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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패치 붙이고 점거농성... 그래도 박수받는 동덕여대생들

[현장] 학내 내리막길 사망사고에 "몇년 전부터 지적했지만"... 교육부 종합감사 서명운동 시작

등록 2023.06.23 17:52수정 2023.06.23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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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사고 우려가 높았던 동덕여대 교내 가파른 비탈길에서 지난 6월 5일 쓰레기 수거차에 한 학생이 치여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후, 학생들이 김명애 총장과 조원영 이사장 사퇴를 요구하며 10일째 서울 성북구 학교 본관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23일 오후 본관에서 농성중인 학생들이 향후 일정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안타까운 마음에 잠시 들러 가시는 길에 인사를 해야할 것 같았습니다. 못다 핀 꿈 그곳에서 꼭 이루소서...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겠습니다."

분향소 테이블 위 국화꽃 사이로 딸기맛 과자와 함께 누군가 놓고 간 작은 메모지 하나가 붙어 있었다. 서울 동덕여대(총장 김명애) 아동학과 재학생 양아무개씨(21)가 지난 5일 1교시 수업을 듣기 위해 등교하다 학교 안 급경사 내리막길에서 쓰레기수거용 1톤 트럭에 치여 목숨을 잃은 지 18일째인 23일.

여름방학이 시작된 교내는 한산했지만, 사고 현장과 학교 본관 앞 등 추모 공간 곳곳에는 고인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글들이 줄지어 있었다. 기말고사 기간이던 지난 12일에는 학생회 추산 1500명의 학생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동덕여대 학생수는 8천여명 정도인데 다섯 명 중 한 명이 참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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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현장에 고인을 추모하는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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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덕여대 설립자 동상과 차단기 등 교내 곳곳에 학생들의 심정을 담은 대자보가 붙어 있다. ⓒ 권우성

 
"성실하게 1교시 들으러 가던 중 사고... 막을 수 있었다" 

"#조용히 살지 않을게"
"동덕에서 피어나라더니 피기도 전에 꺾였다"
"학생의견 묵살하더니 살인났다"


학생들의 분노가 담긴 메시지는 학교 출입구부터 설립자 동상, 주차 차단기, 사고가 발생한 현장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붙어있었다. 

안전 대책 마련과 총장 퇴진을 요구하며 학교본관 농성을 11일째 이어가고 있는 동덕여대 총학생회는 이날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설 안전에 학교 예산이 제대로 사용됐는지 등을 살펴보기 위한 교육부 종합감사를 위해 범국민 서명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동덕여대 캐릭터인 '솜솜이' 인형을 가방에 매달고 기자회견장에 온 한 학생은 "꺼질 불꽃이면 켜지지도 않았다"는 손팻말을 들고 섰다.   

김서원 총학생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성실하게 1교시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오다가 사고가 났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고였다. 있어선 안 되는 사고였고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면서 "동덕여대 구성원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과 연대하기 위해 전국 서명 운동을 시행하고 이를 교육부, 국회에 (서명을) 전달해 종합감사 실시를 요청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성명문에서 "6~7년 전부터 경사로 사고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지만 (학교 측은) 묵묵부답이었다"면서 "예견된 사고로,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무시해 발생한 사고인데도 총장은 책임 다 한다는 말만 하고 구체적인 대안은 내놓지 않아 구성원들의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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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과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동덕여대 학생들의 대학 본관 점거농성이 10일째를 맞이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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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점거농성이 진행중인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본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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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2층 총장실 입구가 대자보로 뒤덮여 있다. ⓒ 권우성

 
모기와 싸우며 학교에서 침낭 덮는 이유 "더 안전한 학교 위해"

"짝짝짝!"

기자회견 마무리께 박수소리가 본관 맞은편 계단에서 새어 나왔다.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던 학내 교수들이 보낸 지지였다. 학생들이 점거 중인 본관 안에는 학생들은 물론 교수, 졸업생들이 보낸 물품들로 가득했다. 손소독제부터 감기약, 물 등이 차곡차곡 정리돼 있었다. 학생회 측에 따르면 일부 미화 노동자들은 밤샘 농성을 이어가는 학생들에게 주먹밥과 김치볶음밥 등 먹을거리를 만들어 보냈다.   

학생들은 본관 1층 바닥에 은박 돗자리 위에 자리를 깔고 침낭과 이불로 밤샘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농성장 안에선 여름철 급증한 벌레들과 씨름하느라 잠시 소란이 일기도 했다. 옷 위에 모기 퇴치 스티커를 붙이고 침낭을 개고 있던 한 1학년 재학생은 "이틀째 있었다. 이전에는 수업 끝나고 매일 왔다"면서 "사람이 없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사고 현장 주변으로) 수업을 들으러 올라갈 때 (길이 가팔라서) 이렇게 발목이 꺾일 정도였다. 저러다 사고가 날 수 있다는 목소리가 과거에도 있었다"면서 "월요일에 사고가 났는데, 사고가 난 줄도 몰랐다. 수요일에 돌아가시고 나서 알게 됐다. 학교에서 공지를 제대로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가지로 화가 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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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계단과 철제 펜스가 설치되어 있는 사고 현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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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길 아래쪽에서 바라본 사고 현장의 모습. ⓒ 권우성

  
주하나 부총학생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학교 측과의) 2차 면담에선 결국 사고 해결을 다한 이후에 (총장이) 거취를 고민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면서 "(종합감사를 통해) 사고와 관련해 동덕여대의 시설 안전 정비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트럭운전사) 고용 과정에 비리가 없었는지 확인하려 한다"고 전했다. 

학교 측과 총학생회 측에 따르면, 대학본부 측은 학생 측과 학교 측 각각 동률의 위원으로 꾸려진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학생 측에 제안한 상황이다. 동덕여대 홍보실 관계자는 "학생들이 원하는 바를 잘 듣고 반영하도록 소통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안전 #동덕여대 #안전사고 #교육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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