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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천 명월리에서 다목리로 가는 고갯길. 예전엔 비포장 길이었는데 이렇듯 포장이 되었다.
ⓒ 강기희
오래 전의 일이다. 20년 전인 1980년대 초중반에 경험했던 일이니 잊혀질 만도 하지만 여름철만 되면 불쑥불쑥 떠오르는 것은 당시의 경험이라는 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군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

20대 초반인 나의 피는 검붉은 색은 분명했지만 그리 맑지도 순수하지도 않았다. 전두환 정권에 충성하던 어느 동네의 이장 '빽'만 있어도 군에 가지 않던 시절이라 내 피는 차라리 팥죽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전방의 모기는 군화도 뚫는다

헌법에 명시된 '국방의 의무'라는 게 전혀 '의무스럽지' 않던 시절 군에 입대하는 것을 두고 사람들은 '끌려간다'라고 표현했다. 불공정한 게임에서 패한 이들이 가는 곳 '군대'는 끌려가는 이들이나 보내는 가족이나 스스로 '어둠의 자식들'을 자인했고 그렇게 자조했다.

그 흔한 반장 '빽'도 없던 나는 민통선이 코앞인 화천의 전방까지 올라갔다. 논산훈련소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은 전남 광주를 경유, 강원도 화천의 다목리까지 갔으니 억세게 운이 없는 인간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흔히들 군대는 '줄을 잘 서야 한다'라는 소박한 믿음 하나는 제대로 먹혔던지 지켜만 봐도 고생스러운 생활을 하는 보병은 피할 수 있었다. 거기에다 이번엔 줄을 잘 섰다기보다 줄이 잘 끊어진 탓에 포병연대본부로 배속이 되었으니 근동에서는 남부러울 것 없는 군생활이었다.

군대 생활이 편하다 하여 점호가 없고 군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병영의 군기를 세워주는 것은 겨울엔 날선 추위였으며 여름철엔 갓 부임한 장교도 아니고 서슬 퍼런 보안대 상사도 아닌 '모기'였다. 상대가 사람이라면 참다못해 '맞장'이라도 떠보겠지만 모기는 그런 상대도 되지 않았다.

덩치 큰 인간이 눈에도 차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모기에게 물려 벅벅 긁는 모습을 보인다는 게 영 면이 서지 않았다. 더구나 군인의 신분으로 모기에게 물려 자세를 흩트리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모기의 공습은 보통 야간 보초 때 이루어졌다. 밤 10시부터 시작되는 야간 보초는 어떨 땐 1시간 30분을 섰고, 휴가병이 많을 땐 2시간이나 섰다. 불침번이 근무시간 30분 전에 깨우니 다시 잠자리에 들려면 3시간은 기본으로 흘렀다. 그러하니 새벽 2시쯤 야간 근무가 걸리면 잠자는 시간이라고는 고작 서너 시간에 불과했다.

고참쯤 되면 보초를 나가는 중에 걸어가면서도 잠을 잤지만 신참일 때는 그 일도 하지 못했다. 근무지에 나가서도 고참은 눈을 부릅뜨고도 잠을 잤지만 하루 일당 100원도 되지 못하는 이등병은 고참 몰래 눈을 감는다 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효과도 없는 바르는 모기약, 그것은 미제

▲ 군 생활 하던 부대. 20년이 지났지만 크게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시멘트 길이 난 것과 목책이 사라지고 높은 담이 생겼다는 것뿐.
ⓒ 강기희
야간 보초를 나가기 전 근무자들은 외부로 드러나는 얼굴과 손, 목덜미 등에 모기약을 떡칠을 하듯 바른다. 딱풀처럼 만들어진 모기약은 뿌리는 것이 아니라 바르는 약이었다. 더구나 그것들은 국산이 아니라 미제였다. 문제는 모기약을 아무리 많이 발라도 효과가 없다는 거였다.

"어따, 뭔 모기약을 그케도 많이 바르냐 잉?"

함께 보초를 나가는 고참의 타박이었다.

"옛! 모기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 바르는 겁니다!"

이등병 시절이라 군기는 바짝 들었다.

"아그야, 살살 야그 혀라. 동료들 자고 있다 안허냐. 글고 이 약은 대한민국 군인들에겐 모기 퇴치제가 아니라 유인제니께 많이 바를 필요 없응께 그만 하그라."
"무슨 말씀이신지…."
"미군 놈들 피부에 맞게 만들어진 약이니 우리에겐 아무 쓰잘데기 없다 이 말이여."

고참의 말이었다. 모기약이 미제라 한국인의 피부에는 잘 듣지 않는다는 거였다. 고참의 말에도 이등병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미제 모기약을 잔뜩 바르고 근무 초소로 갔다. 초병이 된 이등병은 늠름한 자세로 근무에 임하고 있지만 몰려오는 모기만큼은 피할 길 없었다.

"아그야, 못 견디겠제? 내 뭐라 허드냐. 그 모기약은 모기 유인제라고 안 허드냐."

곁에 서 있던 고참이 딱 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한 가지 여쭤 볼 것이 있습니다!"
"아그야, 살살 야그하라니까. 여긴 근무지란 말여. 물어볼 게 뭔지 야그 혀봐."
"부대에서는 듣지도 않는 이런 모기약을 왜 제공하는 겁니까?"
"어따, 어려운 거 물어보네. 이 약은 말여. 학생들이 미군철수를 하도 주장하니께 미군이 일부러 준다더만. 대한민국 군인은 모기 때문에 경계 근무를 설 수 없으니 미군이 제발 남아 달라, 뭐 그런 말 나오게 하려고 했다나 어쩐다나. 나도 얼마 전 제대한 고참헌티 들은 말이여."

고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모기약이 효과가 없는 것만은 분명했다. 당시 함께 근무를 섰던 고참을 다시 만난 것은 1987년 6월 페퍼포그에서 발사된 지랄탄이 지랄처럼 터지던 을지로에서였다. 우연이었고, 고참은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전방의 모기보다 더 무섭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전방의 모기는 군복을 뚫고 들어오는 것은 물론이고 두터운 군화까지 뚫고 들어왔다. 모기는 손가락을 넣고 긁을 수도 없는 지점에 강력한 침 한 방을 놓고는 사라지곤 했다. 근무 중이라 군화 끈을 풀 수도 없었다. 온몸을 비틀며 가려움을 견디어 보지만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은 이겨낼 도리가 없었다.

어쩌다 1년에 한 번 있는 훈련이 있던 때는 모기의 공습이 극에 달했다. 훈련 중에는 밤새 경계 근무를 해야 했기에 모기의 밥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렇게 하룻밤을 지내고 나면 얼굴들이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을 정도였다. 병사들은 훈련에 지치는 것이 아니라 모기로 인해 지쳐갔다.

새벽 시간 참호에 기대어 설핏 잠이 들어도 순간의 달콤함을 깨우는 것은 고참이 아니라 모기였다. 그 무렵 옷 소매를 파고 들어오는 불개미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그렇게 병사들은 훈련에 임하고 있음에도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돌아오지 않았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당연히 치러야 할 '의무'였기 때문이었다.

어느 해인가, 훈련이 있던 날이었다. 훈련은 2박 3일 정도 했던 것 같다. 어둠이 깃든 밤 병사들은 각자의 초소에서 경계 근무를 하고 있었다. 훈련이라는 게 실전이 아닌 터라 눈 뜨고 밤을 새우는 게 전부였다. 병사들 중 몇을 골라 부대 내로의 침투조를 꾸렸지만 그것 역시 형식에 불과했다.

목책으로 둘러싸인 부대인 탓에 인간띠를 하지 않고서는 침투하는 이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침투조로 구성된 이들은 부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고참들이라 부대로 침투하는 것은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행위는 작전이나 훈련이 아니라 놀이와 다름없었고, 어릴 적 즐겨 하던 병정놀이와 비슷한 일들이었다.

병사들은 훈련 시키고 장교들은 멧돼지 파티

훈련 중의 어느 날 밤이었다. 훈련 중인 경계병들은 이미 모기와 전쟁을 치르고 있던 중이었다. 달빛이 어슴한 밤, 계곡에서 절룩거리며 길을 따라 내려오는 멧돼지 한 마리가 경계병의 시야에 들어왔다. 처음엔 사람인가 싶어 긴장했으나 자세히 살피니 동물이었다.

경계병은 신속하게 착검을 하고 멧돼지를 향해 돌진했다. 대검에 찔린 멧돼지는 부대 내의 장교식당으로 옮겨졌다. 칼잽이 병사가 멧돼지를 해부하는 사이 장교들이 몰려들었다. 장교들이 멧돼지 요리를 먹고 즐기는 사이 병사들은 모기에게 뜯기며 분노했다. 병사들이 한마디씩 했다.

"저것들 다 고발해 버릴까?"
"다들 한통속인데 어디다 고발해."
"경찰에다 할까?"
"이런 고문관 같으니라고. 여긴 치외법권 지역이잖어."
"차라리 자동 놓고 갈겨버릴까? 누가 뭐라 그러면 간첩이 나타난 줄 알았다고 하면 되잖어. 쓰벌 새끼들."

말끝에 한 병사가 실탄이 든 탄창을 끼우며 욕설을 뱉었다. 그의 총부리는 이미 장교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잠금장치를 풀고 방아쇠만 당기면 장교식당은 벌집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다 남한산성 가십니다."

당시 남한산성 자락엔 육군교도소가 있었다. 남한산성이란 졸병의 말에 병사는 "저런 꼴 보려면 차라리 거기 가는 게 낫지"라며 M16 소총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이제 방아쇠에 손가락만 얹어 놓아도 총구에선 불꽃이 튈 것이었다.

두 사람이 달려들어 간신히 총을 빼앗아 탄창을 제거했다. 그 순간엔 누구라도 병사처럼 하고 싶었다. 멧돼지 한 마리에 훈련마저 우습게 만들어버린 장교들은 병사들을 모기 발톱에 낀 때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몇 시간 후 장교들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순찰을 돌았다. 그런 장교의 얼굴을 총 개머리 판으로 후려치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장교가 음식 냄새를 피우며 물러가자 모기가 목덜미를 강하게 물었다. 병사는 장교의 얼굴을 후려치는 대신 손바닥으로 애꿎은 목덜미만 몇 차례 철썩철썩 때렸다.

그렇게 밤은 흘러갔고 서럽도록 밝은 햇살이 산자락을 기어 내려왔다. 밤새 치렀던 모기들과의 전쟁이 휴전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그 시간 병사들은 아침식사인지 저녁식사인지 알 수 없는 밥을 먹고 토굴 같이 어둔 내무반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모기가 남긴 흔적을 벅벅 긁으며 코골이에 들어갔다.

▲ 당시 근무지인 위병초소. 위병소 근무만 20개월을 넘게 했다.
ⓒ 강기희

덧붙이는 글 | <여름의 불청객 '모기'를 말한다> 응모글


태그:#모기, #군대, #고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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