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가 입대한 것은 4월 3일이었다. 그때쯤 낮에는 제법 햇살이 뜨거웠고, 밤에는 아직 바람이 찼다. 군복 입은 아저씨들을 유난히 좋아하던 유년 시절도 없지는 않았지만, 이미 중학생 무렵부터 악몽이 되어 심심치않게 마음 한 자락을 잡아끌던 군인생활이 그날 비로소 시작된 것이었다.

우리 나이로 스물 일곱이 되어서야 경험하는 입대가 괜히 쑥스러워 가족들과는 진작 집 앞에서 작별을 했지만, 인솔 장교의 구령에 따라 부대문 앞에서 손 흔드는 남의 가족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서 달릴 때는 새삼 가슴이 뜨끈했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시간은 정신없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저마다 마음속 시계의 초침은 딱 심장의 박동 간격만큼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정신없이 되는 대로 전투복을 골라 입고, 입고 온 옷은 벗어 소포를 꾸렸다. 그리고 사이사이 무엇이 맘에 안들었는지 모를 인솔장교의 호통에 따라 내무실과 복도를 오가며 바닥을 기어야 했고, 떨리는 손으로 손톱 밑을 쑤셔가며 바느질을 했었다.

군 생활이란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생활'이 아닌 '생활의 상실'을 의미한다. 앞으로 꽤 오랜 동안 부모님도, 연인도, 친구들도 만날 수 없을 것이고 마음대로 잠을 잘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때, 우리들의 상실감을 대표한 것은 무엇보다도 담배였다.

앞으로 1주일 동안은 일체 흡연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훈시를 접하며 내무실이 술렁이기는 했지만, 누가 권할 때 간신히 한 대씩이나 피우던 나로서는 사실 별 아쉬울 것은 없었다. 남들이야 담배 없이 하루만 지나도 손이 떨리고, 아침에 담배 한 대를 붙여 물어야 비로소 눈이 떠진다고도 하지만 나는 많이 달랐다. 일주일이 아니라 한 달 이상 담배 없이 산다고 해도 나는 별 불편할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담배 생각에 하루하루 말라가는 동기들 속에 묻혀서 먹고 자다보니, 어느 순간부턴가는 엉뚱하게도 나 자신이 담배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취사장 앞에서, 그리고 평소보다는 이른 잠을 청하던 침상에서 청년들은 신음처럼 담배를 떠올렸고, 고단한 훈련 사이 터무니없이 짧은 휴식 시간에도 일개 중대원의 온 신경은 오로지 담배로만 모여들었다.

심지어 모두들 어릴 적 생일 기다리듯 기다려온 그날, 참아온 일주일이 끝나고 담배가 주어지는 그날을 코앞에 두고서는 알 수 없이 가슴은 콩닥콩닥 뛰기까지 했다. 그래서 훈육관이 머릿수대로 담뱃갑을 뿌렸던 그날, 초여름 마른바람에 시큼한 냄새가 떠오르는 콘크리트 휴지통을 두 겹 세 겹 둘러싸고 '열중 쉬어' 자세로 서서 우리는 담배 서너 대씩을 줄지어 피워댔다.

그것은 담배였지만, 또 담배의 모양을 한 자유였고 해방이었으며, 태어나서 처음 겪은 일주일간 고생에 대한 따스한 위로였다. 그리고, 물론 고등학생 시절 처음 입에 댔다고는 해도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시작한 담배를, 군문을 나서기 직전 까지도 나는 떨쳐내지 못했다.

정신이 쑥 빠질 정도로 기고 구르다가 주어진 휴식시간 동안 멀뚱하니 숨만 고르고 있을 수는 도저히 없었다. 아무리 속이 메슥거리고 숨이 차오르는 한이 있어도 모여앉아 담배 한 대 태우면서, 빌어먹을 훈련은 언제 끝나는가 한탄이라도 나누어야 그 10분이 뿌듯했다.

또 최전방 철책에서 보낸 어느 겨울, 도대체 어디에서 어디로 퍼내야 할지 모를 지경으로 쌓여 있는 전술도로의 막막한 눈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10분간 휴식'을 외치며 꺼내 물던 축축한 땀 절은 군담배를, 지금에라도 도대체 어떻게 거부한단 말인가? 요즘 날이 갈수록 흡연자는 원시인으로 몰려간다지만, 아마도 적지 않은 애연가들이 진정 사랑하는 것은 니코틴과 타르이기 이전에 바로 그런 경험이요, 공감대일 것이다.

어쨌거나 따라다니는 가래나 재, 꽁초들 때문에 지저분하기도 하고, 아침에 달려보면 확연히 짦아지는 숨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도 '담배가 나를 태우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끊기는 끊었다. 머리가 복잡한 어느 오후, '왜 이리 눈이 따가울까', '왜 이리 목이 칼칼하지'하고 돌아보면 어느새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채 타고 있는 담배개비를 보며 몇 번인가 독한 마음을 먹은 끝에 지금은 끊었다. 그러나 옛부터 담배 끊은 사람과는 상종도 말라고 했듯, 담배 끊기는 나 같은 얼치기 끽연가에게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의사들은 말한다. 니코틴이라는, 혹은 또 무엇 무엇이라는 화학물질이 몸을 중독시켜 자꾸만 담배를 끌어당기게 한다고. 그렇지만 나는 좀 달리 생각한다. 다른 골초들이야 모르지만, 내가 담배를 끊기 어렵게 했던 것은 뱃 속이나 몸 속 어디선가 요동치는 니코틴에 대한 욕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담배를 필요로 했던 시간은 사람이나 다른 무엇을 기다리며 시간을 죽일 때, 술자리 따위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과 마주앉았을 때, 혹은 머리와 가슴 속은 막막한데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을 때였다. 그래서 나의 생각에, 담배를 끊기 어려운 것은 그것이 니코틴이나 타르 같은 화학성분의 덩어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손과 입을 통해 해방과 자유와 위로를 가까이 느끼도록 해주었던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얼마 되지 않는 소중한 추억과 공감대를 만드는 방식을 포기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담배를 끊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그것을 사이에 두지 않고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손쉽게 주머니 속에 넣어가지고 다니며 누리는 것보다는 조금 복잡한 방식으로 해방과 위로를 일구어내려는 진득한 마음가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구석구석 함께 해온 오랜 친구를 닮아 정이 질긴 이 물건을 대신할 것은 사람 말고는 없지 싶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