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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등학생 시절은 모범생과 문제아, 우등생과 열등생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강자와 약자의 시간이기도 했고 억압하는 자와 억압당하는 자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사와 제자는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이기도 했지만 때리는 자와 맞는 자, 잡으려는 자와 도망치려는 자의 관계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창시된 어느 종교단체가 운영하던 나의 학교는 우리나라 어느 학교보다도 단정한 모양의 학생을 길러내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교복을 부활시키고 머리카락은 3센티미터를 넘지 못하도록 단속했으며, 선생님들로서는 성적관리만큼이나 신경을 쓰는 것이 흡연 단속이었다.

그래서 항상 힘 좋은 학생부 남자선생님들은 자기 키만한 몽둥이를 들고 화장실을 습격했고, 거의 매주 중앙복도에는 단속된 학생들에 대한 징계사실이 격문처럼 나붙었다. 그렇지만 하지 말라는 것일수록 더 끌리는 것이 젊은이들 심성이라서인지, 화장실은 거의 매번 쉬는 시간마다 담배연기로 자욱했다.

그 학교 중앙복도에는 쇼파와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쇼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무릎 위에 팔을 걸면 손 바로 아래 적당한 높이에서 떠받치고 있는, 길다란 은색 다리가 반짝거리는 멋진 재떨이였다.

물론 학생들을 위한 흡연석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학생복도에 선생님들을 위한 흡연공간을 꾸몄다고 생각하기에도 뭔가 걸리는 것이 있다. 사실 '최대한 담배와 격리되어야 할' 학생들이 한나절을 보내는 공간인 그곳에서 마음 편하게 담배를 피울 만큼 몰상식한 선생님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재떨이는 항상 깨끗하게 빛나고 있었다.

굳이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가끔, 아주 가끔씩 화장실에서 흡연단속의 혁혁한 전과를 올린 학생주임 선생님이 한 줄로 엮인 포로들을 엎드리게 해 놓고는 일장연설을 하면서 보란 듯이 빨아대던 담배 한 대를 비벼끄는 것이 이 재떨이가 가진 용도의 전부였다.

아무도 그렇다고 못박아두지는 않았지만, 나와 내 친구들에게 그 재떨이는 주먹이기도 했고 몽둥이이기도 했다. 마치 교도소의 쓸데없이 높은 담장처럼, 재떨이는 그 과장된 몸짓으로 주먹과 몽둥이보다도 더 단단하게 마음을 짓누르는 철벽이었다.

그래서 담배를 배우기 전이었지만, 그 쇼파 앞 중앙복도를 지날 때마다 나는 언젠가 꼭 한번 저 폼나는 쇼파에 앉아 여유있게 담배를 피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니코틴에 대한 유혹이기 이전의 야릇한 오기, 혹은 분노였다. 그것은 '학생놈들아, 어디 한번 피울테면 피워봐라. 배짱이 있거든 보란 듯이 여기서 한번 피워보란 말이다'하고, 조롱하듯이 윽박지르듯이 항상 말끔히 빛나는 은빛 재떨이에 지저분한 까만 담배 숯가루를 문질러주고 싶은 반발심이었다.

특히 어느 해 만난 담임 선생님은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그리 인기는 없었지만, 그 분은 학생놈들에게 시시하게 약점이나 잡히고 맞시비나 붙는 그런 분이 아니었다. 선생님에 대한 버릇없는 행동은 절대 묵과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담배만큼은 근절해 내리라는 의지가 단단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잠깐 결근한 어느 여선생님 대신 여학생반의 보충강의를 맡았던 어느 날, 버릇없이 짖궂은 농담을 지껄이던 그 반 여학생들의 교복아래 종아리에 검붉은 피멍자국을 줄줄이 남겨 한동안 말썽을 빚기도 했었다.

우리 반에서 담배를 몰아내기 위해 그 분이 즐겨 쓰는 방법은 이백대고 삼백대고 '쓰러질 때까지 계속되는' 잔인한 구타와 '전체기합'이었다. 그래서 우리 반 친구들 중 하나라도 담배를 피우다가 적발이 되는 날, 우리 반 모두는 수업을 마친 후 한두 시간 동안 운동장을 돌거나 책상을 들고 꿇어앉아 있는 것 같은 벌을 받아야만 했다.

지금은 조금 더 심하다고도 하지만, 그때도 우리 반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이 절반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부 선생님들의 촘촘한 감시망과 담임 선생님의 감당하기 어려운 징벌 때문에 우리 반 아이들은 학교 안에서만큼은 꽤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역시 억세다고는 해도, 아직 마음이 여린 아이들에게는 '단체기합'의 효용이 그런 대로 먹혀 들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유독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피워대다가 한 달에 한두 번은 걸려들던 녀석이 꼭 하나 있었다. 어차피 한 달에 한두 번은 누구 때문이 아니라 정신무장 차원에서라도 떨어지는 체벌임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주먹은 꽤 쓰지만 사람은 괜찮았던 그 친구에게 노골적으로 심한 눈치를 주는 아이는 없었지만, 어느 만큼 원망을 사고 있었음은 분명했다.

그런데, 꼭 한 번 그 녀석 때문에 이틀 동안 연이어 운동장을 돌아야 했더 어느날, 두 시간 동안 쉼 없이 달려야 했던 어둑어둑한 운동장에 뿌려진 땀자취를 따라 터벅거리며 뒤늦게 학교 도서관으로 내몰리며 꽤 많은 아이들이 수군수군 그 녀석을 욕했었다. 그 자식은 다른 친구들 생각은 손톱만큼도 않는 모양이라고.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담임 선생님은 청소 도구함에서 또 담배 한 갑을 찾아내고 말았다. 바로 그 순간 이곳 저곳에서는 절망에 가까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야, 누구냐. 자수해라"
"우와, 미치겠네. 오늘 또야?"

아마 그만하면 한두 달 짜리 정신무장은 충분했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얼마 남지 않은 시험준비에 이상이 생기겠다고 생각했는지 선생님도 범인이 자수를 한다면 오늘은 담배 주인만 처벌하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나서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아마 누구든지 나섰다면 언젠가 다른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대걸레자루 몽둥이로 종아리를 이백대는 맞아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죽은 피를 빼내야 했을 것이다.

"선생님. 제가 벌을 받겠습니다."
아득한 적막을 깨뜨린 것은 바로 상습범인 그 친구였다. 그 친구가 청소도구함에서 발견된 담뱃갑의 주인이라고 믿는 아이들도 꽤 있었겠지만, 내 생각에 그건 그 녀석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대책 없이 여유롭고 느슨한 그 녀석의 담배갑은 바지 주머니, 아니면 가방 앞주머니에 들어있어야 했다. 그 녀석이 선생님들의 단속에 그렇게 자주 걸렸던 것도 우연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너야? 이 담배 주인이 또 너야?"
"그 담배가 제 것은 아닙니다."
"뭐? 그런데 너 왜 일어났어?"
"제 것이 아닌 건 분명합니다. 정말입니다. 그렇지만 저 때문에 아이들이 이틀 동안 운동장을 이백바퀴는 넘게 돌았기 때문에 오늘 벌은 제가 혼자 받고 싶습니다."

무슨 정의감이었는지, 벼룩 낯짝만 하다는 염치였는지. 어쨌든 분명히 그 이틀간 형성된 심상찮은 공기에 밀렸을 이 분별없는 돌출행동도 결국 따귀나 몇 대 얻어맞고는 무위로 돌아갔고, 우리 반 아이들은 또 다시 운동장을 달려야 했다.

그 날은 해가 지고 운동장 저편을 돌 때면, 맞은편에 서 있는 것이 사람인지 나무인지 분간되지 않을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이미 몸무게가 좀 나간다 싶은 두세 명은 친구들이 밀고 끌고 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 눈이 하얗게 돌아간 채 어딘가 널부러져 있었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이미 지난 이틀간 잡힌 물집이 터져 질척해진 발바닥을 식별도 되지 않는 지척으로 내던지고 있었다.

어찌 보면 이상하고 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달리면서 아이들은 꼭 담배를 피우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나누고 있었다. 좀 무른 아이들은 꼭 졸업한 뒤에 담임선생님을 찾아 맞담배를 피우겠노라고도 했지만, 또 좀 걸걸한 놈들은 당장 그 시간이 끝나면 학교 앞에 모여서 뒷풀이삼아 선생 욕이나 하면서 단체로 담배를 피우자고도 했다. 그리고 누군가 결론삼아 했던 얘기, 우리 언젠가 복도 그 은빛 재떨이 앞에 모여앉아 담배 하나씩 꼬실리자고 속삭일 때 상상되던 그 달콤한 희열과 해방감을 나는 결국 거부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여름, 어딘가에서 처음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내내 뱃속에서 솟아나는 탄내음이 괴로워 집으로 오는 버스 차창을 열고 심호흡을 해야 하긴 했지만, 또 띄엄띄엄이나마 그로부터 꽤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기도 했었다.

아버지조차 담배를 피우지 않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 외아들이었다는 사실은 접어두더라도, 고등학교 2학년생이라는 명명백백한 규정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처음 담배를 물었던 이유는 어른스러움이나 남자다움, 혹은 니코틴향의 유혹보다도 강하게 내 반발심과 비위를 긁어대던 그 재떨이, 그리고 땀냄새 후끈한 어느 밤 운동장에서의 연대감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한동안 친구들은 만날 때마다 그 선생님 욕을 하기에 바빴었다. 아직도 그 선생님은 밤길 무사히 다니고 있느냐는, 조금 살벌한 농담을 던지는 친구도 있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지금은 그 선생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담배도 지금은 피우지 않는다. 어찌 되었건 담배야 백해무익한 것이고, 더구나 고등학생으로서는 입에 대지 말았어야 할 물건이다. 그래 그 소신과 열정을 지금에야 이해 못할 것도 아니기에, 좀 고생스럽긴 했더라도 그 선생님을 존중할 수 있다.

그러나 거꾸로 그 열정이 미워 담배를 피우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던 꽤 많은 아이들이 있었음을 떠올려서라도, 그리고 지금도 떠올리면 눈이 질끈 감기는 까맣게 죽은 친구의 종아리와 두세 시간 운동장 돌기의 잔인함 때문에라도 나 자신은 그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내가 잘 아는 스스로의 못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담배 아니라 무슨 거창한 가치를 막론하고 그렇게 때려서라도, 혹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뜯어고쳐놓고야 말겠다는 마음만은 경계하고 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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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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