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원하다, 개운하다, 깔끔하다. 조개국 맛을 표현하자면 별 수 없이 들먹이게 되는 단어들이다. 특이하게도 소금이나 조금 뿌리고 파나 조금 띄우는 것 외에는 거의 전적으로 주재료에 의존하는 음식인 이 조개국은 그 단순하고 순진한 체질만큼이나 말끔하고 경쾌한 음식이다. 그리고 내게는 또 그만큼 재미있는 기억이 묻어 있어 슬쩍 웃으며 먹게 되는 음식이다.

막상 닥치고 보면 생각보다 버거운 것이 휴가계획 세우기다. 아마도 땅덩어리는 좁고 사람은 많다는 별 수 없는 사정 때문이겠지만, 웬만큼 물 맑고 산 좋은 곳이라도 한 번 다녀오자면 숙소 잡기는 고사하고 만만히 오고 갈 방법도 없기가 십상이다. 좀 넉넉히 마음먹고 따져보지만 지출이 과해지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냥 거르자면 뭔가 허전하고 아쉽다. 일년에 한 번 주어지는 기회를 그저 흘려버리기 아까운 것이다. 피서여행이라는 것이 일년 내내 떠올리고 상상하며 흐뭇해하는, 말하자면 그저 더위 며칠 피해보자는 차원을 훨씬 웃도는 추억이고 환상이 아니던가.

그래, 돌아보면 부모님의 공이란, 우리 삼남매 끼니 한 번 서럽게 거르지 않았다는 궁상맞은 입발림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래서 빠듯한 시간과 예산안에서도, 산이 되었건 바다가 되었건 피서여행 빼먹고 지나친 해가 한 번도 없었던 부모님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충주에 살 때는 달천강가 어딘가로, 혹 인천에 살 때라면 서해안 어디쯤 해수욕장이라도 한 2박 3일 정도 다녀오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정 시간과 경비가 허락하지 않을 때는 시내 풀장에라도 한 번은 다녀왔다.

그리고 인천에 살고 있던 어느 해 여름에도, 우리 가족은 인천 앞바다 어느 갯벌로 조개잡이를 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일 코스라 시간과 비용에 큰 부담이 없을 뿐 아니라 잡은 조개로 한동안 찬거리까지 확보될 알뜰한 계획이었기 때문이겠지만, 그 해 조개잡이에는 동네 서너 집도 동행했다.

그래서 수영복은 챙기더라도 튜브 따위는 그만두라는 엄마의 단속이 수상하다는 생각도 못해본 채, 인천 만수동(혹은 연수동) 어느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이삼십 분 건너가는 동안 나는 어느 해 여름보다도 설레고 있었다.

다른 해보다도 내가 많이 들떠있었던 이유가 있다. 나는 조개도 어떻게든 바닷물 속을 유영하며 사는 동물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위아래 껍데기 두 쪽을 날개처럼 파닥거리며 조류를 따라 헤엄치고 다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명색이 바다동물이라는 것이, 그것도 지렁이도 아닌 것이 시커멓고 빡빡한 뻘 밑으로 헤집고 다니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가 상상하던 조개잡이란 물안경을 쓰고 바닷속을 잠영하며 조개를 뒤쫒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매년 튜브에 매달려 둥둥 떠다녔던 여느 해와는 질적으로 다른 모험과 즐거움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도착한 갯벌, 그곳은 바다라고는 하지만 물은 시선 밖까지 몰려나가 있었다. 수평선인지 지평선인지 알 수 없는 아득한 어딘가에 배 몇 척이 어른거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마도 그때가 책에서 읽거나 어른들 대화 중에 걸려 들리던 '기가 막힌다'는 말의 뜻을 처음 실감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래도 내 또래 꼬마들은 막연한 기대로 곧장 수영복을 갈아입었지만, 집집마다 아줌마, 아저씨들은 수영복이랄 것도 없는 간편복으로 갈아입고는 챙겨온 자루를 우르르 쏟아놓았다. 그것은 호미였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치도 않은 중노동은 시작되었다.

물론 그것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거나, 그래서 내가 시종일관 입을 빼물고 있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린애는 어쨌거나 단순하니까.

호미나 꽃삽을 들고 빠꼼한 숨구멍이 뚫린 곳을 파내려가면 허겁지겁 입을 다물고 도망치려는 조개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놈을 잡아 뻘 따라 흐르는 용비늘 고인 물에 씻어 담아놓으면 저희끼리 엉켜 달그락대는 모양이 재미있었다.

또 어디선가 바쁘게 달려왔다가 발등에 부딪히고는 놀라 옆걸음으로 도망치는 참게들. 그런 재미에 나는 물놀이할 물이 없다거나 하는 불만은 깨끗이 잊고 진흙탕을 뒹굴었다.

순전히 기분 차원에서 입은 수영복은 몸을 더 뜨끈뜨끈하게 조여왔고, 아닌 여름 낮에 질퍽한 뻘에서 호미질을 하느라고 땀은 끈끈하게 흘렀지만 괜찮은 장난거리를 만난 아이의 머릿속은 복잡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기분이 비로소 꾸물꾸물해지기 시작한 것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햇볕이 물러지는 시간, 문득 허리를 펴고 보니 수평선에 떠가던 배가 성큼 눈가로 다가섰고, 비로소 물은 자작하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제야 물놀이가 시작되나보다 했던 나의 궁색한 기대마저 무참히 짓밟아버리고, 기껏 발목까지 차오른 물에 호미를 씻어 담고는 뱃시간에 맞추느라 갈길을 재촉했다.

그제서야 배까지 타고 물건너 와서 물장난은 고사하고 호미질이나 하다가 막상 물이 들어오자 도망치듯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이 올해 피서여행의 전부였다는 사실을 나는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잡을 때는 신기하고 재미있던 조개들도 모아놓으니 고무함지 하나는 가득할 것을 들통으로, 양동이로 나누어 들고 옮기자니 초등학생 꼬마에게 할당된 무게도 제법 뻐근했다. 게다가 한낮내내 분별
없이 벗어제쳤던 내 어깨는 빨갛게 익어 있었고, 마른 옷깃은 이래저래 스치며 살갗을 쓸어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팔랑팔랑 바다 속을 유영하는 것은 고사하고, 지렁이처럼 진흙 속이나 헤집고 다니며 사는 조개라는 놈도 한심해 보였고 억지스럽게 입고 있던 수영복도 우스꽝스러웠다. 온갖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다 떠올랐다.

그나마 우스운 꼴을 하고 한나절 낄낄대며 즐겼던 내가 스스로 한심해서였을까? 시끄러운 투정은 없었지만, 그 날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나는 부은 얼굴로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조개무침, 조개탕, 조개국, 또 조개로 만드는 모든 요리. 재미난 장난은 끝나고 일거리만 남은 훈훈한 오후부터 시작된 나의 조용한 투정은 한 일주일은 넘게 밥상에 올라 나를 약올리는 그 조개들 때문에 꽤 길게 이어졌었다.

조개잡이란 남태평양 어딘가의 풍경처럼 작살을 들고 물고기의 뒤를 쫒는 것과는 많이 다른, 호미를 들고 갯벌을 캐는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그해 여름. 가끔 횟집에나 가면 전채로 나오는 조개국을 떠먹으며 나는 항상 그 여름을 떠올린다.

조개국은 너무 바닥까지 훑어마시지 않는 게 좋다. 흔히 식당에서 먹게되는 조개국그릇 바닥에는 얇게 뻘이 깔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얇게 깔린 잔모래와 짭조름한 맑은 조개국물이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거친 호미질에 튀어오르던 짭짤한 바닷물 맛을 닮은, 어쩌면 조개국은 바다를 가장 많이 닮은 음식일 것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