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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 법무 장관 기용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소식이 처음 전해진 지난 24일 이후 언론의 관심은 세 군데로 모아지고 있다.

하나는 당내 역학 구도다. 일부 언론은 천정배 의원이 법무 장관에 임명될 것이란 설과 함께 부친의 친일 행적으로 낙마했던 신기남 의원이 국회 정보위원장에 기용된 사실을 버무려 ‘천(정배)신(기남)정(동영) 체제’ 복원을 점치고 있다. 열린우리당 구당권파가 다시 전면에 나섬으로써 차기 대권을 둘러싼 당내 역학 구도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경향신문>과 <세계일보>는 천정배 신기남 의원의 기용에 큰 역할을 한 사람으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지목하기까지 했다.

이런 분석은 타당한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그 타당성을 짚어볼 수 있는 단서는 해당 기사 안에 있다. <경향신문>은 ‘제2의 천신정 태동’ 가능성을 점치면서도 신기남 정동영 두 사람의 ‘극구 부인’을 함께 전하고 있다. 전당대회 때 정동영 장관과의 결별을 선언했던 신기남 의원측이 ‘정 장관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대 이후 달라질 계기가 전혀 없다“고 단언한 사실, 그리고 정동영 장관측에서 ”국회 상임위원장 인사에 나설 이유도 없고, 나설 수도 없다“고 손사래를 친 사실을 전하면서 기사 수위를 스스로 낮추고 있다.

<세계일보>도 마찬가지다. ‘천신정 체제 복원’을 점치는 기사에서 제시한 근거는 ‘천신정’ 세 사람과 신기남 의원을 정보위원장으로 민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모두 ‘바른정치모임’에 속해 있다는 점 뿐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지금 당장 ‘천신정 체제’를 복원할 만큼 절박한 공통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찾기 힘들다. 차기 대권 구도를 위한 당내 입지 확보가 그 목적이라면 시기가 너무 빠르다. 한때 10월 재보선 때 당 복귀가 점쳐지던 정동영 장관의 경우 남북 관계가 풀리면서 복귀 시점을 늦출 것이란 보도까지 나온 터다. 아울러 천정배 의원이 법무 장관으로 갈 경우 당내 역할은 더 적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다른 언론은 ‘천정배 역할론’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천정배 의원을 법무 장관에 기용하고자 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의중이 뭐냐는 데 눈길을 맞추고 있다.

이 점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신문은 <동아일보>다. <동아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1일 저녁 천정배 의원을, 이달 초에는 이상수 전 의원을 만난 사실과 함께 한 가지 사실을 더 전하고 있다. 노대통령이 최근 청와대 정무팀에 당정청 관계 재정립 문제를 포함한 정국 운영 전반에 대해 몇가지 보고서를 올리도록 주문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이 두 가지 사실을 전하는 기사의 제목을 <노대통령 다시 당에 손대나>로 뽑았다.

무슨 뜻일까? <동아일보>의 기사 맥락은 이렇다. 노대통령이 공공기관 지방이전 및 수도권 발전대책을 내놓고 나면 집권 전반기의 역점 과제였던 국가 균형 발전 문제는 큰 가닥을 잡았다고 판단해 집권 후반기의 국정 운영에 주력할 것이며 그 전기로 ‘다음달 7일경’으로 예정된 ‘국민과의 대화’를 잡고 있으며, 이에 앞서 천정배 의원 등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 맥락을 액면 그대로 이해하면 천정배 의원의 법무 장관 기용은 집권 하반기 국정 운영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는 분석을 도출할 수 있다. 하지만 <동아일보> 기사에서 그 이상의 정보는 얻을 수가 없다. 노대통령이 집권 하반기 국정 운영 기조로 ‘개혁’을 잡은 것인지, 아니면 ‘실용/관리’를 잡은 것인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다만 집권 하반기 국정 운영의 성패를 좌우할 요소로 당정청 관계를 꼽고 있을 뿐이다. 당과 청와대와의 관계를 긴밀히 함으로써 당정청이 엇박자를 치는 현상을 막아야 한다는 정도가 전부이다. 이 정도로는 이 시점에 천정배 의원을 법무 장관에 기용해야 할 특별한 이유는 발견할 수 없다.

두 갈래로 갈리는 언론 보도 외에 다른 흐름의 보도가 하나 있다. 바로 <조선일보> 보도다. <조선일보>는 ’천정배 법무 장관‘의 역할을 두 가지로 압축하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와 검찰 과거사 정리 문제가 그것이다. 천정배 의원이 예부터 검찰 개혁에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천정배 의원이 법무장관이 되면 검찰에 재앙이 될까 만을 묻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천신정 체제 복원’이나 ‘집권 하반기 국정 운영’과 같은 큰 의제는 언급하지 않은 채 극히 ‘실무적’으로 사안을 분석하고 있다.

천정배 의원의 법무 장관 기용이 큰 그림 위에서 나오는 것인지 여부는 알 길이 없다. 대개의 사안이 그렇듯이 이 또한 ‘점치기’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다만, ‘천신정 체제 복원’이나 ‘하반기 국정 운영과의 상관성’과 같은 큰 의제를 끄집어 내기엔 그 근거 정황이 부족하다. 지금 이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두 가지 사실이다. 하나는 법무 장관이 공석이 됐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열린우리당에서 줄기차게 당정청 관계를 거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사실을 종합하면 노대통령의 속내의 일단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노대통령이 ‘소신’으로 밀어붙여왔던 당정 분리의 원칙의 고수하면서도 열린우리당의 불만을 다독일 수 있는 방안이 바로 인사권이란 점, 그리고 때마침 법무 장관직이 공석이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천정배 법무 장관 기용설’의 배경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진실은 때론 상식적 수준에서 나타나기도 하는 법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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