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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월 17일에 일어난 고베 대지진은 일본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겨준 지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의 '자존심'을 무너뜨린 지진으로도 회자된다.

리히터 규모 7.3의 이 지진은 일본의 '안전 신화'를 상징하는 한신 고속도로를 무너뜨림으로써 외신으로부터 "일본의 자존심을 무너뜨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했다.

리히터 규모 8.1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지만 옆으로 흔들리는 경우에 대비했을 뿐, 위아래로 흔들리는 직하(直下)형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태어난 한신 고속도로는 철근의 강도를 3배로 늘리고 교각의 기둥도 폭을 2배로 키우면서 "직하형이건 뭐건 어떤 지진이 와도 두렵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자연의 위력 앞에 과연 그 이야기가 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온갖 자연재해와 전쟁, 테러 등 인간의 안전을 위협하는 불씨는 언제 어디서든 잠재돼 있다.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자연의 필연이든, 아니면 정치와 탐욕이 빚어낸 인위적인 재해든, 인간에게 과연 '안전'한 상황이 존재하는 지조차도 의문이 들 정도다.

위협과 공포, 인간을 괴롭히며 안전을 조롱하는 이 괴물들은 언제 어디서 돌출될 지 모른다는 점에서, 더욱 불안하고 무서운 것이다. 그로부터 미약한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고베 대지진'의 경우처럼 그 노력이 순식간에 허물어질 수도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야만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그 위협과 공포를 극복해야만 한다. 그것은 우리의 숙명이며, 본능이다.

<드래곤 헤드> 거대한 종말, 그리고 새로운 시작

▲ 모치즈키 모네타로의 <드래곤 헤드>, 전 10권
ⓒ 서울문화사
<드래곤 헤드>에서의 '위협'은 '불기둥'이다. 수학여행 도중에 기차에서 그 불기둥을 엿본 테루는 그것을 미처 알리기도 전에 거대한 위협을 경험한다. 신칸센 터널이 무너지면서 열차는 탈선했고, 몇 분 전만 해도 즐겁게 떠들고 웃던 친구들은 모두 싸늘한 시신이 돼 버린 것.

충격적인 죽음의 흔적, 그리고 붕괴된 터널에서 '아무것도 모르기에' 느껴지는 불안감, 이 고통들은 살아남은 3명의 고등학생에게는 견뎌내기 어려운 공포로 다가온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이 공포에 재빠르게 대처해야 한다. 테루와 세토는 끝까지 이성을 잃지 않으며 살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지만 평소에 왕따 신세였던 노부오는 타협을 선택한다. 공포의 흐름을 타고 광기에 사로잡힘으로써 잠재된 불만을 폭발시킨 것이다.

<드래곤 헤드>가 이야기하는 것은, 공포에 대처하는 인간의 다양한 자세에 관한 것이다. 자연재해를 소재로 선택한 것은 정말 적절한 선택이었다. 테루나 세토처럼 공포와 싸우며 새로운 시작과 생존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노부오처럼 굴복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에 공포에 중독된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을 모아 교주로 군림하는 사람도 있다.

"쾌적한 사회는 인간을 공포로부터 거의 완벽하게 차단했지만, 그럼으로써 인간은 더욱 공포에 민감하게 됐다."

한마디로 인간은 '온실 속의 화초'가 되면서 안전하다는 믿음과 평온한 생활로 인해 공포에 적응할 능력과 감각을 상실했다. 쉽게 이야기하면 '공포영화'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자세를 생각하면 된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잦은 공포영화 감상으로 인해 어지간한 공포영화는 '가볍게' 감상하게 됐다.

인간이란 결국 적응의 동물이다. 공포 역시 인간이 적응하고 뛰어넘어야 할 감각이지만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믿음'과 쾌적함 속에서 맞서 싸울 용기를 내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렇듯 <드래곤 헤드>는 시종일관 공포와 그에 대처하는 인간에 대한 생생함을 그려낸다. 모든 것이 파괴된 상황에서, 절망을 겪는 인간과 미쳐버리는 인간,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인간 등 다양한 인간군상의 현실과 내면이 녹아있다. 공포를 생각하면 그저 공포영화부터 떠올리는 우리가 어떻게 갑작스런 '진짜 공포'에 대처할지 생각해보는 좋은 만화라 할만 하다.

<드래곤 헤드>는 특히나 결말이 의미심장하다. 실컷 공포를 헤집어놓고는, '벅차오르는 무언가'를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그 많은 공포와 아픔 속에서도 인간이 여전히 살아남은 이유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사이토 다카오의 <생존 게임> 등의 작품과 연결지어 감상해본다면, 인간의 끝없는 생존 의지와 극복의 의지를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2> "안전신화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

오시이 마모루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대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공각기동대> 시리즈와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시리즈 등, 그의 작품 자체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상징처럼 굳혀졌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대단히 '영화적'이라는 것이다.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영상은 분명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작품을 보는 것 같으며,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감춰진 본질을 파헤치려는 그 시각 역시 영화적이다. 오시이 마모루는 사실 영화광이었으며 젊은 시절에는 유럽영화에 몰두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영화감독을 꿈꾸다가 애니메이션 업계에 진출해 애니메이션 감독이 됐다고 하는데 그에게는 곧 탁월하고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 증거는 그의 작품들이 증명한다. 사실적인 세계관과 표현 감각이 표현의 폭이 넓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더욱 당당하고 세밀하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는 분명 <기동경찰 패트레이버2>라고 생각한다.

▲ <기동경찰 패트레이버2>의 한 장면. 자위대 전투기의 폭격으로 떨어져나간 다리.
ⓒ 프로덕션 아이지
"안전 신화에 젖은 일본인들, 절대적으로 안전을 믿는 일본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2>는 시리즈물의 에피소드였던 <2과의 가장 긴 날>을 각색해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는 로봇 형태의 '레이버'가 범죄에 이용되자, 경시청 특수차량과에 신형 레이버인 잉그램을 운용하는 특차 2과가 신설되면서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2편은 전편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특차 2과'의 등장 비중이 줄어들었고, 분위기 자체도 오시이 마모루 개인의 견해가 많이 개입된 독특한 작품이다.

2편은 1999년을 배경으로 UN 평화유지군으로 캄보디아 내전에 참전했던 한 자위대원이 평화라는 가면 속에 나태해진 일본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일종의 모의 쿠데타를 기획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특차 2과가 다시 부각돼 그에 대항한다는 것이 줄거리인데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인만큼 줄거리 자체는 비중이 크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앞서 이야기한대로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특유의 영상미와 세계관이다. 특히나 그 모의 쿠데타로 인해 도시가 조직적으로 파괴되는 그 모습이 인상적인데 오시이 마모루는 그를 통해 '평화'라는 이름의 기만과 보다 '진실한 전쟁'의 이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시이 마모루는 일본이 자랑하는 그 '안전 신화'도 일종의 기만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기만에 가까운 평화와 안전은 인간을 나태하게 하고, 공포와 맞설 힘을 상실케 한다고 보는 것이다.

"예전의 세력전과 그 배후, 미군의 전쟁물자 생산, 바로 전까지 계속되어 왔던 핵 위협에 의한 냉전과 그 대리 전쟁, 그리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내전, 민족 전쟁, 무력 분쟁. 그러한 일련의 전쟁 덕에 발전해 온 피투성이 경제 번영. 그것이 우리들의 평화의 실체지.

전쟁의 공포에 기초하여 억지로 이어 가는 평화. 자신의 불합리를 옆 나라의 전쟁으로 해결하면서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정의롭지 못한 평화."


▲ <기동경찰 패트레이버2>가 포착해 그린 공격헬기 '헬 하운드'
ⓒ 프로덕션 아이지
오타쿠들이 꼽는 <기동경찰 패트레이버2>의 명대사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이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특별히 길게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오타쿠들이 꼽는 그 명대사만으로도 오시이 마모루는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게 밝힌 셈이다.

196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며 '전공투'의 투쟁을 느꼈고 그로부터 비롯된 대결 의식을 꾸준히 반영해온 오시이 마모루다운 사고방식이다. 음험한 권력이 만들어낸 '기만의 평화'가 인간을 얼마나 나약하게 하며, 세상을 망치는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겨내는 것은 인간의 '의지'

사이토 다카오의 <생존 게임>, 앞서 이야기한 <드래곤 헤드>와 <기동경찰 패트레이버2> 등 이 작품들이 강조하는 것은 한결 같다. 결국 '의지'인 것이다. 평화와 안전 신화라는 금빛 테두리 속에서 나약해지는 보통의 인간과는 달리, 이 작품들 속에 의지 있는 인간들은 두려워하면서도 공포와 싸워나가거나 그 허망한(?) 테두리를 부수는 데에 힘을 다 한다.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고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의지'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진정 두렵고 무서워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는지, 우리의 의지는 사실 쉴 틈이 없는 것이다.

오시이 마모루가 애니메이션을 통해 사화와 싸우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세상을 바꿔가고 공포를 이겨내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신문 필진네트워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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