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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란, 그리고 현실이란 우리에게 끝없는 좌절을 선물하는 곳이다. 하지만 현실이 더 얄미운 이유는, 좌절을 함께 희망이라는 것까지 주기 때문이다. 희망을 주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희망이라는 것은 삶의 활력소가 되지만, 그것이 지나쳐 고집이 되면 때로는 그 자신에게도 감당못할 고집이 되기도 한다. 물론 희망이 너무 없어도 문제다. 끝없는 좌절감에 빠져 그 자신을 바닥에 떨굴 수도 있다. 좌절과 희망은 그런 식이다. 너무 붙어있어도 때로는 부담스럽지만, 너무 떨어져 있으면 더 큰 문제가 된다.

좌절과 희망, 그리고 또 좌절과 희망, 우리의 삶은 그렇게 반복한다. 그러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교차'하는 게 우리의 운명이다. 교차하면서 서로에게 좌절을 주거나,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줄 수도 있다.

@BRI@<반면에 희망과 용기도 될 수 있다. 인간이 현실을 살고 사람을 만난다는 것도 그런 양면성이 있다. 우리의 정해진 운명이기도 하다.

인간교차점>, 제목부터 참 멋진 만화다. 전 27권으로 완결된 이 만화는, 총 13편 분량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로도 제작돼 있다. 많은 사람들은 히로카네 칸시의 대표작을 <시마 과장> 시리즈로 알고 있지만, 작품의 질로 봤을 때의 대표작은 야지마 마사오와의 공동작품 <인간교차점>을 빼놓을 수는 없다.

"40대 독자가 읽을 수 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던 그의 포부와, 히로카네 칸시 특유의 보수적인 시각을 기억한다면 그가 생각하는 '삶'과 '교차'는 어떤 것인지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히로카네&야지마 버전 '이것이 인생이다'

▲ <인간교차점>의 표지.
ⓒ 대원씨아이
<인간교차점>의 등장인물들은 정말로 다양하다. 세상의 모든 이를 대변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간교차점>의 등장인물들은 기구하지만, 잔잔할 때도 있으며, 때로는 너무 현실적이라 공감 간다. 일본 사회의 심각한 사회 문제가 투영돼 더 큰 울림을 느끼게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 문제는 현실의 불합리가 표출되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히로카네 칸시는 <시마 과장>이나 <정치 9단> 등의 작품으로 봤을 때, 사회 현실에 대한 분명한 보수적 시각을 표출하는 면이 있다. 특히나 <시마 이사>에서는 주인공 시마를 기업의 중역이라는 입장에 설정했기 때문인지, 신자유주의적인 관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교차점>이 표출하는 보수성은 인간적이다. 우리가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줄 잔잔한 파도, 너무 기구하기에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인간의 본분과 역할 등, <인간교차점>이 다루는 것들은 고개를 끄덕일 만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사회 현실이나 정치, 경제 등의 분야를 바라보는 히로카네 칸시의 보수적 시각은 이견도 많고, 때로는 지능적이라 느껴질 때도 있을 정도지만, 인간을 향한 그 정서와 시선은 마음을 의외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아쉬운 단점은 있다. 보수의 약점은 때때로 강요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인데, <인간교차점>은 독자들의 마음을 울려야 한다는 점에 다소 집착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숨돌릴 틈 없이 감동의 연속이다. 하지만 인간은 '지겹다'는 감정도 느끼는 동물이다. 같은 것을 너무 강요하고 반복하면, 쉽게 질려버리는 동물이다.

우리 사회의 보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들이 정말 보수인지 따지기에 앞서, 그들은 낡은 이야기들에 너무 집착하며 반복하는 일면이 있다. 그들에게서 설득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는 것은 아닐는지. '아름다운 보수'도 반복하면 질리는 판에, 낡디 낡은 고물 라디오의 설득력없는 목소리는 더 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인간교차점>이 우리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시마 과장> 시리즈는 그 보수적인 목소리와 함께, 직장인들이 꿈꿀만한 판타지를 그림으로써 단카이 세대를 위로하려는 목소리도 동시에 추구한다.

반면에 <인간교차점>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보다는 '살아가는 이야기' 그 자체와, 우리도 충분히 이해할만한 눈물을 그린다는 매력이 있다. 애니메이션판의 그 오프닝 장면에서의 흩날리는 벚꽃과 시의적절하면서도 부담이 가지 않는 오프닝곡, 그런 것들도 그 살아가는 이야기나 인간의 교차의 아름다움을 말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차'한다

배신과 복수, 오해와 해소, 참회와 반성, <인간교차점>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얽혀 있다. <인간교차점>은 인간이 어디까지 기구해질 수 있으며, 어떤 한계까지 느낄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남자에 대한 배신감에 기둥서방과 살면서 낳은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던 성매매여성의 이야기도 있으며, 기구한 삶을 살면서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여자가 사흘 만에 살해당하면서,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면 정말 슬플 것"이라면서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을 시인하고 감옥으로 들어가는 남자도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 떨리는 심정으로 바라봤던 에피소드는 성공을 이루면서 어려웠던 과거의 의미를 잃어버린 인기 배우에 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는 첫 아이를 잃는 아픔을 맛본다. 단 한 번의 큰 울음소리로 아이는 생명을 놓아버린 것이다.

사망수속을 위해서는 어쨌든 출생신고도 한 번 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그는 많은 것을 느낀다. 아이의 이름을 짓기 위해 밤새 고민하면서, 7일을 살기 위해 6년을 인고하는 매미를 떠올리고 이미 죽어버린 아이를 떠올린다.

"단 한순간의 울음이었지만, 아이도 살다가 갔다는 것은 변함없다."

아버지는 이미 죽어버린 아기와 '교차'하면서, 자신이 쉽게 잃어버렸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크나큰 아픔이었지만, 통곡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그 아픔을 충분히 느끼면서도, 아기에 대한 처음이면서도 영원할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흘렸던 아버지의 한줄기 눈물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삶이란, 그리고 생명이란 그런 것이다.

▲ <휴먼 스크램블>의 오프닝 장면
ⓒ TV도쿄
찾기 어려워 아쉬운 <인간교차점>

작품의 성향이 그런만큼, '장사가 어렵다'는 이면도 있을 것이다. 사실 서점이든 만화대여점이든, <인간교차점>을 찾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상무까지 진급해 "전무, 사장, 회장도 남았으니 앞으로 최소한 10년은 더 남았다"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시마 시리즈>는 쉽게 볼 수 있지만, 이 진정한 걸작을 쉽게 찾기 어렵다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다.

히로카네 칸시는 어른의 삶을 통째로 드러내는 능력도 있지만, 판타지를 꾸며내는 능력, 그리고 누구나 공감할만한 울림을 이끌어내는 능력도 있는 것 같다. <시마 시리즈>가 '판타지'로 당사자들을 위로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면, <인간교차점>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통째로 드러내고 그 눈물을 읽어냄으로써 가슴을 울리게 한다.

<휴먼 스크램블>이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은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의 목소리를 성우가 아닌 일본의 인기스타(소리마치 타카시, 타케노우치 유타카, 자이젠 나오미 등등)들이 맡는다는 것이 특징인데, 대체로 작품의 성향을 잘 이해하는 이들이 많아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는 벚꽃이라는 일본적인 상징까지 동원하면서 정서와 풍경의 조화까지 이끌어내기까지 한다.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에서도 이렇게 능란한 테크닉을 발휘할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일본만화의 숨은 힘일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자신들의 상징까지 아름답게 활용하는 힘도 우리로서는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힘은 아닐까.

어쨌든 확실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교차하고 있다는 것이다. 꽤 잦은 교차도 있고, 사소한 교차도 있다. 하지만 그 많고 많은 교차는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상처도 받고, 증오도 나눌 때도 있지만, 그 교차가 없다면 우리는 끝없는 외로움을 겪어야 한다. 외롭지 않은 삶, 어쩌면 그 자체가 행복한 삶이 될 수도 있다. 교차는 그래서 의미있고 소중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신문 필진네트워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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