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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이 밤새 모기에 물리고 난 다음 날 그린 모기 그림이다. 밤새 얼마나 괴로왔으면 모기 다리를 이렇게 많이 그렸을까?
ⓒ 조영님
새벽 2시에 잠이 깼다. 모기가 윙윙거리는 바람에 잠이 깬 것이다. 여름 한 철 어김없이 나타날 불청객이 있을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해 모기약과 모기에 물렸을 때 바를 물파스를 한국에서 챙겨서 오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하긴, 2월 말에 왔으니 여름 모기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도 당연하였다.

윙윙거리는 모기를 손바닥으로 몇 번 때려 보지만 번번이 실패다. 모기를 잡을 적당한 물건이 없다.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을 한 장 주욱 찢어서 둘둘 말았다. 훌륭한 무기가 되었다.

드디어 30분만에 하얀 벽에 붙어 있는 모기를 때려잡았다. 선명한 붉은 피가 달력에 묻어났다. '요놈이 우리 아들 다리를 물었구먼.' 속이 다 후련했다. 납작해진 모기를 들여다보니 중국 모기라고 해서 우리나라 모기보다 큰 것은 아니었다.

잠들어 있던 아들이 깨어서 둘둘 만 달력을 들고 앉아 모기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엄마의 모습이 우스웠던지 히죽 웃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내 모습이 마치 '모기 잡는 장군' 같아서 나도 웃음이 나왔다.

불을 끄고 누웠는데 또 윙윙거리는 모기소리가 들린다. 다시 불을 켜고 수십 분만에 또 한 마리를 때려잡았다.

모기를 잡는 통에 잠이 완전히 달아나 버렸다. 일어나서 책을 들여다 보았지만 집중이 안 되었다. 문득 한자 자전에는 모기가 어떻게 설명되었는지 궁금하였다.

모기는 한자로 '문(蚊)'이다. 자전에는 "장구벌레가 우화(羽化)한 곤충. 암컷은 사람이나 짐승의 피를 빨아 먹음"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하필 수컷도 아닌 암컷이 피를 빨아 먹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모기와 관련되는 사자성어도 보였다. '재주와 슬기가 비상하여 모기나 등에 같은 하찮은 사람의 일까지도 환히 안다'는 뜻을 지닌 '문맹소견(蚊蝱宵見)'과 '역량이 부족하여 중임(重任)을 감당할 수 없음의 비유'로 쓰이는 '문예부산(蚊蚋負山)'이 있었다. 모기는 대체로 작고 보잘 것 없고, 하찮은 존재로 묘사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속담에도 모기는 별 볼 일 없는 존재로 묘사되었다. 이를테면, '모기도 낯짝이 있지', '모기 다리의 피만 하다', '모기 대가리에 골을 내랴', '모기 보고 칼 빼기' 등이 그러하다.

옛날 사람들은 모기를 어떻게 퇴치하였을까?

옛날 사람들은 모기를 어떻게 퇴치하였을까? 조선 숙종 때의 유암(流巖)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이란 분이 저술한 <산림경제(山林經濟)>라는 일종의 백과사전격인 책에는 모기를 퇴치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우선, 부평(浮萍)·강활(羌活)·야명사(夜明砂) 같은 것들을 가루로 내어 불에 태우면 모기가 죽는다고 하였다. 뱀장어를 말렸다가 방에서 태우면 모기가 물로 변해 없어진다고도 하였다. 부평과 강활은 물가나 계곡에 자라는 풀이다. 야명사는 박쥐 똥을 한의학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안질에 효과가 있어 약재로 쓰인다고 한다.

또 풍(風)자와 간(間) 자를 써서 창벽(窓壁)에 붙이거나, 사일(社日 : 춘분과 추분이 지난 3월과 9월 하순 경에 지신(地神)과 농신(農神)에게 지낸 제삿날)에 쓰고 남은 술을 집에 뿌리면 모기를 퇴치할 수 있다고 하였다. 아마도 당시 민간에서 널리 행해지던 모기 퇴치법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위에서 소개한 모기 퇴치법은 지금 당장에 시행하여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들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정보는 정보요, 현실은 현실이다'는 말이 딱 제격이었다.

옛날에는 하찮게 여기는 모기에도 등급이 있었다고?

사람들이 이처럼 작고 하찮게 여기는 모기에도 등급이 있었을까?

옛날 춘추시대의 오패(五覇)였던 제환공(齊桓公)이 관중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세상의 모든 물건들은 제 살 곳을 잃게 되면 서글픈 법이오. 지금 밖에 모기가 윙윙 거리는 것을 보니 배가 고픈 모양이오"라고 하고는 문을 열어 놓게 하였다.

그러자 열린 문으로 모기가 들어왔는데, 예(禮)를 아는 모기는 고이 물러가고, 만족을 아는 모기는 살갗에 달라붙어 피를 적당히 빨아먹다가 돌아갔다. 그런데 예(禮)도 모르고, 만족할 줄도 알지 못하는 모기란 놈은 살갗에 달라붙어 실컷 피를 빨아먹다가 결국 복창이 터져 죽었다고 한다.

제환공은 패자(覇者)였기에 역사에서 과소평가 받고 있지만 이 같은 짤막한 일화를 통해서도 그가 큰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역대의 수많은 시인들은 '모기'를 소재로 많은 시를 남겼다. 그 중에서 고려시대의 이규보란 시인은 '더위를 괴로워하며'라는 시제를 가지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혹독한 더위에다가 수심까지 겹쳐 불같이
내 마음 속을 태우는구나.
온 몸엔 붉은 땀띠가 돋아나고
피곤하여 난간에 기대어 바람 쐬며 누었다네.
바람은 부나마나 덥기는 마찬가지
마치 불에 부채질을 한 것처럼 덥네.
갈증이 나서 물 한 잔을 마시지만
물 역시나 끓는 물 같구나.
구역질이 나서 마실 수 없게 되자
천식으로 목구멍이 막히는구나.
잠들어 근심을 잠시 잊으려 하는데
또 모기란 놈이 달려드네.
어찌하여 유배지에서
이러한 온갖 고통 만나게 되었나?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니나
하늘은 어찌하여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가?


유배지에서 더운 여름을 맞은 이규보는 온몸에 땀띠가 돋아나고 천식까지 있어 무척 괴로운 듯하다. 갈증을 없애려 물을 마셔도 물 역시 끓는 물 같다. 이래저래 심사가 괴롭고 불편한 시인은 잠시나마 괴로움을 잊으려 난간에 기대어 잠들려 한다. 그런데 극성스런 모기란 놈이 눈치도 없이 달려들어 시인은 여간 짜증이 난 것이 아니다. 먼 옛날 고려시대에도, 지금도 해마다 겪는 여름날의 풍경이다.

극성스레 달려드는 모기란 놈을 퇴치할 좋은 방법 없나?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여름 더위를 어떻게 해결할까? 또 극성스레 달려드는 모기란 놈을 퇴치할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혹, 예(禮)를 아는 모기가 내방한다면 더 없이 좋을 테고, 적당히 만족할 줄 아는 모기라도 온다면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지례(知禮)와 지족(知足)의 덕(德)이 부족한 주인(主人) 탓에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새벽에 모기 때문에 잠이 깨어 '모기'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였더니 어느덧 창이 훤하게 밝아왔다.

덧붙이는 글 | <여름의 불청객 '모기'를 말한다> 응모글입니다.


태그:#모기, #예,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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