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규칙 변경, 이렇게 해야 합니다

사용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노동자의 의사 반영해야

등록 2023.02.22 10:20수정 2023.02.2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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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의 전제, 노동자의 집단적 의사결정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규율하는 가장 기본적인 문서는 근로계약서이다. 근로기준법 제 17조에 따라 근로계약서는 임금, 소정근로시간 등 필수 기재사항을 명시하여 작성되어야 하며,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조건을 확인할 수 있도록 반드시 교부되어야 한다.

노동조건을 정한 기초적인 문서이기에 노동자는 근로계약서를 기준으로 자신의 노동조건을 이해한다. 임금, 근로시간, 휴일, 휴가와 같은 나의 노동조건이 온전히 계약서에 따라 이행되리라는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약 이외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주는 숨겨진 문서들이 존재한다. 취업규칙은 근로계약과는 별개로 근로자의 노동조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문서이다. 근로계약 이상으로 구체적인 노동조건을 정할 수 있는 것이 취업규칙이다.

근로계약서와 취업규칙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작성 권한이다. 근로계약서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상호 협의하여 작성한다. 사용자가 작성한 근로계약서를 노동자가 거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본질적으로 근로계약서는 노사가 노동조건을 교섭하여 공동 작성할 수 있다. 반면 취업규칙은 사용자만이 작성 권한을 갖는다. 사용자의 인사권 행사로 보기 때문이다. 대법원 역시 취업규칙의 작성·변경에 관한 권한은 원칙적으로 사용자에게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노동부도 같은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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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시 ‘근로자 과반수 동의’라는 요건은 노사가 자주적이고 대등한 지위에서 노동자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집단 의사가 있을 때 성립된다. ⓒ pixabay

 
다만, 전체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경우 근로기준법 제94조에 따라 사용자는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만약 노동자 과반 이상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다면 해당 노동조합의 동의가 필요하다.

현행법상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시 노동자의 동의를 얻는 방법이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판례에 따르면 노동자의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에 따라 동의를 얻어야 한다.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이란 회의 방식에 의한 동의를 의미한다. 즉,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시 노동자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사용자 측의 개입이나 간섭이 배제된 상태에서 노동자 간 의견을 교환하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취업규칙의 변경에 의하여 기존의 근로조건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종전 근로조건 또는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고 있던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의한 동의를 요하고, 이러한 동의를 얻지 못한 취업규칙의 변경은 효력이 없으며, 그 동의의 방법은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들의 회의 방식에 의한 과반수의 동의를 요하고, 회의 방식에 의한 동의라 함은 사업 또는 한 사업장의 기구별 또는 단위 부서별로 사용자 측의 개입이나 간섭이 배제된 상태에서 근로자 간에 의견을 교환하여 찬반을 집약한 후 이를 전체적으로 취합하는 방식도 허용된다. 여기서 사용자 측의 개입이나 간섭이라 함은 사용자 측이 근로자들의 자율적이고 집단적인 의사결정을 저해할 정도로 명시 또는 묵시적인 방법으로 동의를 강요하는 경우를 의미하고 사용자 측이 단지 변경될 취업규칙의 내용을 근로자들에 게 설명하고 홍보하는 데 그친 경우에는 사용자 측의 부당한 개입이나 간섭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 (대법원 2010.1.28. 선고 2009다32362 판결)"

사용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노동자의 집단 의사가 반영되어야


그러나 많은 노동 현장에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과 관련하여 노동자의 민주적 의사결정이 타진되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노동자에게 취업규칙 변경안에 대한 정보가 구체적으로 제공되지 않는다. 적어도 노동자 간 토론이 이루어지려면 취업규칙 변경안의 내용, 변경에 따른 효과 등이 제대로 안내되어야 한다.

그러나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할수록 그 내용은 모호하고 어렵게 설명된다. 취업규칙 변경안 설명 방식도 매우 소극적일 가능성이 크다. 취업규칙상 변경되는 내용이 무엇인지, 어떤 효과를 미치는지 파악할 수 없다면 개진할 의견도 없다. 이러한 정보의 불균형으로 회의 자체가 불가한 상황이 펼쳐진다.

둘째, 노동자 간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이나 적절한 수단이 마련되지 않는다. 대체로 취업규칙의 개정은 사측의 필요로 급박하게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주객이 전도되어 변경될 취업규칙을 적용받게 될 당사자들에게 주어지는 생각할 시간은 적다.

노동자들은 사측이 부여한 짧은 기간 내에 향후 노동조건을 좌우할 취업규칙 안에 대한 동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의견을 나눌 수단 또한 마땅치 않다. 개정안에 대한 회의는 고사하고 개별 노동자의 의견 개진조차 어렵다. 그렇다 보니 회사에 충성도가 높은 중간관리자 선에서 의사 교환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얼렁뚱땅 취업규칙이 개정되면, 당사자들은 불리한 취업규칙 규정이 효과를 발휘하고 나서야 근로계약서만으로는 자신의 노동조건을 지킬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취업규칙은 이미 개정되었고, 개정된 취업규칙의 효력을 부인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시 '근로자 과반수 동의'라는 요건은 노사가 자주적이고 대등한 지위에서 노동자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집단 의사가 있을 때 성립된다. 집단적 의사가 대등하게 결정되었는지는 동의를 획득하는 과정의 실질을 파악해야 한다. 적어도 노동자들에게 노동조건이 불이익하게 변경되는 정도, 불이익하게 변경하려는 내용이 개별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 사용자 측이 변경을 추진하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또한 그러한 사정을 바탕으로 노동자들이 사용자 측 영향력이 배제된 상태에서 상호 의견교환이나 토론 등 집단적인 논의를 거쳐 취업규칙 변경을 수용하였는지, 취업규칙 변경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있는 기회를 실질적으로 보장받았는지 판단해야 한다.1)

근로기준법 제4조에 따르면 근로조건은 노사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임에도 노동조건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원칙은 쉽게 무너진다. 근로계약의 당사자로서 노동자가 대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원칙을 준수하려는 사용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1) 서울고등법원 2022. 10. 12. 선고 2022나2004418(본소), 2022나2004425(반소) 판결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임혜인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으로 공인노무사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에도 실립니다.
#취업규칙_불이익_변경 #근로자_대표 #근로자_과반수 #노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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