉으로 드러나는 활동은 각기 다르지만 사실 저는 똑같다고 느껴요. 심리치료에서 고통은 굉장히 중요한 주제인데, 자신의 고통을 직시할 수 없다면, 진짜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심리치료의 목표가 고통의 문을 통과해서 이해와 성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면, '플라스틱 만다라'는 우리가 초래한 고통 앞에서 눈을 돌리는 대신 그 고통을 마주하면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통로를 만들려는 행위예요.

그런 면에서 내면을 치료하는 것이나 우리가 자연에게 행한 파괴적인 관계를 치료하는 것 모두 처음 만나는 감정은 '고통'일 거예요. 예술은 고통의 뜨거움에 데이지 않고, 이것을 끌어안을 수 있게 돕지요. 그것이 미술로 고통을 승화하는 미술치료의 원리이기도 하고요."

- 마지막으로 단체 '에코오롯'의 대표를 맡고 계신데, 어떤 곳인지 소개해 주세요.
"'에코 오롯'은 환경운동가이자 저자인 친구, 예술가이자 치료사인 제가 만나서 만든 비영리단체입니다. 지금은 예술로 하는 환경운동에 좀 더 포커스를 두고 활동하고 있어요. 저희는 사람과 자연이 모자람 없이 온전히 더불어 살아가는 오롯한 세상을 위해 노래하고 글 쓰고 그리고 목소리를 내고 행동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예술 활동을 하고자 하구요."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신수연 녹색연합 해양생태팀장이며 이 글은 녹색연합 홈페이지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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