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앞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내외국인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권우성
나의 삶을 통째로 바꿨던 세월호 참사, 이와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에선 탑승객 모두를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해경의 구조 방기로 304명이 희생됐다. 이태원 참사 또한, 사고 당일 오후 6시 34분께부터 시민들이 경찰에 도움을 청했지만 적정한 조치가 없어 무고한 청춘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다른 점을 찾을 수가 없다. "살려주세요, 배가 침몰하고 있어요"라고 했던 것이나 "압사당할 것 같다, 빨리 통제 좀 해달라"고 애원했던 것도 전혀 다르지 않았다.
정부의 대응은 또 어떠한가? 정부는 희생자 신원이 모두 파악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신속한 사고 수습보다는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고개를 숙이며 입으로는 애도를 말했지만, 자리만 바뀌면 '우리는 최선을 다했으며, 할 만큼 했다'고 변명했다.
112신고 전화 통화 녹취록이 공개될 때까지 시간을 질질 끌며 공식적인 사과를 미루는 것까지도 역시도 세월호 참사 대응과 닮은 꼴이었다(참고로 박근혜씨는 참사 발생 한 달이 지난 2014년 5월 19일이 돼서야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악어의 눈물을 흘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과를 했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세월호 참사 때처럼 '피해자들이 가지 말아야 할 장소에 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본질을 변질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심지어 정부에게 쏟아질 비난을 방어하기 위해 유병언 같은 희생양을 만들어 국민의 시선을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다시 국정원과 국군방첩사령부(옛 국군기무사령부), 정보 경찰을 활용하여 유가족을 사찰 또는 미행하면서 불법 정보를 수집해 정권 유지 계획을 수립할 수도 있고, 일베 이용자나 보수 관변단체 등을 동원하여 SNS와 대규모 집회를 통해 유가족을 욕보이고 조롱할 수도 있다.
'(압사 참사 당시 시민들을 밀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토끼 머리띠 남성들을 수사기관이 추적하고 있다'는 소식이나, '경찰청이 이태원 참사 이틀 뒤 시민단체와 언론, 여론 동향을 수집해 정리했다'(11월 1일 SBS 보도)는 등의 뉴스가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이미 이런 흐름은 '진행 중'이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다.
국가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최악의 참사는 왜 발생한 것이며, 과연 예방은 불가능했을까?
세월호 참사와 달리 전문가들이 말하는 이태원 참사의 발생 원인과 예방 대책은 의외로 단순하다.
전문가들은 사고 당시 ▲ 이태원 메인도로 통제 ▲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을 지나는 열차 무정차 통과 ▲폴리스 라인 설치와 일방통행로 지정 ▲집회 참가자 동선 통제 ▲질서유지를 위한 경찰 안전요원 배치 등의 조치를 취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모두 과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대규모 행사 때 일부 취했던 조치였고, 참사 당일에도 손쉽게 할 수 있는 조치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참사에서 이 단순한 조치는 없었다. 용산구청은 지난 10월 26일과 27일 관련 회의는 개최했지만, 정작 '대규모 인원 밀집에 대비한 안전 대책'은 수립하지 않았다. 사고 당일 오후 6시 34분께부터 시민들은 112신고 전화로 "압사당할 것 같다"는 내용을 포함해 총 11차례 신고했지만, 경찰은 합리적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행안부장관 이상민은 참사 초기 "그전과 비교할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었다",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얘기가 있는데 통상과 달리 소방, 경찰 인력을 미리 배치하는 걸로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걸로 파악하고 있다"는 등 날마다 새로운 망발을 쏟아 냈다.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음에도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했고, 대통령실은 오히려 이상민 장관을 옹호했다.
사후 조치도 상식과 수준 이하였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비상대책위원장 정진석은 "지금은 추궁의 시간이라기보다는 추모의 시간, 슬픔을 나누고 기도해야 할 시간"이란 명분으로 추모를 제외한 책임 논쟁은 회피했다. 대통령도 "함께 슬퍼하고 위로해야 할 국가의 애도 기간"이란 이유로 출근길 문답을 중단하면서 곤란한 질문은 아예 피했다.
반면 정부는 '참사와 희생자, 피해자'란 용어 사용 대신 '사고와 사망자, 부상자'로 부를 것을 강요했다. 합동 분향소엔 영정과 위패는 생략하고, 심지어 '글자 없는 검은색 리본을 착용하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