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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씹을 때마다 바다내음 물씬 풍기는 미더덕찜
ⓒ 이종찬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마산 앞바다와 진해 앞바다 곳곳에는 자연산 미더덕이 참 많았다. 지금처럼 양식을 하는 그런 미더덕이 아니었다. 물때에 맞춰 바닷가에 나가기만 하면 갯바위나 파래가 머리카락처럼 휘감긴 나무토막 곳곳에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 미더덕이었다.

그땐 어찌나 미더덕이 많던지 심지어 물 빠진 갯벌에 있는 고깃배 밑바닥에도 어른 손가락 한마디만한 미더덕이 줄줄이 들러붙어 긴 꼬리를 흔들며 '어서 날 따가주' 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은 물 빠진 갯벌을 아무리 질퍽거리며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미더덕 비슷한 것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그 많던 미더덕은 다 어디로 갔을까. 누가 그 많던 미더덕을 몽땅 싹쓸이했을까. 어부들이? 어시장 사람들이? 아니다. 이 모두 문명이란 이름 아래 도회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다로 온갖 오물들을 마구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바다의 정화구 갯벌을 마구 매립, 바다가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더덕. 해삼이 바다에서 나는 삼이라고 한다면 미더덕은 바다에서 나는 더덕이다. 그만큼 미더덕이 건강에 아주 좋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해삼이나 멍게는 잘 알아도 미더덕이 무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도 미더덕을 먹는 사람들은 주로 경남 남해안에서 살아가는 민초들이기 때문이다.

▲ 미더덕찜 전문점 삼성식당
ⓒ 이종찬
마산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아귀찜을 떠올리겠지만 이 지역사람들은 아귀찜하면 미더덕찜을 같이 떠올린다. 아니 이 지역에서는 아귀보다 더 오래 전부터 즐겨먹었던 음식이 미더덕이다. 아귀는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버리는 고기였지만 미더덕은 예로부터 이 지역사람들의 소중한 먹거리이자 특산물이었다.

예로부터 경남 남해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미더덕을 바다에서 나는 보약으로 여기며 날것으로도 먹고 조리를 해서 먹기도 했다. 내가 어릴 적에도 바닷가에서 미더덕을 따면 그 자리에서 껍질을 반쯤 벗긴 뒤 톡 터뜨려 바닷물에 헹궈 곧바로 입에 넣었다. 그 향긋한 바다내음과 오도독오도독 씹을 때마다 혀끝에 촤악 감기는 그 담백한 맛이라니.

미더덕에는 EPA, DHA가 멸치나 정어리, 고등어 같은 등 푸른 생선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미더덕을 자주 먹으면 동맥경화나 고혈압, 뇌출혈까지 예방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미더덕은 수험생들의 학습기능 향상과 더불어 노화억제, 각종 성인병 예방, 항암작용까지 한단다.

"미더덕찜도 아귀찜을 만드는 것과 거의 비슷하지요?"
"안 그런 기 오데 있더나. 음식재료라카는 기(것이) 다 비슷하지. 그 재료에 아구를 넣으모 아구찜, 대구로 넣으모 대구찜, 미더덕을 넣으모 미더덕찜 아이가."
"요즈음에도 자연산 미더덕이 나오나요?"
"자연산? 아, 마산 앞바다가 다 썩어뿟는데 그런 기 오데 있노. 이 미더덕도 진동쪽 바다에서 양식을 한 그 미더덕 아이가."


▲ 이 집의 미더덕찜은 2인분을 시켜도 3~4명이 같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푸짐하다.
ⓒ 이종찬
마산의 명물 미더덕찜과 아귀찜 조리만 50년을 훨씬 넘게 했다는 남상분(76) 할머니. 언뜻 보기에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 할머니는 그렇게 곱게 늙을 수 있는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느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뜸 "비법이라는 게 따로 있나. 미더덕찜을 많이 묵으모 내처럼 안 늙는다 아이가"라며 잔잔한 미소를 흘린다.

경남 마산시 창동 코아 맞은 편에 있는 미더덕찜 전문점 삼성식당. 근데, 간판에는 '아구찜 대구찜 전문'이라고 써 있다. 미더덕찜이란 글씨는 이 식당 들머리 유리창 한 귀퉁이에 조그마하게 붙어 있다. 식당문을 들어서며 이 집이 미더덕찜 전문집이 맞냐고 묻자 할머니 한 분이 생뚱맞게 고개만 까딱한다.

그 할머니가 바로 미더덕찜하면 마산에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알려진 남상분 할머니다. 남 할머니에게 왜 간판에 미더덕찜은 쏘옥 빼놓았느냐고 묻자 "요새 젊은 아들(아이들)은 아구찜과 대구찜은 알아도 미더덕찜이 뭔지는 잘 몰라"하며 "그렇게 써놓아도 아는 사람은 다 안다"고 말한다.

"요새는 장사가 너무 안돼. 미더덕찜을 찾는 손님도 많이 줄어들었고. 예전에는 어찌나 손님들이 많이 북적대던지 일하는 아지메(아줌마)로 다섯까지 둔 적도 있었다카이. 그때는 정말 해가 서쪽에서 뜨는지, 하루가 우째 흘러가는지도 잘 모를 정도였지."

▲ 막걸리와 함께 먹는 미더덕찜 맛도 일품이다.
ⓒ 이종찬
남할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10여분 쯤 지나자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미더덕찜(2인분 11000원)이 커다란 쟁반 위에 담겨 식탁 한가운데 턱 놓인다. 딸려나오는 밑반찬은 딱 3가지. 국물김치와 조개조림, 잡채 한그릇. 미더덕찜에 웬 잡채냐고 묻자 매울 때 잡채를 한 수저 입에 넣고 국물김치를 떠먹으면 매운맛이 싸악 가신단다.

막걸리 한 잔을 쭈욱 들이킨 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미더덕찜을 한 젓갈 집자 금세 매콤한 맛이 코를 훅 찌른다. 미더덕 몇 점이 오른 콩나물을 입에 넣자 목덜미와 이마가 후끈하다. 그와 동시에 콩나물과 함께 오도독 하고 씹히는 미더덕의 상큼한 바다내음이 입속을 가득 채운다.

오도독오도독 소리를 내며 콩나물과 미더덕을 몇 번 더 씹자 콩나물에서 느껴지는 맵싸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과 상큼하고 고소한 미더덕맛이 한껏 어우러져 절로 목을 타고 꿀꺽 삼켜진다. 미더덕찜이 사라진 혀끝에서는 미나리와 방아, 들깨가루의 향긋한 내음이 기분좋게 감돈다.

막걸리 한 잔 먹고 미더덕찜 한 젓가락 먹으며 오도독. 시원한 국물 김치 한 숟갈 떠먹고 미더덕찜 한 젓가락 먹으며 오도독오도독. 미더덕을 씹을 때마다 입안 가득 퍼지는 향긋하고 상큼한 바다내음. 국물이 아닌 찜을 먹으면서 느끼는 얼큰하고도 시원한 이 기막힌 맛. 이내 이마와 목덜미에서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한다.

▲ 미더덕찜은 미더덕을 씹을 때마다 톡톡 터져나오는 향긋한 바다의 맛이 정말 끝내준다.
ⓒ 이종찬
사실, 미더덕찜이 처음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언제 저 많은 음식을 다 먹으랴 은근히 걱정스럽기도 했다. 근데, 그 커다란 쟁반 위에 수북히 있던 미더덕찜이 어느새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이제 벌건 국물만 남은 저 미더덕찜에 밥을 비벼먹을 시간. 공기밥 하나를 미더덕찜 국물에 쓰윽쓱 비벼먹는 맛도 정말 일품이다.

남 할머니는 미더덕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며 건강하고 오래 살려면 무조건 미더덕을 많이 먹으라고 귀띔한다. 이어 "미더덕은 금방 바다에서 건져올린 것을 날것으로 그냥 먹어도 좋다. 또 된장찌개를 끓일 때 조금 넣으면 된장국물의 맛이 훨씬 향긋하고 맛이 좋아진다"고 강조한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카이. 멀쩡한 손님이 미더덕찜을 땀을 찔찔 흘려가며 오도독오도독 참말로 맛있게 씹어먹데. 그러다가 갑자기 아, 하더마는 이빨이 뿌러졌다나 우쨌다나. 그래가꼬 그 손님 땜에 한창 실갱이로 했지. 결국 그 손님이 미더덕찜을 잘못 먹은 자기 탓이라며 그냥 가기는 가더마는."

지금 남녘에서는 봄미더덕이 한창이다. 미더덕은 특히 봄철에 그 향긋한 향과 뛰어난 맛을 자랑한다. 이러한 때 가까운 시장에 들러 싱싱한 미더덕을 골라 미더덕찜을 만들어 식탁 위에 올려보자. 오도독 하고 씹히는 향긋한 미더덕맛도 일품이지만 요즈음 무른 것만 먹는 아이들의 치아건강에도 그만이리라.

매콤하면서도 부드러운 미더덕찜 이렇게 만드세요
입맛에 따라 조갯살과 고사리 넣어도 별미

▲ 봄철에 특히 맛이 좋은 미더덕찜
ⓒ이종찬

준비물/미더덕, 미나리, 콩나물, 방아잎, 불린찹쌀, 붉은고추, 매운고추, 대파, 마늘, 생강, 양파, 소금, 들깨가루, 고추가루, 참기름

1. 미더덕은 소금물에 흔들어 깨끗하게 씻고, 딱딱한 부위의 껍질을 반쯤 벗긴다.

2. 미나리는 잎을 떼낸 뒤 줄기만 깨끗하게 씻어 4cm 두께로 채썰고, 콩나물은 머리와 꼬리를 떼낸다.

3. 매운고추와 대파는 어슷썰기, 양파는 0.5cm 두께로 채썰고, 마늘과 생강은 찧는다.

4. 콩나물에 소금을 약간 뿌린 뒤 냄비에 삶다가 콩나물 특유의 비릿한 내음이 가시기 시작하면 냄비두껑을 열고 콩나물 위에 미더덕, 미나리, 양파를 넣고 약한 불에서 살짝 익힌다.

5. 미리 물에 불려놓은 찹쌀과 붉은고추를 믹서에 곱게 간다.

6. 냄비에 갖은 양념(매운고추, 대파, 마늘, 생강, 소금, 들깨가루, 고추가루, 참기름)을 넣고 손으로 잘 버무린다.

7. 믹서에 곱게 간 붉은고추와 찹쌀가루를 물에 개어 냄비에 붓고, 약한불에서 걸쭉하게 끓이다가 방아잎을 넣어 살짝 뒤적인 뒤 접시에 담아낸다.

※포인트/미더덕은 반드시 소금물에 씻는 것이 좋고, 깨소금보다 들깨가루를 넣어야 미더덕찜 특유의 제맛을 낼 수 있다. 방아가 없으면 깻잎을 잘라 넣어도 되고, 입맛에 따라 조갯살과 고사리를 넣어도 별미.

/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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