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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차 남북 장관급 회담 결과에 대한 언론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평가 포인트는 역시 북한 핵 문제다.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천명하고,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한 것을 '길조'로 보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실망감을 표명하는 언론도 있다.

<동아일보>는 "핵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이 없다는 점은 실망스럽다"며 "한국은 북한의 '핵 비켜가기'에 이용당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조선일보> 또한 이번 장관급 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지난번 평양 발언에서 사실상 한걸음도 더 나가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남한 당국을 향해 "말로는 비핵화를 다짐하면서도 행동으로는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려는 북한의 이중적 태도를 제대로 추궁하지 못햇다"고 힐난했다.

<중앙일보>와 <한국일보>의 평가는 앞의 두 신문과는 상반된다. <중앙일보>와 <한국일보>는 제15차 남북 장관급 회담 공동보도문에 '비핵화'와 '실질적인 조치'라는 문구가 처음으로 포함된 것에 주목하고 있다. 북한이 이런 표현을 쓰는 데 동의한 것은 "북핵 문제에 있어 남측의 당사자 지위를 인정한 것"(<한국일보>)으로 "(6자)회담 참석 의지가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는 평가다.

어느 평가에 무게를 둬야 할까?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적어도 7월이 되어야만 '비핵화'와 '실질적 조치' 문구가 길조였는지 흉조였는지를 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인 요인, 즉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일 위원장의 말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7월 중에 6자회담에 복귀할 용의가 있다면서도 "미국과 더 협의해 봐야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6자회담 복귀 날짜는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가 아니라 북·미 양자간 접촉에서 확정할 수 있고, 6자회담장을 여는 열쇠는 남북한이 아니라 미국이 쥐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 이르면 언론의 발길은 미묘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다. <조선일보>는 미국이 이미 김 위원장의 말에 무게를 두지 않고 있고, 정동영 장관을 '북한의 대변인'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음을 환기시키며 북핵 문제를 풀 실마리는 '남북관계의 활성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앙일보>도 6자회담은 열리지 않으면서 대북 지원은 확대되는 양상이 지속되면 "미·일과의 공조에서 불협화음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동아일보> 또한 "남북 관계가 너무 앞서갈 경우 한·미 관계는 늘 불편했던" 경험이 있다면서 "미국에 회담 결과를 상세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세 신문 모두 6자회담 재개 열쇠를 쥐고 있는 쪽이 미국이라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의미 축소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일보>의 경우 "미국이 북한 자극 발언을 자제해달라는 우리 정부의 요청에 유념하겠다고 했고, 대북 식량 지원 계획도 발표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며 앞의 신문들과는 다른 현실 진단을 하면서도 북한을 향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충고를 하고 있다. 해결당사자는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뜻이다.

핵 개발의 주체가 북한이고, 6자회담장을 뛰쳐나간 장본인도 북한인 만큼 최종 책임 주체로 북한을 지목하는 것은 원칙론상으로 맞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일을 현실로 인정하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 것인가를 모색하는 것이다. 미국의 태도가 중시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상당수 신문들은 미국을 부차적 범주에 놓은 채 남한과 북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언론의 태도는 7월의 논조를 예고한다. 만에 하나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무산될 경우 그 책임을 미국이 아니라 남북한에 돌릴 논리를 지금부터 가다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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