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나라당 의원 전원이 해병대 캠프에 입소한다고 한다. 안경률 원내수석부대표가 어제 의원총회에서 공지한 내용이다. 박근혜 대표와 이재오 원내대표도 동의했다고 한다. "최근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자성하고 새롭게 각오를 다진다는 의미"라고 한다.

한나라당의 처지를 알 만하다. 얼마나 궁지에 몰렸으면 이런 방법까지 고안했을까. 이해는 하지만 동의는 못하겠다. 진단도 어긋났고 처방도 잘못됐다.

1박 2일 동안 입에서 단내 풍기며 고된 훈련을 받는다고 해서(50~60대 위주의 의원들이 그렇게 할까도 의문이지만) "자성"을 하고 "각오"를 할 수 있을까? 기껏해야 기강을 잡고 태도를 추스르는 계기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그것만 해도 적잖은 소득이겠지만 "최근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건"에 직접 대입하면 거리가 한참 멀다.

최연희 성추행 사건의 원인은 '태도' 아닌 '인식'

최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의 원인은 '태도'가 아니라 '인식'에 있다. 같은 인간을 대상화한 점, 여성을 도구로 인식한 점이 성추행 사건의 실체다. 이건 골수에 맺힌 '인식'의 문제이며 '가치관'의 문제다.

따라서 최연희 의원을 "후진적 술 문화의 희생양"(정의화 한나라당 의원)으로 규정하고, 성추행을 "아름다운 꽃(에) 취하고 싶고 만져보고 싶은(것과 같은) 자연의 순리"(한광원 열린우리당 의원)로 간주하는 사고가 바뀌지 않는 한 해병대 캠프를 1박 2일이 아니라 무박 12일로 입소해도 개선되는 건 없다. '태도 계엄령'을 발동해 잠시 억누를 뿐이다.

해법은 '공감'에서 찾아야 한다. 성추행 사건의 본질이 주객 분리에 있다면 주객 합일에서 해법을 찾는 게 온당하다. 도구와 수단으로 전락한 사람들도 똑같이 숨 쉬고 살아가는 똑같은 인격체라는 사실을 각인하도록 하는 게 해법이다. 해병대 캠프가 아니라 성폭력 상담소 같은 곳을 찾아 "아름다운 꽃"이 어떻게 처참하게 꺾였는지를 체험하고 공감하는 게 우선이다.

한나라당의 해병대 캠프 입소 소식에 연상되는 사건이 있다. 삼청교육대 사건이다.

삼청교육대 사건이 지금에 와서 규명과 배상의 대상이 된 게 무고한 민간인을 마구잡이로 끌고갔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곳에서 살인행위와 가혹행위가 자행됐기 때문만도 아니다.

문득 삼청교육대가 떠오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사람을 이른바 '뺑뺑이 돌리는' 방법으로 개조하겠다는 발상, 그 단순하고 무식하고 반(反)인간적인 발상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였다.

이런 발상은 사육에 가깝다. 육신을 지배함으로써 사고를 조절하겠다는 발상은 사람을 '파블로프의 개'로 만들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반인간적이다.

물론 다르다. 한나라당과 삼청교육대 사이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자율과 강제의 갈림현상이 있고, 1박 2일과 1, 2년의 기간 차이가 있다. 그래서 왜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휘두르냐고 힐난할 수도 있다. 분위기 한번 바꾸겠다는 데 초까지 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럼 이런 사례는 어떨까? 군기 잡아야 할 신입사원이라는 이유로, 실적이 저조한 영업사원이란 이유로 자기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극기 체험을 강요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개개인의 특성과 신체 능력의 차이는 무시한 채 조직의 이름으로 극기를 강요하는 풍토에 내몰린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