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 창립 108주년 맞아 다양한 행사 열려

대구근대역사관 '기획 전시', 달성토성 '기념식'

등록 2023.08.26 14:53수정 2023.08.2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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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 결성 108주년 기념식(2023년 8월 25일 오전 11시, 달성토성) ⓒ 정만진

 
제5차 교육과정 국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191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독립운동단체는 (1915년 8월 25일 대구 달성토성에서 결성된) 광복회였다"라고 기술했다. 지난 25일 오전 11시 광복회 창립 108주년 기념행사가 대구 달성토성에서 열렸다.

30여 시민들이 참석한 기념행사는 개회선언, 의례, 기념사, 광복회 포고문 낭독,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광복회 우재룡 지휘장의 아들인 우대현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상임대표는 기념사를 통해 "창립 110주년인 2025년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해 성대한 기념행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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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근대역사관 특별기획전 '광복을 꿈꾼 청년들'에 1만번째로 입장한 강종민 씨 가족이 대구근대역사관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 대구근대역사관

    
지난 6월 9일부터 '대구에서 만나자 - 1910년대 광복을 꿈꾼 청년들' 특별기획전을 열고 있는 대구근대역사관도 8월 25일 오후 2시 문화공연과 특강으로 광복회 결성 108주년을 기념했다.

문화공연은 대구시립교향약단 정성욱, 윤주리, 박성은, 이상희 단원의 '현악 4중주'로 이루어졌다. 특강은 '잃어버린 집'의 권비영 소설가가 맡았다. 행사에 앞서 신형석 대구문화예술원 박물관운영본부장의 '광복회 활동과 그 의미'에 관한 설명이 있었다.

광복회는 어떤 단체인가? 오는 11월 5일까지 계속되는 '대구에서 만나자 - 1910년대 광복을 꿈꾼 청년들' 특별기획전을 보러가실 시민들을 위해 광복회를 간략히 소개드려 본다.

광복회는 어떤 단체인가

1910년대 초반은 나라가 망한 충격과 일제의 무단정치에 짓눌려 독립운동을 할 엄두를 못 내던 시기였다. 그런 까닭에, 1910년 8월 25일 결성되어 왕성한 활동을 펼친 광복회는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의 공백을 메우고 민족 역량이 3·1운동으로 계승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 광복회의 '의협 투쟁은 1920년대 의열 투쟁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다"라고 평가했다.

광복회는 만주에서 활약하고 있는 독립운동가들에게 군자금을 보내는 과업에 주력했다. 광복회는 결성 첫해인 1915년 12월 24일 지휘장 우재룡과 권영만의 경주 효현교 세금 마차 공격 거사(현시세 4억 원 탈취)로 활동을 개시했다.


광복회는 일본인 등이 운영하는 중석광과 금광을 습격하고, 친일 부호들에게 의연금을 모았다. 채기중 등은 경상도 제일의 친일 부호로 허위 의병대장의 모금 운동을 일제에 고발한 장승원을 처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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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가 처단한 대표적 친일파 장승원의 집(경북 구미시) ⓒ 정만진

 
또 헌병 주재소를 들이쳐 무기를 탈취하기도 했다. 영주 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 발간 〈대한광복단 기념공원〉에 따르면, 우재룡과 권영목은 현재 시세로 33억9천 만원에 이르는 군자금을 만주 2대 지부장 김좌진에게 전달했다.

1918년 1월 이후 광복회는 총사령 박상진, 경상도 지부장 채기중, 충청도 지부장 김한종 등 간부들이 순국하고, 마침내 조직이 해체된다. 그후 광복회 젊은 단원 황상규, 김대지 등의 독려를 받은 김원봉, 이종암 등이 의열단을 결성한다. 광복회는 1919년 3·1운동의 토대와 1920년대 의열 투쟁의 기반을 구축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주요 단체였던 것이다.
 
#광복회 #우재룡 #박상진 #김한종 #채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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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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