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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이 열린 지난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해찬 총리가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묘하다. 같은 여권인데도 반응이 다르다. 노무현 대통령은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한데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반기는 기색이다. 이해찬 총리의 사의 표명을 둘러싼 여권의 기상도는 '맑거나 흐림'이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그럴 만도 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총리가 사퇴하면 노 대통령은 국정운영 구상을 바꿔야 한다. 내치를 이 총리에게 맡기고 자신은 양극화 해소와 한·미FTA에 집중하겠다는 게 노 대통령의 구상이었다. 이 구상을 유지하려면 이 총리에 버금가는 인물을 찾아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반면 정 의장은 한숨을 돌릴 수 있다. 이 총리 골프 파문을 조기에 매듭지음으로써 의원직 사퇴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최연희 한나라당 의원에게 화력을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다일까? 아니다. 역측면도 있다. 이 총리 사퇴 이후의 수순은 총리 지명자 인사청문회다. 시점은 지방선거 직전이다. 누가 지명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야당에게 정치 공세거리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정 의장에겐 악재다.

일부 언론이 점치는 것처럼 노 대통령이 지방선거 이후 탈당을 감행하기로 작심했다면 이 총리 사퇴가 꼭 악재인 것만은 아니다. 차제에 중립 인사를 총리로 지명해 탈당 후의 중립내각을 준비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두 사람 모두 울고 웃는 '동시 패션형' 표정을 연출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한 사람은 맑고, 한 사람은 흐리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왜일까?

[정동영 의장] 대통령과 맞먹을 수 있고 히든카드도 손에 쥔다

핵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익이 교차한다는 점이다.

정 의장 입장에서 꼬리자르기가 이익이라면, 총리 인사청문회는 손해다. 합하면 밑질 것도 득될 것도 없다. 하지만 이건 최선의 경우다. 꼬리를 자른다 해도 한나라당이 잘린 꼬리를 계속 움켜쥘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약간 밑진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런데도 정 의장은 왜 반기는 것일까?

무형의 이득이 있다. 그것도 꽤 크다. 이 점에 주목한 곳이 바로 <중앙일보>다. <중앙일보>는 이 총리 사퇴로 권력이 재편될 가능성을 점쳤다. "대통령과 총리, 여당 의장 등으로 대표되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서로의 요구를 강요하는 상황이 온다면 갈등의 폭과 깊이는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얘기인가? 점은 쳤으나 풀이는 안 했으니 대신 나서자. 여권 내 권력구도에서 이 총리가 점하는 위치는 남달랐다. 두 가지 점에서 그랬다.

첫째, 실세 총리로서 열린우리당 의장이 노 대통령과 '맞먹는' 상황을 견제할 수 있었다.

노 대통령은 줄곧 당정분리를 주장해왔다. 정치는 당이 알아서 하고, 정책은 당정협의를 통해 풀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당 의장이 대통령과 독대할 일은 많지 않았고, 창구는 총리로 집중됐다. 게다가 이 총리는 실세였다. 간단히 말해 이 총리는 열린우리당 입장에선 차단막이었고, 청와대 입장에선 보호막이었다.

그런데 이게 깨진다. 정 의장으로선 당정을 아울러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호기를 잡은 셈이다.

둘째, 이 총리는 '제3후보론'의 히든카드가 될 수 있었다.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에 패배할 경우 정 의장이 위기를 맞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 대안. 강력한 경쟁자인 김근태 최고위원은 전당대회에서 이미 정 의장에 패했고, 또 당 최고 지도부로 지방선거 패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김 최고위원이 즉각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총리는 '제3후보'로서 손색이 없었다. 5선의 경력에다가 총리까지 지낸 터이기에 '급'만 놓고 따지면 하등 밀릴 게 없었다.

그래서 이 총리의 존재는 정 의장에겐 근심거리였다. 그런데 이 근심거리가 사라지게 됐다. 정 의장 입장에선 지방선거 패배라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돼도 협공을 면할 수 있는 '생문'을 찾은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 정치인 쓰자니 운신의 폭이, 비정치인 쓰자니 힘 쏠림이

똑같은 이유 때문에 노 대통령은 곤혹스럽다. 양수겸장의 카드가 날아갈 위기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정 의장을 견제하려면 정치인 중에서 총리를 지명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정 의장의 독주를 견제하면서 레임덕을 방지할 수 있겠지만 운신의 폭은 좁아진다. 지방선거 이후 조성될 당청관계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게 된다. 탈당을 고려하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비정치인을 중용하자니 그것도 난감하다. 운신의 폭은 넓어지겠지만 여권의 힘은 급속히 당으로 쏠린다. 방법은 하나다. 노 대통령이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실제로 탈당을 고려하고 있다면 힘의 쏠림 현상에서 초연해질 수 있을 것이다.

확연해지는 게 있다. 추측이 난무하는 지방선거 이후의 노 대통령 행보를 엿볼 수 있는 가늠쇠가 마련됐다는 점이다. 누구를 총리로 지명할 것인가? 이 문제는 '자리 메우기' 수준을 넘어 지방선거 이후 정국 구도를 가늠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관전 포인트다.

혹시나... 이 총리 사퇴 안 시킨다면?

짚지 않은 게 하나 있다. 앞서의 모든 얘기는 이 총리 사퇴를 전제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일방적인 해석이다. 노 대통령이 이 총리의 사의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청와대 관계자가 "노 대통령은 이 총리가 국정을 더 이끌어 주었으면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이 총리 사의를 반려한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한나라당과 다른 야당이 가만있지 않을 건 분명하다. 총리 해임권고결의안을 발의할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되면 '해임 정국'은 4월 임시국회로까지 연장된다.

그렇기 때문에 노 대통령이 이 총리를 계속 기용할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은 북악산에 올라 지방선거는 내 선거가 아니라고 했다.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자면 지방선거에 국정이 휘둘리는 일은 막겠다는 뜻이 된다. 노 대통령이 강수를 두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렇다 해도 관전 포인트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이 총리 체제를 유지하는 것과 노 대통령이 탈당하는 건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얘기다. 일단 유임시켰다가 지방선거 이후 탈당을 하면서 교체하는 시나리오도 있겠지만 이건 너무 소모적이다. 한두 달 더 끌려고 국민 비난과 야당 반발을 무릅썼느냐는 얘기가 안 나올 수가 없다.

정리하자. 이 총리 경질 여부와 그 후임 지명은 노 대통령의 정국 구상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당청관계에 관해서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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