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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뽀얗게 우러난 사골곰국에 잘 익은 깍두기 국물을 넣어 한수저 듬뿍 떠서 깍두기 하나 올려 먹으면 세상이 모두 내 것
ⓒ 이종찬

노모의 칠순잔치 부조 고맙다며
후배가 사골 세트를 사왔다
도막난 뼈에서 기름 발라내고
하루 반나절을 내리 고았으나
틉틉한 국물이 우러나지 않아
단골 정육점에 물어보니
물어보나마나 암소란다
새끼 몇 배 낳아 젖 빨리다보니
몸피는 밭아 야위고 육질은 질겨져
고기 값이 황소 절반밖에 안되고
뼈도 구멍이 숭숭 뚫려 우러날 게 없단다

그랬구나
평생 장승처럼 눕지도 않고 피붙이 지켜온 어머니
저렇듯 온전했던 한 생을
나 식빵 속처럼 파먹고 살아온 거였구나
그 불면의 충혈된 동공까지도 나 쪼아먹고 살았구나
뼛속까지 갉아먹고도 모자라
한 방울 수액까지 짜내 목축이며 살아왔구나
희멀건 국물,
엄마의 뿌연 눈물이었구나

- 손세실리아 '곰국 끓이던 날' 모두


12시간 이상 가마솥에서 푹 고아 뽀얗게 우러난 사골곰국.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뽀얀 사골곰국은 생각만 해도 절로 입맛이 다셔진다. 양념도 필요 없다. 그저 송송 썬 대파와 소금만 있으면 된다. 여기에 흥건한 김칫국물에 반쯤 빠진 잘 익은 깍두기 한 접시와 밥 한 공기가 있다면 그만.

우리 조상들이 환절기 몸보신용으로 즐겨먹었던 사골곰국. 소의 사골을 푹 고아 젖빛으로 뽀얗게 우려낸 사골곰국은 칼슘과 단백질 등 무기질 성분이 많이 들어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요즈음처럼 노곤한 봄날, 건강과 입맛을 한꺼번에 되살려주는 보양음식으로 이만한 음식을 찾기도 그리 쉽지 않다.

예로부터 사골곰국은 출산을 한 뒤 젖이 모자라는 임산부에게 먹였으며, 아기들의 이유식으로도 널리 사용했다. 어디 그뿐이랴. 사골곰국은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성장발육에도 아주 좋은 것은 물론 회복기 환자들이나 노인들의 기력을 북돋워주는 보양식품으로 끝내준다.

▲ 사골곰국은 장작을 떼는 가마솥에 끓여야 제맛이 난다
ⓒ 이종찬
근데, 왜 하필이면 '곰국'이라고 불렀을까. 곰국이라고 하면 언뜻 느끼기에 '곰을 삶은 국'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은 아주 간단하다. '곰'은 '고다'의 명사형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골곰국은 '소의 사골을 푹 우려낸 국'이라는 그런 뜻이 되는 것이다.

소의 뼈를 이용한 곰국의 종류도 많다. 우리가 흔히 즐겨먹는 설렁탕은 소의 사골과 등뼈를 많이 넣어 끓여낸 곰국이다. 도가니탕은 소의 무릎뼈를, 꼬리곰탕은 소의 꼬리뼈를, 갈비탕은 소의 갈비뼈를, 우족탕은 소의 발에 해당하는 뼈를 푹 고아낸 것이다. '탕'이라는 것 또한 이 곰국에 밥을 말은 것을 말한다.

곰국을 끓이기 위한 재료는 아주 간단하다. 싱싱한 소의 뼈와 찬물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맛깔스럽고 담백한 곰국을 제대로 끓여내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왜냐하면 곰국은 뼈에 들어 있는 각종 영양소가 우러나온 국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까닭에 곰국은 별다른 재료나 반찬 없이도 그냥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곰국은 오래 끓이면 끓일수록 국물도 훨씬 더 진해지고 맛도 한결 좋아진다. 특히 장작불을 떼는 가마솥에서 12시간 이상 오래 고아낸 뽀오얀 곰국은 정말 맛깔스럽다. 또한 그렇게 잘 우려낸 곰국은 식으면 어묵처럼 엉긴다. 식어도 어묵처럼 엉기지 않는 곰국은 어설프게 끓여 맛을 내기 위해 조미료를 넣었거나 색깔을 뽀얗게 내기 위해 첨가물을 넣었기 때문이다.

▲ 맞벌이 부부는 커다란 양은 양동이에 사골뼈를 담아 오래 우려내면 된다
ⓒ 이종찬
요즈음 주로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들이 집에서 곰국을 끓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골을 잘 골라야 한다. 가까운 식육점에 가서 신선하고 좋은 사골을 고르기 위해서는 사골을 자른 단면에 비치는 빛깔을 자세히 살펴보고 손으로 꼭꼭 눌러보는 것이 좋다.

사골 단면에 비친 빛깔이 거무스레하거나 무른 것은 오래 된 것이므로 무조건 피해야 한다. '뼈다귀니까 괜찮겠지'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사골은 쉬이 변질되는 식품이다. 그러므로 사골의 단면의 속이 꽉 차 있고 흰빛이나 분홍빛을 띠며,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단단한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신선하고 질 좋은 사골을 사고 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사골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핏물 빼기다. 사골 속속들이 박혀 있는 이 핏물을 제대로 빼지 않으면 애써 우려낸 사골국물이 거무스레하고 탁한 빛을 띠면서 비린 맛이 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사골은 곧바로 찬 물에 담가 1~2시간 정도 두는 것이 좋다.

특히 시간에 쫓기는 맞벌이 부부들이 퇴근을 한 뒤 사골곰국을 끓이는 시간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대략 이러하다.

▲ 뽀오얀 사골국물 위에 소금과 송송 썬 대파를 뿌리면 끝
ⓒ 이종찬
먼저 찬물에 담가두었던 사골에서 핏물이 어느 정도 빠질 때쯤이면 솥단지에 찬물을 붓고 가스 불을 켠다.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씻어둔 사골을 넣어 2~3분쯤 더 끓인다. 마치 사골을 살짝 데쳐낸다는 그런 느낌으로. 이어 건져낸 사골을 다시 한번 찬물로 깨끗이 씻고 국물은 모두 버린다.

커다란 솥단지에 찬물을 넉넉히 붓고 사골을 넣은 뒤 팔팔 끓기 시작하면 약한 불로 3시간 정도 더 끓인다. 사골국물이 뽀얗게 우러나면 국물 위에 동동 떠다니는 기름덩어리를 모두 건져내고 잘 우러난 사골국물을 미지근하게 식힌다. 그리고 진공 팩에 사골국물을 넣어 냉동실에 보관하면 끝.

그렇다고 한 번 우려낸 사골을 그냥 버리지 말자. 다시 사골 위에 찬물을 흥건하게 부어 센 불에서 팔팔 끓이다가 약한 불로 3~4시간 정도 더 끓여보자. 또 다시 뽀오얀 사골국물이 맛깔스럽게 우러나올 것이리라. 이렇게 2~3번쯤 더해도 된다. 하지만 재탕을 하면 할수록 사골국물이 점점 더 옅어지므로 더 긴 시간 동안 우려내는 것이 좋다.

이때 맞벌이 부부들이 한 가지 주의할 점. 재탕, 삼탕한 국물이 처음 우려낸 진한 국물보다 맛이 못하다고 조미료를 넣거나 다른 첨가물을 넣으면 안 된다. 사골국물 본래의 맛을 몽땅 잃게 될 수도 있다. 초벌국물과 두벌, 세벌국물을 같이 섞어 다시 한번 더 우려내는 것도 바로 이 때문.

(※포인트: 사골을 재탕, 삼탕할 때에는 사태살을 넣어 끓이는 것도 진한 국물맛을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비법이다.)

▲ 식성에 따라 고춧가루나 깍두기 국물을 넣어먹어도 맛깔스럽다.
ⓒ 이종찬
뜨락에 선 목련이 우윳빛 속살을 삐쭘히 내비치는 노곤한 봄날. 오늘 저녁에는 퇴근길에 가까운 식육점에 들러 신선한 국산 사골을 골라 구수하고 담백한 곰국을 끓여보자. 그리하여 내일 아침에는 보약보다 좋다는 사골곰국을 뜨며 '여보야! 나랑 같이 사골곰국 먹자'라고 속삭여보자. 뽀오얀 사골국물에 담긴 뽀오얀 쌀밥 위에 잘 익은 깍두기 한 점을 올려 먹으면 더욱 맛이 기막히리라.

뽀오얀 사골국물 이렇게 우려내세요
찬물에 핏물 뺀 뒤 살짝 끓인 국물은 버려야

▲ 뽀얗게 잘 우러난 사골국물
ⓒ이종찬
*준비물: 신선한 국산 사골, 소금, 대파, 후춧가루, 깍두기

1. 사골을 1~2시간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내고, 팔팔 끓는 물에 넣어 잠시 끓인 뒤 건져낸다. 이때 우러난 거무튀튀한 국물은 버린다.

2. 사골에 엉겨 붙은 찌꺼기를 다시 한번 찬물에 씻은 뒤 커다란 솥에 넣고 물을 충분히 부어 센 불에서 끓인다. 국물이 팔팔 끓어오르면 불을 약하게 낮추어 3시간 이상 푹 곤다.

3. 커다란 냄비에 동동 뜨는 기름을 모두 걷어낸 국물을 따라내고, 다시 찬물을 부어 국물이 뽀얗게 우러날 때까지 3시간 이상 푹 곤다.(1번 더 반복. 4~5회까지 우려내는 사람도 있다)

4. 초벌국물과 두벌국물, 세벌국물을 커다란 솥에 부어 다시 한번 약한 불에서 3시간 정도 푹 고은 뒤 위에 뜨는 기름을 모두 걷어낸다.

5. 잘 우러난 곰국을 그릇에 담아 소금과 후춧가루를 뿌려 간을 한 뒤 송송 썬 대파를 뿌려 깍두기, 밥과 함께 차려낸다. 이때 깍두기 국물을 사골곰국에 몇 숟갈 떠 넣으면 감칠맛이 더욱 좋아진다.

6. 남은 사골곰국은 진공 팩에 넣어 냉동실에 보관하다가 먹고 싶을 때마다 미리 꺼내 냄비에 끓여먹으면 된다.

(※포인트: 사골국물을 보다 진하게 먹으려면 오래 고는 것이 좋고, 입맛에 따라 사태를 함께 넣어서 끓여먹는 것도 조리의 지혜.) /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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