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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세로 어머니 소천하시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 57] 함세웅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라 불렀다

등록 2022.06.02 15:26수정 2022.06.0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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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가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의 자유무역 파괴-경제침략 아베정권 규탄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 이희훈

 
제기동성당 주임신부로 일하던 2007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향년 98세로 장수하셨지만 불운한 삶이었다. 한국전쟁 때 두 아들을 앞세우고 젊어서 남편과 사별하면서 외롭게 사셨다. 외아들이 된 함세웅의 긴 유학생활, 두 차례의 투옥과 그치지 않는 정보기관의 감시 그리고 사제생활은 어머니에게는 여느 가정과 같은 살뜰한 삶이 못되었다. 

아들이 교구와 신학교에 있었을 때는 줄곧 떨어져 원효로에 홀로 지냈다. 노후에는 우울증에 걸려 고생을 하였다. 함세웅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라 불렀다. 자신의 어머니도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었다. 늙어서 며느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손주들을 안아보지도 못하셨다.

사제들은 대체로 자신의 가족사에 관해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함세웅 역시 다르지 않는 편이다. 예외인지, 어머니 관련 글이 몇 대목이 있다. 예수의 어머니에 대해 쓴 글에서다. 좀 길지만 흔치 않는 어머니 관련 내용이라 소개한다.  

나는 여기서 나의 어머니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나는 외아들이다. 처음에 내가 신학교에 가겠다고 어머니에게 말씀드렸을 때에 어머니는 억지로 허락하였다. 그리고 틀림없이 내가 중도에서 길을 바꿀 것이라고 믿고 또한 기대하고, 있었다. 몇 년의 신학교 생활 뒤에 나는 군복무를 마치고 또 학업을 계속했다. 그런데 어느 방학 때에 어머니는 옆집의 할머니 이야기를 하며, 그 할머니는 아들이 장가를 들어 손자를 보았는데 그 귀염둥이 손자를 안고 기뻐하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재빠르게 화제를 바꾸며 어머니의 고독한 마음을 달래드리곤 했다.

그런데 성직에 첫발을 내딛는 삭발례의 예식일이 다가왔다. 예절이 끝난 뒤 나는 수단 (사제들이 입는 검은 색의 긴 옷 : 司祭服)을 입고 기념 촬영을 하며 어머니를 따로 뵈올 수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미사 동안 울면서 기도를 바치셨다는 말씀과 함께, 다음과 같은 당부를 들려 주셨다. 

"그래, 남자가 한 번 택한 길, 변함이 있어서야 되겠느냐? 오늘부터는 다른 걱정이 생겼다. 네가 중도에서 길을 바꿀까 봐 걱정이 되는구나. 네가 택한 그 사제의 길을 충실히 걷도록 내가 기도하마!" 그래서 나는 감격스러운 기쁨을 맛보았다.

로마 유학 때의 일이다. 이때는 편지가 가장 반가웠고 특히 어머니의 편지는 꿈을 키워주는 원천이기도 했다. 당시에 나는 담배를 피웠었다. 어머니는 가끔 고추장과 아리랑 담배를 보내주셨다. 그런데 그 담배와 함께 편지가 한 장 끼어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담배는 해로우니 가능하면 피우지 말고 끊으라는 당부였다. 담배를 끊으라 당부하면서 담배를 부쳐주는 엄마의 마음, 이것이 바로 사랑의 모순인가 보다. 이것은 아마도 동양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정감(情感)의 세계일 것이다. 그리고 편지 끝에는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는 복숭아가 좋다니 가능한 한 복숭아를 많이 먹도록 하라고 또 당부를 하셨다. 나는 담배와 그 편지를 들고 많은 것을 생각했다.

엄마의 마음, 그것은 논리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그 무엇이다. 사랑만이 지닌 모순이라고 할까, 위대함이라고 할까. 엄마의 마음, 그것은 자녀에게 가장 귀중한 영원한 선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자식을 길들일 수 있는 가장 큰 권위 있는 교훈인 것이다. (주석 14)

함세웅의 이 글은 군사독재의 폭압기 민주화 과정에서 아들ㆍ딸의 생명을 빼앗기거나 철창 속으로 보내고, 고통 속에 신음하는 수많은 어머니들의 아픔을 공유하는 내용일 터다. 이어지는 대목은 자신을 포함, 정의의 사도들이 결코 '불효자'가 아님을 설파한다. 

예수는 불효자(不孝子)였을까? 그렇지 않다. 기구한 운명의 여인을 엄마로 둔 예수가 결코 불효자일 수는 없다. 예수는 시대를 위한 인물이다. 그와 같이 마리아도 시대의 어머니인 것이다. 시대의 어머니가 되기 위하여 예수는 개인이 아니다. 그는 마리아 개인의 아들이어서는 안 된다. 예수는 이것을 익히 알고 자기 어머니 마리아를 객관의 대상으로 삼는다. 예수는 여기서 진실 된 모성, 시대의 어머니, 인류의 어머니가 되기 위한 내적 가치 즉 그 영성성(靈性性)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주석 15)    


주석
14> 함세웅, <어머니와 마리아>, <고난의 땅 거룩한 땅>, 209~210쪽.
15> 앞의 책, 207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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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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